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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범어사에서 수행중이며 불교사진가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아시안게임 경축사진전,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한국일보 초청전시를 비롯하여 LA(1982), 토론토(1991), 시카고(1994) 등에서의 해외전시 및 다수 개인전을 한 바 있다. 사진집 <승가I>(1980), <자연>(1985), <대웅전>(1995), <사찰벽화>(1999)등을 통하여 한국불교의 아름다움과 불법을 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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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수 : |
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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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
관조스님 - 가람배치의 의미 |
법회일자 : |
2004-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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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가족단위 또 여러 단체에서 문화탐방, 사찰참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찰을 많이 찾고있다. 단체로 사찰을 찾는 경우 가이드가 있던데, 그들의 설명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보인다. 사찰에 가보면 일주문(一柱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 등을 통해서 법당으로 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일주문 까지는 그저 평범한 길이지만 일주문에서 천왕문을 바라보면 천왕문의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천왕문에서 불이문으로 가는 길은 곧지 않고 휘어있어 바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한국사찰의 아름다움이다. 첩첩으로 겹쳐진 산과 같이 바로 훤히 보이게 하지 않고 감싸는 것이 바로 한국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직선적인 것은 공격적이다. 우리네 조상들은 어른을 바라볼 때에 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이러한 어른에 대한 예의가 사찰을 향하는 길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겹겹히 쌓인 산을 보면 ‘저 산을 하나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참배하는 그 모습을 절의 건축에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론해본다. 통도사의 경우 천왕문에서 바라보면 뒤의 영축산은 하나의 안방에 펼쳐져 있는 병풍과 같아 보이고, 통도사 전체 도량이 하나의 안방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사찰을 가꾸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런 동양적 미학을 느끼지 못하는 이가 많다. 또 통도사를 보면 대광전(大光殿), 용화전(龍華殿), 관음전(觀音殿)이 있는데, 대광전은 규모가 크며, 신라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용화전은 고려후기에 지어졌으며 대광전보다 규모가 적다. 대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며 용화전은 미륵불을 모셨는데, 미륵불을 모신 곳이 비로자나불을 모신곳 보다 크게 짓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관음전은 더 규모가 적다. 이것이 바로 동양적인 겸양의 덕이며 동양의 미학인 것이다. 범어사의 경우 일주문에서 보면 천왕문이 약간 틀어져 서있고, 천왕문에서 보면 불이문이 보이지만 불이문 이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올라가는 길 역시 약간씩 틀어져 있다. 이 역시 부처님이 계신 곳을 보다 더 미학적이면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다. 마곡사는 좀더 특이한 경우인데, 계곡을 사이에 두고 절이 두개이다. 그러나 한쪽 절에 사천왕문을 짓고 계곡에 다리를 놓음으로 해서 두 절이 하나의 도량으로 뭉치게 된 것이다. 번득이는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석사의 경우에는 구품의 극락세계를 상징한 절이다. 계단을 이용하여 구품을 구현하였고, 가장 위에 아미타불을 모셔 극락세계를 완성한 것이다. 또 여수에 흥국사에 가보면 축대에 물고기, 자라 등을 조각해 놓았다. 이를 보고 어떤 이는 “이곳이 산 속이라 물가가 그리워 조각하여 장식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식견으로 본다면 그 말도 옳겠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법당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 고해(苦海)를 건너 안락의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지고자 하는 기원의 대상이 바로 법당인 것이다. 그러므로 법당의 아래는 고해인 것이다. 그 물고기와 자라는 고해의 상징물인 것이다.
