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향 동국대 선학과 졸업 동국대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졸업 동국대 선학과 박사 수료 동국대 선학과 강사 역임
이 강좌는 지난 2000년 수덕사 부설 무불선원 강좌 중 인도선정사상을 녹화 방송합니다
회수 :
8회
제목 :
제8강
법회일자 :
2003-10-31
< 禪 > 1. 四禪 八定에 대해서 <1> 四禪 八定이란? <2> 四禪에 이르기 위한 초기적 작업 <3> 四禪定 <4> 四無色定 2. 滅盡定 1. 四禪 八定에 대해서
<1> 四禪 八定이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異論을 어떻게 이해하고 떠나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론을 벗어나는 방법으로서 여실하게 定과 慧를 관찰할 것과 이어 사선, 사무색정을 설하셨다. *중부의 『削感經』(MN. I. 8 sallekhasutta, 大1卷, p573)에
初禪, 二禪, 三禪, 四禪의 네 단계의 선정을 총칭하는 말이며, 이는 마음의 통일 상태가 깊어지고 고요해지는 단계를 뜻한다. 사선은 선정수행의 중요한 한 형식으로 수행자가 욕망을 정복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寂靜에 들어가게 하는 방법이다.
- 四禪을 통한 세존의 마지막 열반의 순간 (The buddha`s last moment)-
완전한 고요에 잠기시어, 초 선(the first Ecstasy - Jhana)에 들고 곧 이어, 제 2선(the second Ecstasy - Jhana), 제 3선(the third Ecstasy - Jhana), 제 4선(the fourth Ecstasy - Jhana)에 차례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곧 이어 공무변처정(Realm of infinity of Space), 식무변처정(Realm of infinity of Consciouness) 무소유처정( The Realm of Nothingness), 비상비비상처정(The Realm of Neither perception nor Non-perception)에 이어, 멸진정(The Cessation of Perceptions and Sensations)에 차례로 들어가셨다.
즉 붓다는 스스로가 경험한 선정의 상태를 나타내 보이시고 분명 사선의 實修를 시작으로 열반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붓다는 처음 출가하여 법을 구할 때, 외도로부터 四禪 八定의 설을 배웠으며 이 四禪이 바로 초선 - 4선까지이고 여기에 四無色定이 더해져서 八定이 된 것이다.
Q. 經中에는 四禪에 대해서 어떻한 설명을 하고 있는가?
1. ‘열반 성취의 一法’, 2. ‘진정한 精進’ 3. ‘五下分結을 바로 알며 버리는 道’ 4. ‘無上의 경지’.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사선을 수행하는 사람을 일러 ‘스승의 가르침을 이룬 자.’ ‘殊妙한 最上智見에 도달하여 머문 자.’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 過去現在因果經』 卷 3 中 사선에 대한 설명
“그때 태자가 문득 묻기를 나는 이제 당신이 말한 생사근원을 알았다. 다시 무슨 방편으로 능히 이것을 끊을 수 있겠는가 ? 仙人이 대답하기를 ‘만약 이 생사의 근본을 끊고저 하는 이는 먼저 마땅히 출가하여 수행하되 계행을 닦고 겸손하고 몸을 낮추며 인욕하고 空閑處에 住하여 선정을 닦아 좋지 못한 일을 바라는 不善을 버리고 覺과 觀이 있음에 초선을 얻게 된다. 覺과 觀을 없이 하여 定이 생기어 기뻐하는 마음에 들어가면 제 2선을 얻게 된다. 기뻐하는 마음을 버리고 正念을 얻어 樂根을 갖추면 제 3선을 얻게 된다. 苦, 樂을 없애고 正念을 얻어 捨에 들어가며 제 4선을 얻게 되어 상념이 없는 과보를 얻는다.’고 하였으며, 다른 어떤 스승은 이와 같은 것을 해탈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나 定에서 깨어난 후 바야흐로 해탈처가 아닌 줄 안다. 色에 대한 想念을 여의고 空處에 들어가 對가 있는 생각을 滅하고 識處에 든다. 무량한 識에 대한 想念을 멸하고 오직 一識을 觀하여 無所有處에 들어간다. 가지가지 想念을 여의고 非想非非想處에 들어간다. 이 곳을 究竟解脫이라 하며 모든 수행자들의 彼岸이다. <2> 四禪에 이르기 위한 초기적 작업
1> 정신적인 집중의 계발 단계
四禪에 몰입하기 위한 가장 초기적인 작업으로 ‘정신적인 집중’ 즉 ‘定’이 어떻게 계발되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즉 사선에 이르기 전에 3단계의 정신적 집중상태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 samādhi의 세 단계 > < samādhi의 세 가지 相 > 예비적 사마디 ( 豫備定, preparatory concentration) 예비적 相 접근적 사마디 ( 接近定, access concentration) 초기의 相 몰두적 사마디 ( 沒頭定, absorption meditation) 선명한 相
< Samādhi의 세 단계 >
1. 예비정(豫備定)
수행을 시작하려 할 때 먼저 필요한 정신집중의 상태로 가장 초기의 노력상태이다. 이러한 집중은 보통 일상생활에서 무언가를 집중 할 때와 비슷한 의식상태인데, 사람에 따라 집중의 정도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매우 쉽고 힘있게 집중에 들어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마음을 한 곳으로 통일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러나 예비정에 쉽게 들어가는 사람의 경우라도 적절한 훈련이 加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예비정이 결코 止觀수행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보다 더 강고하고 튼튼하게 예비정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접근적 定을 얻을 때까지 자신에게 맞는 수행의 주제를 잡고 계속적으로 密密하게 초점을 맞추어 사마디 수련을 해야 한다.
