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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降伏其心이니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모든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이 그 마음(번뇌망상)을 항복받을지니라.
六祖> 前念淸淨하고 後念淸淨을 名爲菩薩이요 念念不退하야 雖在塵勞나 心常淸淨을 名摩訶薩이니라 又慈悲喜捨의 種種方便으로 化導衆生을 名爲菩薩이요 能化所化에 心無取着을 名摩訶薩이니 恭敬一切衆生이 卽是降伏其心이니라 處眞을 名不變이요 契如를 名不異니 遇諸境界호대 心無變異를 名曰眞如니라 亦云外不假曰眞이요 內不亂曰如요 念念無差曰是니라
> 앞생각이 청정하고 뒷생각도 청정한 것을 보살이라 하고 생각생각이 물러서지 아니하여 비록 세상가운데(塵勞)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항상 淸淨한 것을 摩訶薩(큰菩薩)이라 한다. 또 자비희사(慈悲喜捨) 의 방편(方便)으로 중생(衆生)을 교화(敎化) 인도하는 것이 보살이고 能化所化(교화하는 사람이나 교화받는 사람)에 대하여 마음에 執着함이 없는 것을 마하살이라 하니 일체중생을 공경하는 것이 곧 그 마음을 항복받는 것이 된다. 眞에 처해있는 것을 不變, 如에 계합한 것을 不異라고 하니 모든 경계를 만나되 마음에 변하고 달라짐이 없는 것을 眞如라 한다.
起心修心하야 妄見是非하고 內不契無相之理를 名爲有色이요 內心守直하야 不行恭敬供養하고 但見直心是佛하야 不修福慧를 名爲無色이요 不了中道하고 眼見耳聞에 心想思惟하야 愛着法相하야 口說佛行호대 心不依行을 名爲有想이요 迷人이 坐禪호되 一向除妄하고 不學慈悲喜捨智慧方便하야 猶如木石하야 無有作用을 名爲無想이요 不着二法想故로 名若非有想이요 求理心在故로 名若非無想이니 煩惱萬差나 皆是垢心이요 身形無數나 摠名衆生이니라 如來가 大悲普化하사 皆令得入無餘涅槃也하야 而滅度之者는 如來가 指示三界九地衆生이 各有涅槃妙心하사 令自悟入無餘시니 無餘者는 無習氣煩惱也니라 涅槃者는 圓滿淸淨義니 滅盡一切習氣하야 令永不生하야사 方契此也니라 度者는 渡生死大海也니 佛心이 平等하사 普願與一切衆生으로 同入圓滿淸淨無餘涅槃하사 同渡生死大海하야 同諸佛所證也니라 有人이 雖悟雖修나 作有所得心者는 却生我相하나니 名爲法我라 除盡法我하야사 方名滅度也니라
> 마음을 일으키고 마음을 닦아서 망령스레 옳고 그른것(是非)을 보아 안으로 無相의 이치에 계합하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有色이라 함이니라. 내심으론 곧은 마음만 지켜서 공경(恭敬) . 공양(供養)을 行하지 아니하고 다만 곧은 마음만이 부처라고 보아서 선(福)과 혜(慧)를 닦지 아니하는 것을 무색(無色)이라 한다. 중도(中道)를 요달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사유하여 법상(法相) 에 애착(愛着)하여 입으로는 불행(佛行)을 말하되 마음을 의지해서 行하지 아니하는 것을 유상(有想)이 되고 어리석은 사람이 좌선(坐禪)하며 한결같이 망념(妄念)만을 없애고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지혜방편(智慧方便)을 배우지 않아 마치 목석과 같이 아무 작용이 없는 것을 무상(無想)이라 한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몸의 모양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不也니이다 世尊하 不可以身相으로 得見如來니 "못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모양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六祖> 色身은 卽有相이요 法身은 卽無相이니 色身者는 四大和合하야 父母所生이라 肉眼所見이어니와 法身者는 無有形段하야 非有靑黃赤白이라 無一切相貌하야 非肉眼能見이요 慧眼으로는 乃能見之니라 凡夫는 但見色身如來하고 不見法身如來하나니 法身은 量等虛空이라 是故로 佛이 問須菩提하사대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아하시니 須菩提가 知凡夫는 但見色身如來하고 不見法身如來일새 故로 言不也니이다 世尊하 不可以身相으로 得見如來라하시니라
>色身은 곧 有相이고 法身은 곧 無相이다. 色身이란 四大 주396)(地,水,火,風)가 和合하여 父母가 낳았기에 肉眼으로 볼 수 있지만, 法身이란 形相이 없어서 靑 . 黃 . 赤 . 白이 있지 아니하므로 一切 形相과 모양이 없어 肉眼으로 能히 불 수 없으므로 慧眼이라야 能히 볼 수 있다. 凡夫는 단지 色身으로 된 如來만 보고 法身如來는 보지 못하니 法身은 그 양이 虛空과 같다. 이러므로 부처님이 須菩提에게 물으시되 "가히 身相으로 如來를 볼 수 있느냐"하신 것이다. 須菩提가 凡夫는 단지 色身如來만 보고 法身如來는 보지 못하는 것을 아는 까닭에 "못봅니다. 世尊이시여, 가히 身相으로써 如來를 보지 못합니다."하신 것이다.
