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78 동국대학교 대학원졸업
`99 동국대학교 선학과 박사과정 수료
범어사 포교국장
미국 시카고 불타사 주지 역임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회수 : 148회      
제목 : 화합하여야 법회일자 : 2005-07-25
  본인이 오늘 하게 될 법문은 이미 많은 큰스님들께서 하셨을 테지만 들었던 것은 복습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것이라 생각되면 적어두었다가 마음에 세기면 좋을 것이다. 구지 적지 않더라도 마음에 적어둘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속에 새겨두더라도 또 그것을 입으로 외우고 들려주고 하기를 천번을 더 한다 하더라도 직접 실천하는 것만 같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스님이 되어서 평생 염불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염불을 하여도 깨달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다 되었다고 생각해서 나무아미타불을 염해서 극락세계를 발원코자 하였다. 그래서 깊은 산속의 폭포 위로로 올라가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냥꾼이 지나다가 “내가 쫓던 짐승이 이쪽을 지나가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까?”하고 물었다. 스님은 “보다시피 염불을 하느라 보지 못했소, 또 설령 보았더라도 그것을 가르쳐 줄 수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사냥꾼은 다시 “가르쳐 주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하고 되묻자 스님은 “저는 보다시피 스님이라 계율을 지켜야 하고, 나도 생명을 죽여서는 안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죽이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시오.”하였다. 다시 사냥꾼이 “스님이 지금 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평생을 염불을 하고 살았지만 부처님을 부르면 부처님의 마음을 깨달아 성불할 줄 알았는데 부처님을 염불하고 염불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뛰어내려 죽으며 아미타불을 염하려고 합니다. 임종시에 지극정성으로 열번만 아미타불을 염하면 극락세계에 태어난다고 하니 그 세계에 가면 좋은 일만 있다고 하니 그 세계에 가면 성불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사냥꾼이 “스님은 평생 염불을 얼마나 했습니까?”하고 묻자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수십억은 했을 겁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사냥꾼이 이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나는 호구지책이더라도 생명을 죽이는 사냥꾼인데, 계율을 지키고 생명을 죽이지 않는 스님도 저렇게 걱정을 하는데 나는 죽어서 어떻게 될 것인가’ 하였다. 그리고는 활 통을 벗으며 “스님! 스님보다 제가 더 급합니다.” 하며 스님이 들고있던 목탁을 빼앗아 들고 “천 타불 만 타불 억 타불” 하며 물속으로 뛰어내렸다. 사냥꾼의 생각은 임종시에 열번만 아미타불을 찾으면 된다지만 수십 억번을 부른 스님도 있는데 열번으로는 안될 것이고 천번 만법 억번을 찾았으니 분명히 극락세계로 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잠시 후 사냥꾼이 “스님 감사합니다. 제가 먼저 극락세계로 가겠습니다.”하며 손을 흔들며 극락세계로 올라가는 것이다.
스님은 평생을 염불하였지만 어떤 사람은 공부해서 깨달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공부해도 깨닫지 못했다고 하니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이야기가 옳은지 확실한 신심을 가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냥꾼이 극락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는 ‘이때다’ 싶어 물속으로 뛰어 내렸다. 그러나 스님은 물고기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말았고 결국 등에 나무가 달린 물고기가 되었다고 한다.
백낙천이라는 중국의 대 문장가가 산속에 거처하는 조가선사를 찾아가 “무엇이 불법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조가선사는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라는 초등학생도 알법한 대답을 해주었다고 한다.
화엄경에서는 ‘일체중생이 다 마음속에 갖고있는 부처를 부처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세상 세계 모두가 다 아름다운 삶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고 가르치고 계신다. 인도의 경우 태어나면서 이미 신분이 정해지므로 신분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하층민의 삶이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고통이라고 대대로 생각해 왔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제일 먼저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요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셨다.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본다면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서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 생각하면 그 날부터 이 세상은 극락세계가 되는 것이다.
한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은 아이스크림 장사고 다른 아들은 우산 장사였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비가 오는 날엔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들이 장사가 잘 안될 것이 걱정되고 맑은 날엔 우산을 파는 아들이 걱정이 되어 매일 눈물로 살았다 한다. 그런데 하루는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파는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이고 맑은 날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이니 매일이 극락세계가 아니오.”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세상에는 항상 명암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고 살아가느냐에 달린 것이다.
팔정도에서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라고 하였다. 그러한 사람은 정업을 짓고 살게 되는 것이다.
