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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조계종 제 15 교구 본사 통도사에서 홍법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71년 조계종 제 15 교구 본사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1974년 조계종 제 12 교구 본사 해인사 승가대 대교과 졸업 1978년 조계종 제 4 교구 본사 월정사에서 화엄학 수학 1980년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규정국장, 재무국장 1983년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조사국장 역임 1988년 조계종 9,10,11,12대 중앙종회 의원 역임 1994년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조계종 개혁회의 상임의원, 11대 중앙종회 총무분과위원장 1998년 불교텔레비젼 대표 사장 및 불교방송 이사 역임 일산 포교당 여래사 주지 역임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주지 역임 현재 통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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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수 : |
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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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
정우스님-진정한 용기는 인내심이다 |
법회일자 : |
2003-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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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대통령께서 해인사를 방문해 북한산 관통도로와 관련하여 불교측에 도움을 요청하는 기사가 났었다. 지금 시대에 땅의 부족함으로 인해 관통도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만 생태계의 파괴를 염려하는 마음은 남아 있다. 북한산 관통도로 저지를 외치던 스님이나 새만금 갯벌 파괴를 저지하고자 일배삼보를 하던 스님들의 소리는 결국 반드시 지켜내겠다기보다는 환경파괴는 없어야 하며,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최소화 해야 하며, 지역주민과의 협의를 거쳐야 함을 일깨우고자 한 것일 것이다.
본인이 91년도에 마음을 내고 92년도에 종교용지를 구입을 위해 납입을 할 때 이미 여래사의 불사는 시작된 것이었다. 짧은 기간동안 큰 일을 해 내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확인하고 다짐하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에서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라는 표어를 소방서나 기타 긴급상황에 대처해야하는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본다. 기도하고 참선하고 수행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것이다. 이것을 확인한다, 다짐한다, 인식한다고 하는 것이다. 화엄경 초발심 공덕품에는 재석천왕이 부처님께 간곡히 예배하고 공경하면서 “깨치신 이여,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부처님의 법을 못 알아 들을 이도 있지만 알아 들을 이도 있으므로 설하여 주셔야 하옵니다.” 하며 권청하는 부분이 나온다. 초발심시변성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 하였다. 처음 낸 마음이 변덕부리지 않고 한결같이 살아가며 생명력이라는 신심을 지니고 발심한 자가 정진을 하면 정각을 이루리라는 말이다. 진정한 참 용기는 인내심이다. 휘둘러 대는 만용이 아닌 인내심이란 육바라밀에서 보면 인욕과 정진을 말한다. 인욕하면서 진지하게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용기인 것이다. 육바라밀의 시작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이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 근본은 지혜이다. 지혜있는 사람이 보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둑을 당하고 ‘보시한 요량으로 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진정한 보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지혜가 없는 이는 진정한 보시를 하기 어렵다. 선정삼매라는 내관사유를 통하지 않고서는 지혜가 드러날 수 없으며, 진지한 정진력을 행하지 않으면 내관사유 할 수 없으며, 진지한 삶을 정진이라 하는데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욕하여야 한다. 인욕은 반드시 규범속에서 살아야 한다. 보살 마하살은 이 몸이 허망한 것인 줄은 알지만, 이 몸속에서 선업(善業)도 악업(惡業)도 나오는 근본임을 알기에 이 몸을 아끼고 보살피면서 기르는 이유는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함이다. 그러나 중생은 몸을 보살처럼 보호하기는 하지만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삼계육도(三界六道)를 윤회할 수 밖에 없는 중생으로 사는 것이다. 보살의 마음은 자비심이 근본이다. 처음 낸 그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면 모두 성불 할 수 있다. 육바라밀도 이것 밖에 저것이 있고 저것 밖에 이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속에 저것이 있고 저것 속에 이것이 있는 것이다.
재석천이 부처님께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면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하고 여쭈었다. 공덕이란 복덕과 지혜를 말하는데, 무루의 복이요 무루의 덕이요 무루의 지혜이다. 부처님께서는 “불자야 이 이치는 깊고 깊어서 말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분별하기 어렵고 믿고 이해하기 어렵고 증득하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고 통달하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우니라 그러나 내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자와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범부중생들은 몸과 마음에 괴로움을 만나면 가지가지로 나쁜 업을 일으키고 만일 몸에 병이라도 생기면 마음에도 병이 생기고, 몸과 말과 뜻으로 여러가지 나쁜업을 짓게 된다.
범부중생은 왜 몸과 마음에 괴로움을 만나면 나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왜 욕계, 색계, 무색계를 헤매이는 것인가. 중생들은 생각하는 지혜가 없어서, 선근이 없어서 그러하다. 우리 모두는 본래가 선한 사람들이다. 고운 모습은 선근에서 시작하며 선근이 자양분이며, 지혜로움이 보살핌이다.
부처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 능히 나를 위하여 받아 지니고 늘 내 곁에서 필요한 일을 도와주며 그러고도 자기의 이익을 잃지 않겠느냐” 사회 봉사를 하더라도 어머니는 중심이 가정이어야 하며, 직장도 중요하지만 아버지의 중심은 가정이어야 한다. 가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지켜야 하는 것이다. 범부중생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하게 따르고 조급하게 서두르지만, 도 닦는 이는 마음만 붙들고 있으려 한다. 선가구감에서는 몸도 마음도 내관사유와 바깥경계가 둘이 아니므로 버리려면 다 버리고, 가지려면 다 지니되 분별하지 않고 시비하지 않는 그 자리가 참된 법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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