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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범어사 동산스님을 은사로 득도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W.F.B초청으로 태국 방콕에 유학 WAT. Benchamabopil사원에서 남방불교 연구 일본 경도불교대학원에서 불교학 연구(천태학) 조계종 포교원 제2대, 제4대 포교원장 역임 1996년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대상 현재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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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수 : |
1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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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
무진장스님-선사어록(禪師語錄) |
법회일자 : |
2004-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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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臨濟)스님이 말씀하기를 `사대(四大)는 법을 설할 줄도 들을 줄도 모르고 허공도 또한그러한데, 다만 네 눈앞에 뚜렷이 밝고 밝은 형상 없는 것이라야 비로소 법을 설하고 들을 줄 안다`고 하였다. 지금 여러분들은 설법을 무엇으로 듣고 있는가? 몸으로 듣는가? 아니면 마음으로 듣는가? 마음으로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마음 역시 분별망상으로 이루어진 중생심인 것이다. 분별망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이 있는데 그것을 성품이라 한다. 그 성품을 본 사람을 견성인이라 하여 도를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 말씀하시기를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인이며, 또한 이것이 그대의 마음이다. 불성이 지금 그대의 마음 가운데 있으니 어찌 부처를 밖에서 구하겠는가? 마일 그대가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옛 어른들이 도를 깨달아 나아간 입도인연을 들어보아라.’고 하였다.
전등록에는 사자교인하고 한로축괴(獅子咬人 韓로逐塊) ‘사자는 사람을 무는데 개는 흙덩이를 쫓아간다.’ 사람이 시선을 돌리기 위해 흙덩이를 던지면 사자는 상관없이 사람을 쫓아 가지만 개는 흙덩이를 쫓아간다는 말이다. 성현의 지혜는 사자의 행동과 같고 중생은 흙덩이를 쫓는 개와 같다는 말이다.
선어록(禪語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범본참공안상(凡本參公案上)에 절심주공부(切心做工夫)하되, - 무릇 공안(화두)을 참구해 나아감에 간절히 생각을 기울여 공부를 하되 여계포란(如鷄抱卵)하며, 여묘포서(如猫捕鼠)하며, - 닭이 알을 품듯이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하며, 여기사식(如飢思食)하며, 여갈사수(如渴思水)하며, - 굶주린 자가 밥을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이가 물을 생각 하듯이 하며, 여아억모(如兒憶母)하면 필유투철지기(必有透徹之期)라. - 아이 잃은 어머니가 아이를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조사언을 터득하게 된다. 참선을 할 때 뿐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도 명심해야 할 말이다.
참선(參禪)엔 수구삼요(須具三要)니 - 참선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일(一)은 유대신근(有大信根이요) 이(二)는 유대분지(有大憤志)요 삼(三)은 유대의정(有大疑情)이라 - 첫째는 큰 신심이고, 둘째는 큰 분심이며, 셋째는 큰 의심이다. 구궐기일(苟闕其一)하면 여절족지정(如折足之鼎)하야 종성폐기(終成廢器)하니라. -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 건이 되고 말 것이다.
차사(此事)는 여문자(如蚊子)가 상철우(上鐵牛)하야 갱불문여하약하(更不問如何若何)하고 -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소등에 올라타서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묻지 말고 하취부득처(下嘴不得處)에 기명일찬(棄命一 )하면 화신투입(和身透入)이니라. - 그 부리를 낼 때에 생명을 걸고 한번 내려 꽂을 때에 몸과 부리가 다 들어가는 것이다.
공부(工夫)는 여조현지법(如調絃之法)하야 긴완(緊緩)에 득기중(得其中)이니, - 공부는 마치 악기의 줄을 고르는 것과 같아 팽팽하고 느슨함에 알맞아야 하니, 근즉근집착(勤則近執着)하고 망즉낙무명(忘則落無明)하리니, - 부지런히 하면 집착하기 쉽고 게으름을 부리고 잃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되니 성성역력(惺惺歷歷)하고 밀밀면면(密密綿綿)이니라. - 항상 한 생각을 깨어있어야 하고 항상 밝게 깨어 꾸준히 하여야 하느니라.