何以故오 如來所說身相은 卽非身相이니이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몸의 모양은 곧 몸의 모양이 아닙니다."
六祖> 色身은 是相이요 法身은 是性이라 一切善惡이 盡由法身이요 不由色身이니 法身이 若作惡하면 色身이 不生善處하고 法身이 作善하면 色身이 不墮惡處하나니라 凡夫는 唯見色身하고 不見法身일새 不能行無住相布施하며 不能於一切處에 行平等行하며 不能普敬一切衆生이어니와 見法身者는 卽能行無住相布施하며 卽能普敬一切衆生하며 卽能修般若波羅蜜行하야 方信一切衆生이 同一眞性이라 本來淸淨하야 無有垢穢하야 具足恒沙妙用이니라
>色身은 相이고 法身은 性이라, 一切 善惡이 모두 法身에서 연유되고 色身에서 연유되지 않는다. 法身이 만약 惡을 지으면 色身이 좋은 곳에 나지 않고 法身이 善을 지으면 色身이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아니한다. 凡夫는 오직 色身만 보고 法身을 보지 못하므로 能히 無住相布施를 行하지 못하며 一切處에 平等한 行을 行하지 못하여 널리 一切 衆生을 能히 恭敬치 못하는 것이니라. 法身을 보는 자는 無住相布施를 行하며 널리 一切 衆生을 恭敬하여 能히 般若波羅蜜行을 닦아서 바야흐로 一切衆生이 同一한 참된 性品(眞性)을 갖어 本來 淸淨하여, 때묻거나 더러움이 없어서 많은 妙한 作用(恒沙妙用)이 具足됨을 믿는 것이니라.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第 十八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肉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가 有肉眼이니이다 >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육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天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가 有天眼이니이다 >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이 있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慧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가 有慧眼이니이다 >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이 있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法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가 有法眼이니이다 >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법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이 있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佛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가 有佛眼이니이다 >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불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이 있습니다."
六祖> 一切人이 盡有五眼이언마는 爲迷所覆하야 不能自見일새 故로 佛이 敎除却迷心하면 卽五眼이 圓明하야 念念修行般若波羅蜜法이시니 初除迷心을 名爲肉眼이요 見一切衆生이 皆有佛性하야 起憐憫心을 是名天眼이요 癡心不生을 名爲慧眼이요 着法心除를 名爲法眼이요 細惑永盡하야 圓明 照를 名爲佛眼이니라 又云見色身中에 有法身을 名爲肉眼이요 見一切衆生이 各具般若性을 名爲天眼이요 見般若波羅蜜이 能出生三世一切法을 名爲慧眼이요 見一切佛法이 本來自備를 名爲法眼이요 見性明徹하야 能所永除를 名爲佛眼也니라
>모든 사람이 다 五眼이 있건만 迷惑에 덮인 바가 되어서 능히 스스로 보지 못함일새, 그러므로 부처님이 가르쳐 迷한 마음을 없애버리면 곧 五眼이 두렷이 밝아져서 생각생각에 般若波羅蜜法을 修行케 하시니, 처음의 迷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肉眼이라 함이요, 一切衆生은 다 佛性이 있어서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天眼이라 함이며, 어리석은 마음이 나지 않음을 慧眼이라 하고, 法에 執着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法眼이라 하도다. 微細한 煩惱(細惑)까지 영원히 다하여 두렷이 밝게 비춤을 佛眼이라 하느니라. 또 이르되 色身(몸) 가운데 法眼이 있음을 보는 것을 肉眼이라 하고 一切衆生이 各各 般若의 性品을 갖추고 있음을 보는 것이 天眼이요, 般若波羅蜜法이 能히 三世의 一切法을 냄을 보는 것이 慧眼이요, 一切의 佛法이 本來 스스로 갖춤을 보는 것이 法眼이라 하며, 性品이 밝게 사무쳐서(明徹) 能所를 영원히 없앰을 보는 것이 佛眼이라 이름하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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