불자들 가운데 기도를 하고 그 기도를 성취한 체험을 한 이가 있을 것이다. 본인의 체험으로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었다. 약 3년 전 즈음 수미산엘 가게 되었는데, 티벳에서 출발하여 5일이 지나도록 조금의 물 외에는 먹을 수가 없었다. 막상 수미산 아래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산을 오를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수미산을 같이 오르지 못하고 남아있게 되었는데, 그 장소도 해발 4,200m나 되는 곳 이어서 숨을 쉬는 것 마저 만만치 않았다. 그때 느낌은 “다른 이들은 모두 성스러운 수미산을 향해 올라가는데, 나만 이렇게 기력을 잃고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은 나의 업장이 두터운 것이고, 무엇인가 잘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인은 일행이 수미산을 다녀오는 동안 기도를 하기로 하였다.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되고, 업장이 소멸된다고 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게 아니라 기도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녀와서 보니 기도의 체험인지는 몰라도 병이 나았다. 티벳으로 출발하기 전 발목이 부어오르는 병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큰 수술을 하여도 나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술을 하게 되면 수미산을 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기에 수술을 이후로 미루었었다. 그런데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니 말끔하게 나아있는 것이었다. 본인은 이것을 기도의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남방에 전해지는 부처님의 경전에, 아란존자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좋은 도반이 있으면 어떤 도움이 있습니까?”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좋은 도반이 옆에 있다면 그것은 모든 해탈의 길을 바로 걸어가는 길이며, 해탈이 성취된 것과 같다. 사성제(四聖諦)를 깊이 관찰해서 팔정도(八正道)를 이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성제를 관찰하지 않고 팔정도를 이행하지 않고는 해탈의 길을 갈 수 없다.” 열반경 중, 기원정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제자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독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부처님을 아란존자에게 방을 내어주도록 일렀다. 이는 방을 안내한 아란에게 “이불을 바꿔달라, 좋은 약을 달라, 과일을 달라”는 등 요구가 많았다. 검소해야 할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 아란은 이를 용납할 수 없어 부처님을 찾아와 이를 고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도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다 주는 것이 좋다. 요구대로 해 주라”고 하였다. 아란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 그 제자는 아라한을 증득하게 되었다. 이를 본 아란이 부처님께 다시 여쭙기를 “다른 이들도 그렇게 물자를 공급해 준다면 빨리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습니까?” 하였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는 이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할 준비가 다 되어 삿됨이 다 떠나 있었다. 물자의 도움을 잠시 받은 것 뿐이지 물자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고 하셨다. 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즈음에는 부처님고 육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병에 시달리고 있었고, 결국 순타의 공양을 받고 열반에 드시게 되었는데, 외도인 수자타가 찾아와 부처님께 여쭙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아란존자는 부처님의 몸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그 소식을 듣고 여쭙게 하였다. 수자타는 “인도에서 유명한 이가 많고 많은데 어느 분이 가장 훌륭한 분인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그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십시오, 그와 함께 깨달음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수자타여, 나는 29세에 오로지 선을 찾아서 출가하였다. 나는 출가하고서 50여년을 지내왔으며 바른 이치와 법의 영역만을 걸어왔다. 나 이외에는 진리의 길을 걷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고 수자타는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어 부처님 열반 후 수행을 거듭하여 도를 성취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너무 어렵게 이야기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어려운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상대에 따라서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 하셨다. 그렇게 부처님이 하신 이야기는 결국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으로 모아진다.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의 이면에는 또 청정이 있다. 육신과 마음에 온갖 번뇌 망상이 쌓여, 청정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잘 관찰하여 팔정도를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팔정도를 행하게 되면 집착이 끊어지고, 집착이 끊어지면 그것이 청정의 세계이며, 이것이 곧 깨달음의 세계이다. 청정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형성된 모든 것은 무상하다.’라고 분명한 지혜를 가지고 관찰하는 사람은 괴로움에서 멀리 떠나게 된다. 이것만이 사람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이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명하는 것이다. ‘형성된 모든 것은 괴롭다.’라고 분명한 지혜를 가지고 관찰하는 사람은 괴로움에서 멀리 떠나게 된다. 이것만이 사람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이것은 ‘일체개고(一切皆苦)’를 설명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라고 분명한 지혜를 가지고 관찰하는 사람은 괴로움에서 멀리 떠나게 된다. 이것만이 사람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이것은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설명하는 것이다. 진리가 아닌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바로 팔정도를 행하는 것이다.
예전 중국의 위인중 백낙천이라는 이가 있다. 그가 어느 고을의 원으로 부임하게 되어 그 고을의 어른을 찾아뵙고자 하였다. 유생들이 조소화상을 찾아뵙기를 권하여 길을 나섰다. 가보니 조소화상은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좌선을 하고있었는데, 졸고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백낙천이 조소화상을 바라보며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조소화상은 오히려 백낙천을 보고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백낙천은 “나는 땅위에 두발을 딛고 서 있고, 당신은 나무위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데 어찌 나를 보고 위험하다 하시오.”하였다. 조소화상은 이에 “나는 모든 분별이 끊어져 마음의 평온을 얻었으므로 비록 몸은 위험한 곳에 있다하나 위험하지 않으나, 그대는 비록 몸은 땅위에 두발을 딛고 서있으나 마음의 분별 망상이 우글거리므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하니, 백낙천은 할말을 잃었다. 곧 조소화상에게 가르침을 줄 것을 청하자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자정기의(自淨其意) 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하리라.” 하자 백낙천은 “아니 그런 가르침은 삼척동자도 아는 것인데, 어찌 대학자인 나에게 그런 가르침을 주십니까?” 하니, 조소화상은 “삼척동자가 아는 것이라 할지라도 80먹은 노인이 행하기도 어려운 것이다.”하였다.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잘 관찰하여 지혜로써 팔정도를 행하는 것이 해탈의 길이라고 하였듯이, 스스로 생각을 맑혀야 한다. 그리고 이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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