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법은 꿈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다. 그러므로 망령된 생각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같은 객관 대상은 본래 빈 것이다. 모든 법이 다 공한 것에 신령한 영지가 어둡지 않다. 이 비고 고요하고 신령스럽게 아는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의 면목이며, 또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과 천하 선지식의 서로 은밀히 전한 진리이다. - 마음자리에 대한 설명: 공적하면서도 영지한 마음자리에 대한 설명. 모든 법이 공한 바로 그곳에 신령스런 앎이 있다. - 윌리암 제임스의 이론: 모든 종교의 수행은 일상의식을 비우는 연습. 평상시 일상의식이 멸하고... 새로운 신비의식의 출현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바탕 (설명할 수 없는 바탕)... 동양적 문화의식에서는 열반... 일체의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절대한 경지... 하나인 세상..
만약 이 마음을 깨치면 참으로 단계를 거치지 않고 부처의 지위에 올라 걸음걸음에 삼계를 뛰어넘고, 본집에 돌아가서 단박 의심을 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서 자비와 지혜가 하나되어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면, 인간과 천상의 한량없이 귀한 공양을 받게 된다.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고 넉넉한 삶을 살게된다.) 그대가 만일 이렇게 되면 참으로 대장부라 일생의 할일을 마쳤다 할 것이다.
그대가 지금 나에게 묻는 바로 그것이 공적하고 신령스럽게 하는 마음이다. 어째서 돌이켜 비추지 않고 밖에서 찾느냐? 본래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그대의 마음을 깨치게 할 것이니 마음을 깨끗이 하여 내말을 들으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12시간 동안 보거나 듣기도 하고 웃거나 이야기하기도 하며, 성내거나 기뻐하기도 하고 혹은 옳다거나 그르다 하기도 하는 행위와 동작을 무엇이 그렇게 하는가 말해보라. 만일 육신이 움직이게 한다면, 무엇 때문에 갑자기 죽어 몸은 아직도 허물거나 썩지 않았는데도,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며,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혀는 말하지 못하며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손은 붙잡지 못하며 발은 걸어가지 못하는가. 이로써 보거나 듣거나 동작하는 것은 반드시 너의 본래의 마음이요, 너의 육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이 육신을 이룬 사대는 그 성이 공하여, 마치 거울 속의 형상과 같고 물속의 달과 같은데, 어찌 능히 항상 분명히 알며 환하고 어둡지 않아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묘한 작용을 느끼는 대로 다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신통과 묘한 작용이 물을 긷고 나무를 나르는 것이다’ 한 것이다. 진리에 들어가는 길이 많으나 그대에게 한 길을 가리켜, 원천으로 들어가게 하여라. 그대는 저 까마귀의 우는 소리나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예. 그대는 듣는 바탕을 돌이켜 보아라. 거기에도 많은 소리가 있는가? 그 속에는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도 없습니다. (감각과 지각) 기특하다. 기특하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간 문이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물으리라. 그대는 그 속에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없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허공과 같지 않은가. 원래 공한 것이 아니라, 밝고 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것의 본체인가? 형상이 없으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생명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
- 부정의 방법론 : 계속 부정하며 설명한다. 대가 끊어진 바탕에 대한 설명법
이미 모양이 없는데 또 크고 작음이 있겠으며, 크고 작음이 없는데, 또 한계가 있겠는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안팎이 없고, 안팎이 없기 때문에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멀고 가까움이 없기 때문에 저것과 이것이 없다. 저것과 이것이 없으므로 가고 옴도 없고 가고 옴이 없으므로 생사도 없다. 나고 죽는 것이 없으므로 예와 지금이 없고, 예와 지금이 없으므로 미혹하고 깨침도 없다. 미혹과 깨침이 없으므로 범부와 성인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없으므로 더럽고 깨끗함이 없고, 더럽고 깨끗함이 없으므로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일체 모든 이름과 말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다 없어지되 모든 감관(안이비설신의)과 감관의 대상(색성향미촉법)과 일체의 망념과 나가서는 갖가지 모양과 갖가지 이름과 말이 다 있을 수 없으니. 그러니 어찌 본래부터 비고 고요하며 본래부터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 공적한 바탕에 대한 철저한 설명 그러나 모든 법이 공한 곳에 영지는 어둡지 않아, 무정과 다르고 성이 스스로 신령스러이 아나니, 이것이 바로 그대의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러이 아는 청정한 마음의 본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