2. 접근정(接近定)
『청정도론』에는 ‘두 종류의 사마디’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접근적 사마디 (近接三昧, access concentration)와 몰두적 사마디(沒頭三昧, absorption concentration)가 이것이다. 곧 마음은 두 가지 형태로 사마디(定)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선정(jhāna)에 이르게 된다. 접근적 사마디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모든 장애(諸蓋, Nīvaraṇa)가 끊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은 고요하게 된다. 둘째, 초기의 相, 선명한 相이 나타남과 함께 접근삼매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初禪이라는 본삼매(=몰두삼매)에 이르게 된다. 세째, 수행의 주제에 보다 더 밀착되고 강화된 꾸준한 집중상태이다. 네째, 마치 어린 아기가 막 걸음을 시작할 때 계속해서 땅에 넘어지는 것과 같이 아직은 모든 선정의 요소(jhāna factors: 諸禪支)가 그리 강하지 않은 상태이다. 접근정의 상태에서 수행자는 자신의 안과 밖에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 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인식이 더 이상 수행자의 정신을 흩어지지 않게 한다. 오직 수행자의 ‘주의’는 수행주제의 중심에만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3. 몰두정(沒頭定)
수행자의 마음이 완전히 수행의 주제에 몰입하여 들어간 집중상태로, 모든 생각과 감각들이 다 배재된 상태이다.『청정도론』에서는 몰두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沒頭三昧는 定의 획득적 단계로 마음에 선정의 요소(jhāna factors)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면서 몰두적 단계에 이르게 된다. 마치 건강한 사람이 그의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하루종일 서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이때는 諸禪支에 힘이 생기게 된다.” 이같이 몰두정은 ‘定(samādhi)을 성취’한 상태로 이를 통해 諸禪支의 변화를 거쳐 초선, 제 2 禪등 禪(jhāna)의 여러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보다 더 깊고 강화된 정신적 상태로 계속 올라감에 따라 수행자는 이전보다 더 순수하고 높은 의식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 Samādhi의 세가지 相 >
처음 시작하는 定의 두 단계 즉 예비정과 접근정은 三相과 연관이 있으며, 이러한 三相은 정신 집중 과정상의 뚜렷한 구분을 보여준다. 그 각각을 살펴보겠다.
1. 예비적 相 이는 수행초기에 일어나는 相으로 수행주제에 대해 처음으로 주의를 집중하고 의식적으로 초점을 맞추어 들어가면서 생기는 상이다. 2. 초기의 相 집중의 초점이 점점 더 꾸준하고 강도 있게 진행됨에 따라, 수행자는 명상의 주제를 密密하게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가게 된다. 그럼으로 해서 수행주제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이 없이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도 이러한 초기의 상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명상주제를 念하고 있다가 잠깐 눈을 감았을 때 그때 이러한 초기의 相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배워 익힌 相’ 또는 ‘이미 획득한 相’이라고도 한다.
“ 눈을 뜰 때나 눈을 감을 때나 마음에서 그 相을 잘 알아야 한다. 즉 相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까지 수행자는 이러한 念의 계발을 수백 번, 수천 번 그 이상으로 하여 초기의 相이 일어날 때까지 같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수습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마디를 계발하는 동안,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자극을 준 결과 이루어지게 되는 초점을 맞추는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수행자가 눈을 감고 相을 생각할 때, 마치 눈을 뜨고 있을 때와 같이 相이 마음에 보이게 되면, 이 때 ‘초기의 영상`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다..... 편안하게 앉아서 相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나서 相을 한번 또 한번 사무치도록 계속해서 ‘반복된 반응과 행동’을 통해 마음에 밀착(專注)시킨다. ”
3. 선명한 相 초기의 상을 기초로 하여 명상수행을 계속함에 따라 수행자는 더 깊은 사마디에 들어가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초기 명상주제를 취할 때 생기는 직접적인 이미지는 더 이상 없고 명상주제 그 자체의 특성 즉 본성만이 보여지게 된다. 선명한 상은 본질적으로 그것 자체의 본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수행자가 이 같은 수행을 하게 됨에 따라, 모든 장애(諸蓋, Nīvaraṇa)가 결국에는 그쳐버리게 되면서 번뇌들은 다 가라앉게 된다. 이에 마음은 접근 三昧에 집중되게 된다. 곧 이어 선명한 상은 몰두 三昧로 향해 가게 된다. 이는 완전하고 또렷하며 움직임이 없는 상이다 ..... 선명한 상〔似相〕을 보호하는 것은 전륜왕의 모태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이전의 조심스럽고도 소중한 배속의 태아를 잘 지키는 것처럼 수호해야 한다....상(相)을 보호하는 것. 이 노력에 대한 희생은 값을 헤아릴 수가 없다. 이로 인해 얻어진 것은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
