첫 번째 문답: 이견왕이 바라제 존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 성품을 본 사람이 부처입니다. 스님께서는 성품을 보았습니까? / 나는 보았습니다. / 그 성품이 어디 있습니까? 성품은 작용하는데 있습니다./ 어떤 작용이기에 나는 지금 보지 못합니까? 지금도 작용하는데 버젓이 나타나고 있지만, 왕이 스스로 못 보는 겁니다./ 나에게도 그게 있다는 겁니까? /왕이 만일 작용하면 그것 아닌 것이 없지만, 작용치 않으면 그 본체도 보기어려울 겁니다. /만약 작용한다면 몇 군데로 나타납니까? / 8군데로 나타납니다. / 그 8군데를 설명해 주시오. / 태 안에 있으면 몸이라 하고, 세상에 나왔을 때는 사람이라 한다. 눈에 있을 때는 보고, 귀에 있을 때는 듣는 것이며, 코에 있을 때는 냄새 맡는 것이며, 혀에 있을 때는 말하는 것이며, 손에 있을 때는 쥐는 것이요, 발에 있을 때는 달리는 것입니다. / 두루 나타나서는 모래알 같은 세상을 감싸는 것이 불성입니다. / 아는 사람은 이것이 불성인 줄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이를 영혼이라 합니다./ 왕일 말하길 끝났다.
또 어떤 스님이 귀종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하려하지만 그대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 / 화상의 지극한 말씀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 그대가 바로 부처다. / 어떻게 보림(保任)해야 합니까? / 티끌하나가 눈에 들어가니, 허공 꽃이 어지럽게 떨어진다. / 그 스님은 이 말을 듣고 단박 알아차렸다.
두 번째 문답 :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견성이 진정한 견성이라면 신통변화를 나타내서 남보다 다른 점이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지금 마음 닦는 사람들은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이가 없습니까? 그대는 경솔히 미친 소리 하지 마라. 삿된 것과 바른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진리를 말하면서, 마음은 비겁하여,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다. 도를 배우면서 선후를 알지 못하고, 본말을 분간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실한 공부라 할 수 없다. 자기만 그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까지 그르치는 것이니 어찌 삼가치 않겠는가. 요약해서 말하자면, 돈오와 점수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가장 높고 수승한 근기가 들어가는 문이라 하지만, 과거로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오다, 금생에 이르러 즉시 깨달은 것이니 실로 말하면 그것 역시 먼저 깨닫고 닦는 근기다. cf. 돈오 + 점수 = 證 그러므로 돈오 ․ 점수 의 두문은 모두 성인이 말미암은 길로서 과거의 모든 성인은 다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그 닦음에 의해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히면 나타나는 것이요 깨달은 때 곧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능엄경 인용) 경에 말씀하시길, 이치인 즉 돈오라, 깨달음과 동시에 번뇌가 녹아날 것 같지만,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한번에 번뇌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규봉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얼음이 언 연못이 물임을 알지만, 햇빛을 받아야 녹듯이 중생이 부처인 것을 알았지만, 현실 속에서 잘 익히고 닦아야 신통광명이 나타난다. 이렇게 본다면, 신통변화는 하루에 능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익혀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