공부(工夫)가 약타성일편즉종금생(若打成一片則縱今生)에 - 공부가 설령 정신의 통일을 가져온 즉 금생에 그 이치를 터득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투부득(透不得)이라도 안광낙지시(眼光落地之時)에 불위악업소견(不爲惡業所牽)이니라. - 죽을 때에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저참선자(大抵參禪者)는 환지사은(還知四恩)이 심후마(深厚마) - 무릇 참선을 하는 사람은 네 가지(부모님, 나라, 스승, 동포)은혜에 감사할 줄 아느냐 환지사대추신(還知四大醜身이) 념념쇠후마(念念衰朽마) - 육신은 사대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 생각 지날 때 마다 빠르게 쇠하여 가는 줄 아느냐 환지인명(還知人命)이 재호흡마(在呼吸마) - 사람의 목숨이 호흡지간에 있는 것을 아느냐 생래치우불조마(生來値遇佛祖마) 급문무상법(及聞無上法)하고 생희유심마(生希有心마) - 금생에 태어나 부처님과 조사를 만났는가 법문을 듣고 희유한 마음을 가졌느냐 불리승당(不離僧堂)하여 수절마(守節마) -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불전에 와서 절계를 지킬줄 알아야 한다. 불여인단(不與隣單)으로 잡화마(雜話마) 절기고선시비마(切忌鼓扇是非마) - 세상을 살아가며 잡스러운 말을 하지말고 시비를 일삼지 말아야 한다 화두(話頭)가 십이시중(十二時中)에 명명불매마(明明不昧마) - 화두를 듦에 하루종일 들어졌느냐 대인접화시(對人接話時)에 무간단마(無間斷마) -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에도 간단함이 없었느냐 견문각지시(見聞覺知時)에 타성일편마(打成一片마) - 보고 듣고 느낄 때에 한생각을 여실히 이루었느냐 반관자기(返觀自己)하야 착패불조(捉敗佛祖) - 자기의 마음을 잘 살펴서 부처님과 조사의 마음을 붙들었다고 생각하느냐 금생(今生)에 결정속불혜명마(決定續佛慧命마) - 금생에 결정코 부처님과 조사의 지혜로운 뜻을 이어가겠다는 맹세가 되어있느냐 기좌편의시(起坐便宜時)에 환사지옥고마(還思地獄苦마) - 일어나고 앉고 걸어도 편안할 때에 지금 지옥으로 가고있음을 알고있느냐 차일보신(此一報身)이 정탈윤회마(定脫輪廻마) - 이 몸을 받아 세상에 태어났을 때 결정코 윤회를 끊겠다는 확신이 섰느냐 당팔풍경(當八風境)하야 심부동마(心不動마) - 동서남북에서 부딪혀 오는 모든 생각이 일어날 때 마음에 움직임이 있지 않았느냐 차시참선인(此是參禪人)의 일용중점검저도리(日用中點檢底道理)니 - 이것은 참선하는 사람의 항상 점검해야 할 도리이니 고인운(古人云)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하면 -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금생을 향하여서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이리요 하니라. -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할 것인가
학어지배(學語之輩)는 설시사오(說時似悟)나 대경환미(對境還迷)하나니 - 말을 배우는 무리들이 말을 할 때에는 깨달은 듯 하나 경계에 이르면 어리석으니 소위언행(所謂言行)이 상위자야(相違者也)라. -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다
고덕(古德)이 운(云) 지귀자안정(只貴子眼正)이요 불귀여행리처(不貴汝行履處)라 하니라. -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자네는 어찌하여 자네의 바른 안목만 주장하고 자신의 행이 옳지 못한 것은 살피지 못하느냐
원제도자(願諸道者)는 深信自心하야 不自屈不自高니라. 원제도자 심신자심 부자굴부자고 - 원컨데 모든 도를 닦는 사람은 깊이 자기의 마음을 믿어서 심성을 굴욕되게 하지 말것이며 높이 교만하지도 말아라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심수도 단조무명 - 어리석은 마음으로 도를 닦으면 어리석음을 더할 뿐이다.
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요 別無聖解니라. 수행지요 단진범정 별무성해 - 수행해서 요긴한 것은 다만 범속한 것을 내버리는 것이지 따로 성현의 말을 구할 것은 없지 않느냐
불용사중생심(不用捨衆生心)이요 단막염오자성(但莫染汚自性)하라 - 중생심을 버리지 아니하고 다만 스스로 자성을 오염되지 않게 하라 구정법(求正法)이 시사(是邪)니라. - 바른 법을 구한다는 생각이 옳지 않은 것이다.
지환즉이(知幻卽離)라 부작방편(不作方便)이며 - 환인줄 알면 곧 여의어라 방편을 쓸 것이 따로 없으며 이환즉각(離幻卽覺)이라 역무점차(亦無漸次)니라. - 환을 버리면 바로 깨달음이니 그기에 깨달아 나아가는데 점차가 있겠는가
이수돈오(理雖頓悟)나 사비돈제(事非頓除)라. - 이치로 말하면 비록 깨달을 수 있으나, 현실에 부딪히면 제하기가 어렵다
대음수선(帶狀修禪)은 여증사작반(如蒸沙作飯)이요 - 음한 생각으로 도를 닦는 자는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은 것이요 대살수선(帶殺修禪)은 여색이규성(如塞耳叫聲)이요 -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도를 닦는 자는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은 것이요 대투수선(帶偸修禪)은 여루치구만(如漏치求滿)이요 - 훔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자는 밑없는 항아리에 물을 붇는 것과 같은 것이요 대망수선(帶妄修禪)은 여각분위향(如刻糞爲香)이니 - 거짓된 것으로 도를 닦는 자는 똥으로 향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종유다지(縱有多智)라도 개성마도(皆成魔道)니라. - 일시적으로 볼 때에는 깨달은 것 같으나 모두 마구니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무덕지인(無德之人)은 불의불계(不依佛戒)하며 -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으며 불호삼업(不護三業)하며 방일해태(放逸懶怠)하야 - 삼업을 지키지 않으며 함부로 놓아 지내어서 경만타인(輕慢他人)하며 교량시비(較量是非)로 이위근본(而爲根本)하니라. -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옳고 그름으로 시비를 일삼는다
약불지계(若不持戒)면 상부득개나야간지신(尙不得疥癩野干之身)이온대 - 만일 도덕성이 없으면 오히려 여우만도 못한 것이 되거늘 항청정보리과(況淸淨菩提果)를 가기호(可冀乎)아. - 하물며 청정한 보리도를 버릴 수 있겠는가
무애청정혜(無碍淸淨慧)가 개인선정생(皆因禪定生)이니라. -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가 다 우리의 고요한 심성(선정)에서 나오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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