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통도사에서 사미계
1969년 통도사에서 구족계
1971년 통도사 강원 강주
1980년 중앙승가대 강사,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
1985년 중앙승가대 불교학과 교수
前 중앙승가대학교 총장
現 중앙승가대학교 명예교수
회수 : 100회      
제목 : 종범스님 - 행위와 만족 법회일자 : 2004-10-11
  거석홍안(擧石紅顔)이란 말이 있다.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면 얼굴이 붉어진다는 뜻이다. 즉, 힘든 일을 하고 나면 만족감과 성취감이 생긴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열심히 하지 않고서는 만족감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그렇지만은 않다. 해도 해도 만족함을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는 것에 열중하고 만족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족을 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만족을 최대한으로 하는 것이 바로 도이다.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무위라 하는데 이것이 해탈이다. 만족이 중심이며 하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젖먹이 아이가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 에게서 젖을 먹고 휴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묘미는 쉬는 그것에 있다. 젖을 먹고 편안하게 잠이 든 그 모습이 바로 만족이다.
요즘은 가치관이 만족에 있지 않고 행위에 있기 때문에 끝없이 무엇인가를 하려 든다. 지혜로써 만족을 얻는다면 그것이 도요 해탈이다.
조건없이 만족하여야 한다. 조건이 있게되면 욕망이 생기기 때문에 만족 할 수가 없게된다.
지혜로써 만족 할 수 있는 학습이 필요한데, 밥을 먹기 위해서 음식을 장만하고 또 먹고 난 후 편안해 지는 상태 그것이 중유한데, 많이 먹게되면 오히려 불편해 질 수 있다. 그렇다면 식사로 인한 만족을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적당히 먹었을 때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일을 했어도 늘 만족감을 지니고 살면 그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혼자서 만족할 수 없다면 둘이 있어도 만족할 수 없다. 자신을 만족한 자신으로 변화 시켜야 한다.
게임을 보면, 승과 패의 판가름이 금방 나타난다. 게임을 하는 중에 느끼는 재미보다는 게임이 끝난 후 잠시 쉴 때가 게임의 제일 큰 재미라고 말한다.
유교에서는 안분낙도(安貧樂道)라는 말이 있다. 조건없이 만족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도교에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 불교에서는 해탈열반(解脫涅槃) 등의 말이 있는데, 이 모두가 행위보다 만족에 의미를 둔 말들이다.
배가 고플 때에는 주위 환경이 보이지 않다가 배가 불러지고 나면 주위 환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로소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것이 기쁨이다.
본인이 비행기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도중 기침이 나오려 하는 것이다. 그것을 참으려고 하였다. 그 때는 기침을 참아야 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참는 그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지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쁨이란 모두 있는 것인데 그 때에는 그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없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것은 자기 욕심과 욕망을 채워 줄 사람이 없을 뿐 사람은 있는 것이다. 구하는 행위가 그 사이를 단절시켜 놓은 것이다. 구하는 것이 없이 본다면 모든 것이 다 신비롭고 대단한 것이다. 비로소 천지 만물과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또 얼마전 김포에서 진주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출발 할 때에는 분명 진주라고 했는데, 도착해서 보니까 사천공항이라 하였다. 말은 어디까지나 말일 뿐 가 보아야 알것이다. 그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 파리 한 마리가 앞에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파리는 제아무리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어도 진주까지 가게 되어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을 것이다.
지어지선(至於至善)이란 말도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그칠 줄 아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만족을 모르고 오래 살아봐야 무엇하겠는가. 진주행 비행기 탄 파리는 바삐 움직여 봐야 진주까지 갈 것이고, 가만히 있어도 진주까지 간다. 하지만 파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명상(瞑想)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생각을 줄인다는 말이다.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근심도 생기는 것이다. 생각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생각이 지나치면 근심 걱정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이 생각이 있어서 동물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지만 생각이 많아서 동물들에게는 없는 병인 미침(光)이 생기는 것이다. 급기야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개나 소가 미치게 되었다. 사람으로부터 불안한 의식을 계속 주입 받아서 개, 소 등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발달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늙는 것에 대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만들어 놓은 두려움이다.
동아시아에서의 행복은 지혜로부터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부처상이나 산신령의 모습을 보아도 지혜의 상징인 수염이 난 노인으로 표현한 것이다.
계곡물을 생각의 시작으로 보고, 생각에 의한 행동을 강물로 비유한다면, 그 강물은 큰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이 때가 비로소 만족인데, 바다에 들어가면서 강물은 없어지게 된다. 만족이란 그러한 것이다.
만족이란 무아의 현상이다. 고통은 나라고 하는데서 생긴다. 그래서 자아가 아니고 존재라는 말도 한다. 단지 존재일 뿐이다.
하다가 만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것일 까. 누군가가 자유를 구한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해탈을 구한다고 한다고 할 때, 자유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자유로울 수 있고, 해탈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해탈이다. 도가도비상도가 그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기에 매어있는 한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이가 극락에 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극락에 들어가는 순간 그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다.
해혜선사 께 여쭈었다. “어떤것이 생사심(生死心)입니까?” 하자 선사께서는 “열반을 구하는 마음이 생사심이다.”고 하셨다. 열반으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열반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금강경 불수 복덕분(不受福德分)에, ‘보살(菩薩) 소작복덕(所作福德) 불응탐착(不應貪着)이라’ 보살은 자비심으로 복을 열심히 짓지만 자신은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것 보다 더 많이 받고 싶어한다. 보리살타도 바로 그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계속 복을 짓고 스스로는 받지 않는다.
옛 스님들 께서도 외국사 내조사(外國師 內助師)라 하여 그렇게 행하셨다. 국사는 복국우세(福國佑世) 찬리왕하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나라를 복되게 하고 왕의 하는 일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조사는 구하는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아직 만족함이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열심히 해서 보시하고 회향하는 것이 수행이다. 열심히 해서 내가 더 얻고 가지려고 하면 항상 모자라게 마련이다.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면 더 이상 강물이 없어지듯, 만족함을 느끼면 더 이상 욕망이 사라지듯이 하여야 한다. 밖으로 복을 짓고 안으로 만족을 하는 것 이것이 보살이다.
하나를 자지고 만족을 못하면 둘을 가져도 만족을 못한다. 하루를 살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천년을 살아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늘 만족한 상태로 복 많이 지어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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