천수경에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 본래 죄에는 자성이 없다. 마음이 멸하면 죄 역시 멸한다’ 라 하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래는 ‘여여한 자리에서 오신 분’, ‘여여한 진리의 세계로 가신 분’이다. 금강경에서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응당히 주하지 않는 마음을 낼 줄 알면 그가 여래다’ 라고 하였다. 내가 만약 항상 여래처럼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 할 수만 있다면 팔만대장경이 모두 내 가슴속에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많은 경전을 암기하고 백팔 배 삼천 배 만 배를 하여도 여래처럼 살지 못하는 까닭은 내 마음이 정견을 갖고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야의 지혜를 갖고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 수보리가 “어떻게 마음을 항복 받으면 좋겠습니까? 마음을 어떻게 주하면 좋겠습니까?”라고 여쭙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菩薩)이 유(有)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이면 즉비보살 (卽非菩薩)이니라.”라고 하였다.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아만을 없애야 한다. 마음 속에서부터 정견이 솟아야만 그 아만을 없을 수 있다.
법구경에 ‘향싼 종이에서 향내가 나고 생선 묶은 새끼에서는 생선비린내가 난다.’고 하였다. 누구나 향내 나는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나는 항상 남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괴롭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나 때문에 산다’고 생각하면 괴롭지 않다고 한다. 이것이 항복기심(降伏其心)이다. 자신의 마음을 항복 받으면 번뇌망상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즐겁고자 한다면 우선 화합하여야 한다. ‘화(和)’라는 글자를 보면 ‘벼 화(禾)’자에 ‘입 구(口)’자 이다. 벼라 함은 음식이니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면 기분 좋은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으냐 하고 질문을 한다면 그기에 명확한 답은 없다. 왜냐하면 살아온 방식이 태어난 모양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산중에서 스님들이 묵언(默言)참선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호롱불의 심지가 타서 끄질 듯 말 듯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한 스님이 “누가 저 호롱불의 심지를 좀 올려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다른 한 스님이 “묵언 중인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였다. 그러니 다시 “그렇다면 묵언중인 당신은 말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하느냐”고 되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 묵언이 모두 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연기법을 가르쳐 주셨다. 쉽게 말하면 인과법이다. 씨앗을 심고 노력을 다하면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업이란 것은 그러하다. 전생에 지은 나쁜 업이 오늘날 나에게 오면 내가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고 바른 길을 가게 된다.
옛날 백장스님에게 늘 법문을 듣는 한 여인이 찾아와 묻기를 “스님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그러자 스님은 “인과에 떨어지는가 떨어지지 않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한 스님은 인과에 떨어질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불교에서 중요한 것은 복을 짓는 것이 아니라 복을 지을 수 있는 마음이다. 결국 불교는 마음을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관세음보살은 “구일체공덕(具一切功德) 자안시중생(慈眼視衆生) 복취해무량(福聚海無量) 시고응정례(是故應頂禮)” 모든 능력을 구비하신 분이여 자비로운 눈으로 우리를 굽어보시네, 넉넉하고 깊기가 바다 같으므로 저희들이 머리 숙여 예를 올립니다.
그런데 바로 여러분들이 부처이므로 이러한 모든 능력을 구비하였고 자비로우며 넉넉하기가 바다와 같으므로 여러분을 쳐다보며 우러러 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부처님을 찾느냐, 내가 부처님께 다가가느냐, 내가 부처인가 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욕망과 애욕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을 없애고자 한다면 따라하기 바란다.
컵에 물을 한 컵 떠놓고 바라보며 “여기에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보듯이 바라봤으면 좋겠다.”라고 관을 하며 가까운 사람에게 건네주고 또 그 다음 가까운 사람에게 주다 보면 항상 내가 자비를 갖추어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기도하는 마음이요 염불하는 마음이요 참선하는 마음이요 간경하는 마음이다.
참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내 마음을 깨닫기 위해서 이다. 그 마음은 중생이 아니라 부처인 것이다. ‘내 마음이 중생이다’ 하는 것 보다 ‘내 마음은 부처다’ 하면서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 세상에는 거미처럼 사는 사람, 개미처럼 사는 사람, 꿀벌처럼 사는 사람, 배짱이처럼 사는 사람 등이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일까? 꿀벌처럼 사는 사람일 것이다. 꿀벌은 꿀을 얻으면서 씨앗을 뿌려주기 때문에 상부상조하며 살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상부상조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속에 있는 부처님의 마음을 어떻게 갈무리하고 어떻게 쓸 것인가를 깨닫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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