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통도사에서 사미계
1969년 통도사에서 구족계
1971년 통도사 강원 강주
1980년 중앙승가대 강사,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
1985년 중앙승가대 불교학과 교수
前 중앙승가대학교 총장
現 중앙승가대학교 명예교수
회수 : 91회      
제목 : 종범스님 - 깨친 마음의 생활 법회일자 : 2004-08-09
  깨친 마음이란 깨달은 마음이다. 깨달은 마음을 경전에서는 반야바라밀, 삼먁삼보리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신성하고 거룩하다는 뜻으로 마하, 아뇩다라 를 붙여 사용하는데 그 뜻은 무상(無上)이다. 또 반야심, 보리심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깨친 마음을 말하고 있다.
깨친다는 것은 아는 것이며, 보는 것이다. 깨치지 못했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다. 깨친 마음은 본래 그대로의 마음이다. 그래서 청정심(淸淨心), 정심(淨心), 정심(正心), 정견(正見), 진심(眞心) 이라고 한다.
깨치지 못한 마음은 맑지 못하고 물들어 있다. 그래서 염심(染心)이라고 한다. 의심 한다던지 마음이 변한 변심, 바르게 보지 못하여 허망하게 보는 등이 모두 깨닫지 못하여 생기는 마음이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깨친 마음이요, 잘못 판단하여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깨치지 못한 마음이다. 잘못 판단하는 이유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망심, 없어지지 않는 것을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망심 때문이다.
영원한 것과 허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히 없는 것은 없고, 영원히 오래가는 것도 없다.
허망한 생각 허망한 행위에서 불행이 생긴다. 허무하다는 생각과 영원하기를 바라는 생각 때문에 불행해 지는 것이다. 허무에 대한 두려움, 영원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나무가 사라지지 않듯, 나무가 사라진다고 숲이 사라지지 않듯, 허무도 없고 영원도 없다.
생기는 것과 없어지는 것에 동요할 것이 아니다. 늙음이 오면 늙은 데로 행복할 수 있고, 죽음을 맞이하면 그 대로 행복 할 수 있고, 태어나고, 병나는 것도 그 대로 행복할 수 있으려면 깨우친 마음으로 살면 된다. 깨닫지 못하면 병이 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전에 미리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허무에 대한 공포심이 걱정을 앞서게 하여 두렵고, 스트래스를 받게 된다.
깨달은 마음으로 보면 세상에는 영원과 허무는 없고, 법상과 공상이 있음을 알게된다. 법상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삼라만상, 우주만물이 법상이다. 이 법상을 깨달은 마음으로 보면 공상임을 알게된다. 법이란 모두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 졌기 때문에 영원한 것도 없고,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 졌기 때문에 허무한 것도 없다. 이것이 연기법이다.
‘만고벽담공계월(萬古碧潭空界月)을 재삼로(再三撈)로 시응지(始應知)라’라는 시가 있다. 천년 만년 세월이 지나도 연못은 푸르고, 달은 허공에 있다. 그런데 연못에 들어가 보면 달이 허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이 물속에 있는 달을 건지려 애를 쓰다 어느날 달이 허공에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쓸데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을 ‘수중착월(水中捉月)’이라 한다. 물 속에서 달을 건짐에 비유한 것이다. 행복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인데 바깥에서 구하려 하는 것도 그와 같다. 또 ‘경면모상(鏡面摸象)’이라 하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만지려고 거울을 더듬는 것과 같는 말도 있다.
물속에 보이는 것과 거울속에 보이는 것이 법상인데, 그 보이는 것이 공상이다. 사람과 거울의 인연을 만나 보이는 것이요, 사람이 연못이라는 인연을 만나 달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알고 보면 영원하고자 하는 욕심과 허무하다는 공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지혜로 삶을 살아갈 때에 욕망과 공포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상태를 보리, 즉 깨달음이라 한다.
그렇다면 깨달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것은 부처님이 사신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금강경을 보면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생활을 이야기 하고 있다.
“식시에(食時)에 …”라고 시작 되는데, 이 구절을 보자면 먹는 것에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중생들은 이 때를 잘못 지키고 있다. 식사는 우리 몸이 필요한 때에 먹는 것이 좋다. 부처님 께서는 사시(10~12시)에 드셨다.
“착의발(着衣鉢) 하고 성(城)중에 가서 먹을 만큼 걸식하여 돌아오신 후 잡수시고, 수의발 하고 자리에 앉아 쉬셨다.”고 하였다. 생활은 물 흐르듯 지내는 것, 먹을 때에는 먹고, 할 때에는 하고, 쉴 때에는 쉬는 것, 그것이 기쁨이요, 평화요, 행복이다. 할 일이 없을 때에는 쉬어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할 일이 없으면 욕망과 공포로 인하여 안절부절 못하고 계속 일을 만들려고 한다. 할 말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꾸며서 한다.
깨우친 사람은 첫째 음식관리를 잘 한다. 먹을 때에 먹고, 필요한 만큼 먹고, 몸에 해로운 것은 먹지 않는다. 중생들의 식사문화는 맛이 좋은 것을 먹고, 마음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 먹고, 다른 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먹는다.
둘째는 감각이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도록 받아들여야 한다.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등의 감각으로 보아서 이로울 것을 보고, 들어서 이로울 것을 듣고는 것이다. 감각의 출입구에 파수병을 세워서 잘 걸러내어야 한다. 필요 없는 줄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대중 문화에 젖어 살고 있는데, 부단히 노력해서 좋은 음식을 섭취하듯 좋은 감각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수행이다.
특히 판단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들이 탤레비젼을 시청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어릴 때부터 대중 문화에 젖어서 습관화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향락과 소비와 복수심, 욕망 등의 독소가 머리속에 가득 들어와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세 번째는 의지이다. 욕망과 소망을 비교해 보자면, 욕망이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심이고, 소망은 아름다운 희망이다. 좋은 모습을 보고 닮고자 하는 것이다.
희망에서 한걸음 나아가 큰 원을 세우는 것, 소망과 희망과 원 이 모두를 합친 것이 의지이다. 건강한 의지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자 하는 것이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고통을 주고자 하는 의지란 건강하지 못한 의지이다. 의지가 건강하게 일어나면 세상을 아름답게 고칠 수가 있지만 건강하지 못하면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욕망의 노예가 되어 건강하지 못한 의지를 갖게되는 것이다. 욕망으로부터 자기를 구해내는 길은 건강한 의지를 갖고자 하는 것이다.
파괴적인 의지도 결국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이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을 알려면 관심과 재심(在心)이 있어야 한다.
대학(大學)에 심불재언(心不在焉)이면 시이불견(視而不見)하고, 청이불문(聽而不聞)하고, 식이부지기미(食而不知其味)한다. 하였다.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고, 맛을 보아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사랑이 오게 되어있다.
건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받기 전에 주어야 한다. 무조건 받고자 하기만 한다면 받을 것도 없다. 욕망이 앞서기 때문에 폭력이 사용되고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욕망으로부터 나를 구제하고, 폭력과 원망으로부터 나를 구제하고, 공포와 좌절로부터 나를 구제하여야 한다.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건강한 의지로 마음을 승화시키고 마음을 재수정하여 나아가는 것이 깨친 마음의 생활이다.
깨침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견성성불, 반야바라밀 등의 신비로운 표현을 많이 사용했지만, 일상화된 이해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순간 순간 깨우치고 있다. 그런 마음을 확대시켜나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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