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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범어사 동산스님을 은사로 득도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W.F.B초청으로 태국 방콕에 유학 WAT. Benchamabopil사원에서 남방불교 연구 일본 경도불교대학원에서 불교학 연구(천태학) 조계종 포교원 제2대, 제4대 포교원장 역임 1996년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대상 현재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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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수 : |
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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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
무진장스님-참회하며 살아야 |
법회일자 : |
2004-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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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어록을 통해본 참회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염송의 부대사 어록에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하고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 기좌진상수(起坐鎭相隨) 어묵동거지(語默同居止) 섬호불상리(纖毫不相離) 여신영상사(如身影相似) 욕식불거처(欲識不去處) 지저어성시(只這語聲是)라”는 구절이 있다. 밤마다 밤마다 부처님을 보듬어 안고 자고 아침마다 아침마다 또한 같이 일어난다. 일어서고 앉고 하는 데 참으로 서로 따르며, 말하고 잠자는 데 함께 살아간다. 터럭 끝만큼도 서로 떠나가지 않는 것이 마치 몸과 그림자 같은 사이구나. 그대가 만약 가지 않는 곳을 알고자 하면 자못 너의 말소리 나는 것, 바로 이것이니라.
조주스님 어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니불부도수(泥佛不渡水)하고 목불부도화(木佛不渡火)하며 금불부도로(金佛不渡爐)하니라” 진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건널 수 없고, 나무로 만들 부처는 불을 건널 수 없으며, 금으로 만든 부처도 용광로를 건널 수 없다. “삼불형이가 부진불(三佛形異 不眞佛) 진불내재(眞佛內在)라” 세가지 모양의 부처가 진짜 부처가 아니라 참 부처는 심성속에 있다. 언어문자로 부처를 알고 그 이치를 모른다면 그것도 아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언어문자 이전에 아는 것이 있어야 한다.
대혜 종고선사 어록에는 “예리한 칼 끝에 묻어있는 꿀은 핥지 말고, 비상을 만드는 집에서는 물맛을 보지 말아라. 그리하면 금의환향하리라.”는 구절도 있다.
금강경 서문에서는 열반경의 말을 인용하여 금재산중(金在山中)이나 산부지시보(山不知是寶) 금이 산에 묻여있지만 산을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역부지시산(寶亦不知是山) 하이고(何以故) 또 금도 산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위무성고(爲無性故) 인즉유성(人則有性) 취기보용(取其寶用) 이는 성품이 없어 그러하며, 사람은 성품이 있어 그것을 알고 취하여 쓸 줄을 안다. 중생심 가운데 부처가 있고, 부처 가운데 중생이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조국사께서는 이즉돈오 사비돈제(理卽頓悟 事非頓除) 이치로 말 할때에는 알 것 같으나 현실에서는 참으로 알기 어렵다. 돈오수동불이나 다생습기심 (頓悟雖同佛 多生習기生) 깨달으면 부처와 다를 바 없지만 중생은 습기심이 있어 본 면목을 알기 어렵다.
장자어록에는 부경수단(鳧脛雖短)이나 속지즉우(續之則憂)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으나 다리를 이어 붙인다면 근심스러울 것이다. 학경수장(鶴脛雖長)이나 단지즉비(斷之則悲) 학의 다리가 길다고 그것을 자른다면 슬프다. 중생심으로 긴 것을 짧게 하고, 짧은 것을 늘이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벽암록에는 수가에 무명월청풍이리요(誰家 無明月淸風) 어느 집인들 맑은 달과 맑은 바람이 불지 않는집이 있으리요 담을 높이 쌓으면 바람이 없을 것이요, 처마를 길게 늘어뜨리면 달빛은 없을 것이다.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니다불대하고 수장선고라(泥多佛大 水長船高) 진흙이 많으면 부처가 크고 물이 깊어야 배가 높다.
학인이 묻기를 “저 뜰앞에 잣나무가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조주스님께 여쭈었다. 스님은 대답하시기를 “있느니라” 학인이 또 묻기를 “그렇다면 잣나무는 언제 성불하옵니까?” 스님은 “허공이 떨어질 때 성불하느니라.” 학인이 다시 묻기를 “허공은 언제 떨어집니까?” 또 스님은 “잣나무가 성불할 때에 허공이 떨어지느니라.”라고 대답하였다. 이 문답에서 답변이란 없다. 스스로 깨우쳐야 할 것이다.
선지식아 이 일은 모름지기 성품을 쫓아 일어나는 일이니 항상 생각생각이 항상 청정한 마음을 내어서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라. 자기의 심성가운데 있는 법신을 보고, 자기의 마음 가운데 있는 진정한 부처를 보아서 스스로 제도하고 스스로 경계함이 옳은 일이니, 이로 말미암아 여기에 올(법을 들으러) 일이 없나니라. 이미 여러분이 다 한자리에 모였으니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각각 무릎을 꿇고 앉아 무상참회를 하라. 대중이 다 무릎을 꿇고 앉거늘, 첫째는 계향(戒香)이니 자기의 마음 가운데 그릇된 마음이 없으며 악한 마음이 없음이다. 둘째는 정향(淨香)이니 곧 선과 악의 경계를 볼 지라도 스스로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음이다. 셋째는 혜향(慧香)이니 자기의 마음 가운데 추호도 걸리는 바가 없어서 항상 지혜로 자기의 성품을 살펴서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며 비록 좋은 일을 많이 했을 지라도 그 마음에 집착함이 없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고 가난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넷째는 해탈향(解脫香)이니 자기의 마음가운데 반연한 바가 없어서 선한것도 생각지 않고 악한것도 생각지 않아 걸림이 없는 것이다. 다섯째는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이니 자기의 마음 가운데 이미 선과 악에 반연(攀緣)한 바가 없으니 가히 공한데 빠져서 적적한 것을 지키지 말고 곧 모름지기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서 항상 자기의 본심을 알아서 모든 불법 이법에 요달하여, 빛을 숨기고 사물을 접하되 너)도 없고 나도 없어서 보리의 진성을 바꾸지 않는것이 해탈지견향이니라. 선지식아 이 향은 각자가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훈습하여라. 밖을 향해서 찾지 말라. 여러분과 더불어 상이 없는 참회를 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없게 하고, 신구의 삼업을 청정케 하리니 각각 나를 따라서 일시에 다 이르되 제자들이 과거의 생각과 현재와 미래의 생각에 어리석음에 물들지 아니하고 어리석음을 일시에 소멸해서 기리 다시는 저지르지 않기를 원하며, 제자들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생각이 교만한 일체의 것에 물들지 아니하고 지은바 악업과 교만에 미치지 아니하며 다 참회하게 할 지이다. 선지식아 이상이 참회이니 어떤 것을 일러 참이라 하고 어떤 것을 일러 회라 하는가. 참이란 과거에 있던 일을 뉘우치는 것을 이르며, 회란 이 시간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일을 뉘우치는 것이니 이제 다 뉘우쳐서 다시는 짓지않게 함이 회이다. 범부는 어리석어서 지금까지 있어온 죄만 뉘우치고 이 시간 이후에 지을 죄를 뉘우치지 못한다. 그런 것을 뉘우치지 못한 고로 과거에 있던 허물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이후 죄가 일어나느니 앞에 지은바 죄가 없어지지 아니할 때 뒤에 일어나는 생각이 없어지지 아니하니 어떤 것을 일러 참회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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