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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범어사 동산스님을 은사로 득도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W.F.B초청으로 태국 방콕에 유학 WAT. Benchamabopil사원에서 남방불교 연구 일본 경도불교대학원에서 불교학 연구(천태학) 조계종 포교원 제2대, 제4대 포교원장 역임 1996년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대상 현재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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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수 : |
1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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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
무진장스님-심성 속에 있는 삼신불(2) |
법회일자 : |
2005-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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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년에 열반에 드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는데, 그 자리에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교단이 비대해지고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가 많아져 앞으로 규제해 나가기가 힘이 들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교단이 발전하고 부처님의 뜻이 널리 펼쳐질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사문에게 네가지가 있다. 첫째는 승사문(勝道沙門)이요, 둘째는 설도사문(說道沙門)이요, 셋째는 활도사문(活道沙門)이요, 다섯째는 오도사문(汚道沙門)이니라.”고 하셨다. 승사문(勝道沙門)이란 불교를 믿는 사람은 첫째로 위대한 아라한이 되어라는 것이다.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위대한 성자가 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믿는 종교라기 보다는 탐구하는 종교요 알아야 하는 종교요 마음을 닦는 종교인 것이다. 사람들은 팔자를 바꾸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한다거나 외모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팔자가 바뀔 것인가? 팔자를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공경을 행하여야 한다. 존경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면 팔자가 바뀌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므로 행하려 하지 않는다. 존경하고 공경하는 모습이 바로 성자의 모습이다. 명석한 판단력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다. 무작정 빌기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행복해 진다는 것을 믿고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설도사문(說道沙門)이란 부처님의 학설과 이론 등의 법을 배워서 위대한 사상가가 되어라는 것이다. 활도사문(活道沙門)이란 신구의삼업을 청정히 닦아서 도덕적인 인격을 가지라는 것이다. 몸으로 행동하는데에 절제가 있고, 정직한 말을 하고, 지혜로운 생각을 하여 도덕성을 가지라는 말이다. 오도사문(汚道沙門)이란 신앙도 없고, 부처님의 법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태만해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삼신불(三身佛)이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을 일컫는다. 이 삼위일체의 논리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늘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불교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의나 사상이 없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라 하면 대표적인 것이 정치적으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사회에서는 크게 둘로 나누어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왕래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이데올로기를 전 세계에서 이데올로기가 사라져가고 있다. 앞으로의 모든 사상들이 끝내는 불교사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불교는 주의(主義)을 주장하지 않지만 꼭 이름을 붙이자면 중도주의(中道主義)라 할 수 있겠다.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中庸)과는 다른 것이다. 중도(中道)라 하면 ‘도에 들어맞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중도에 도달하기 위해서 즉, 본래면목에 도달하기 위해서 비판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불교를 비판주의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예로 반야심경을 들 수 있는데, 반야심경에서는 ‘없다(無)’는 말을 무수히 하고 있다. 이치에 도달하기 전 까지는 계속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세계는 온 우주이다. 이 비로자나불의 품 속에는 들어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 마치 어머니 뱃속의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모두 비로자나부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가르쳐 주신 분이 석가모니부처님이시다. 중생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사이에서 화신하시어 그 도리를 일깨워주신 것이다. 이는 마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거대한 방송국과 같아서, 비로자나불 이라는 거대한 방송국으로부터 보내어지는 전파가 온 세계에 가득 차 있지만 우리는 그 전파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만 라디오라는 장치를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그 전파를 알게 되는 것이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권능을 석가모니부처님을 통해서 알게되는 것을 현교라 한다. 그런데 석가모니부처님의 중계가 없이 비로자불의 원리를 중생이 바로 알게 되었을 때, 그 때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이라 하지 않고 대일여래(大日如來)라 이름한다.
우리 인간의 활동이란 저항, 반발, 투쟁, 반목의 연속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이 없는 평화스러운 인류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이데올로기가 없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본래면목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법(法, Dharma)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 중의 치명적인 하나가 탐욕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가 분쟁에 이용이 되고있는 실정이다. 나 이외의 것을 수용하지 않는 급진주의적 종교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불교는 자유로운 종교이다. 불교는 내세워야 할 주의 사상이 없다고 말하였었다. 독단적인 그러한 생각에 대해서 부정이라던지 비판으로 불교에서는 무상(無常), 무아(無我), 공(空)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러한 점을 두고 학자들은 불교를 소극적인 종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21세기 문명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반야사상을 통하여 문명사회를 해결하고자 한다. 머리를 깍는 데에는 면도가 필요하고, 종이를 자를 때에는 가위를 써야 하고, 나무를 자를 때에는 톱이 필요하다. 그러나 톱으로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21세기를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사상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1세기에 필요하다고 말하는 반야사상이란 무엇인가?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로 함축되어진다. 인간이란 그 구조가 현상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으로 되어있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현상적인 것이란 일차원적인 세계를 말한다. 현실세계를 말하는 현실주의자들은 현상만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유물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정신적인 것을 이차원적이라 하고, 고귀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정신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현상적인 것에 부정적이다. 이러한 차원의 사람들은 현실과 대화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려 하고 자기연민에 빠져서 망상과 환상에 빠지기 쉽다. 현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이 되면 안된다. 물질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대로, 정신적 세계는 정신적 세계대로 중요한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색은 공을 떠나 존재할 수 없고, 공은 색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너무 가까이 해도 안되고 너무 멀리 해도 안된다. 우리는 계란의 생긴 모습을 잘 알고 있다.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계란의 껍질이다. 그 껍질을 깨고 나면 얇은 막이 나오는데, 그것을 지성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막 다음에 흰자위가 나오는데 그것을 정신이라 표현하고, 그 안의 노른자위를 생명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과 정신과 지성과 물질이 겹쳐져 존재하는 것이다. 구라파인들은 정신을 일컬어 동작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동작한다는 말을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존재라고 하였다. 그러한 존재론에서 실존주의 철학과 실존주의 문학 등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문제만 해결하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정신만이 아니라 부동(不動)의 생명의 세계를 이름하여 도라고 하였다. 그 도를 가치본질이라 하였다. 계란이 온전 하려면 가치본질이 살아있어야 하고, 정신이 살아있어야 하고, 그러한 지성이 표현된 물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이 시대를 보자면 가치본질도 온전하지 못하고, 정신도 건전하지 못하며, 지성은 마비되어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면 지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는 그 지성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자살무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그 물질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를 조화시키지 못한데 기인한다. 반야란 물질의 세계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의 세계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 두 세계를 조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야사상은 21세기에 인류사회가 지표로 삼아야 할 사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신불의 권능을 통해서 오늘의 시대를 어떻게 해결해 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가정도 평화롭고 세상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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