초기의 상〔取相〕과 선명한 상〔似相〕간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초기의 상〔取相〕에서는 수행대상에 있어서의 어떤 오류 즉 손가락이 보이는 등 그러한 것들이 인식된다. 그러나 선명한 상에서는 초기의 상에서 마치 탈출해 나오는 듯하게, 구름을 헤치고 나온 보름달처럼, 비구름 사이를 날아오르는 하얀 학처럼 나타나게 되며, 초기의 상〔取相〕보다 백배 천배 더 극히 깨끗하게 나타난 상태이다. 이같이 선명한 상에는 색상(色)도 모양(形)도 없다. 만약 모양이나 색상이 있다면, 이 相은 눈의 所識에 의해서 이해될 것이며, 낮고 거칠어서 生, 住, 滅의 三相으로 특징짓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선명한 상은 그와 같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선명한 상은 사마디(定)를 얻은 수행자에게만 감지되면서 나타나게 된다. 선명한 상이 일어나자마자 모든 장애는 소리 없이 억압되어지고, 모든 오염물질은 가라앉게 된다.” 사실 이러한 선명한 상에 대해 완벽하게 기술하기란 매우 어렵다. 수행으로 체험되는 경험의 영역이 넓어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禪宗에서 언어도단, 교외별전이라는 용어로써도 대변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깨달음을 얻은 스승들이 이러한 수행과정에 대한 설명을 삼가했던 이유의 중요한 한가지로 오히려 설명하는 것 그 자체가 수행을 하는 제자에게 장애가 되는 요인이기도 하고 스승의 말에 구속되어 본성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근기에 따라 相의 계발이 쉽기도 어렵기도 하고, 더디고 빠르기도 하며, 강하기도 약하기도 하다. 이러한 선명한 상을 얻기 위한 내용을 결론적으로 정리해 본다면, 첫째는 자신의 수행주제에 밀착하여 ‘相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게 相을 계발시키는 것이며, 둘째는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하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명상주제에 대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相을 이해하는데 보다 많은 확신이 생기게 될 것이다. 實參實修를 통한 직접적인 인식의 중요성이 이것이다. 이상과 같이 초기의 상, 선명한 상을 키우기 위해서 수행자는 주도면밀하게 자신의 수행주제를 살피고 꾸준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 四禪定
1) 初禪定 (The first Jhāna- ecstasy)
“...sat cross - legged, and intently concentrating on inhalation and exhalation, gained one-pointedness of the mind and developed the first ecstasy - Jhana" (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적으로 성숙되던 싯달타가 어린 시절 ‘The pliughing Festival` 에서 모든 사람이 축제에 빠져있던 그 때, 홀로 ’초선의 기쁨‘을 느끼는 장면이다.) 禪을 닦는 사람은 적절한 환경 속에서 좋지 못했던 스스로의 여러 관념, 태도를 버리고 여러 장애를 끊고,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한다. 마음은 선정의 대상에 집중하게 되면서 ‘알아차림(念․sati)`이 예리하게 되며, Vitakka (尋) Vicara(伺)가 현저하게 나타면서 통찰력이 생기고, Piti (喜) Sukha (樂)도 일어난다. 이에 마음은 5장애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순수한 집중력에 의해 직관적으로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경지가 초선이며, 초선정의 시작으로 수행자는 성숙하게 된다.
“ 그는 諸欲을 떠나고, 不善法을 떠나고, 尋과 伺가 있고 떠남에서 생기는 喜樂이 있는 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즉 이때 그에게는 尋․伺․喜․樂 이 다 일어난다. 不善法을 떠남으로 해서 喜․樂이 생기는 것이다.”
2) 제 2禪定 (the second Jhāna- ecstasy)
Vitakka (尋) Vicara(伺)도 쉬게 되어 안으로 깨끗한 마음이 되고 Piti (喜) Sukha (樂)의 선정에 든다. 이것이 2선을 구족한 것이다.
초선정에서 현저했던 Vitakka(尋),Vicara(伺)가 고요해지며(無尋․無伺),Piti (喜) Sukha(樂), samādhi(一念)가 일어나 내적인 확신이 생긴다. 또한 여여한 집중으로부터 편안함이 솟구치게 되고 고귀한 고요함 속에 있게 된다. 이 때는 현상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생겨 환희(삼매에서 생긴 喜와 樂), 안온함 등이 현저하며, 확신을 얻게 되며 그로 인해 집중력을 강해진다. 그러나 이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즐거움으로 환희감에 빠질 수 있는데 이렇게 기쁜 마음이 크게 동하는 상태가 바로 관찰되어져 집착을 하지 말아야만 선정의 계속적인 진보를 할 수 있게 된다.
3) 제 3禪定 (the third Jhāna- ecstasy)
탐욕과 기쁨을 떠나 버림에 머물면, 바른 생각, 바른 지혜로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성인들이 말한 무심에 즐거운 생각으로 머문다. 이것이 3선을 구족한 것이다. - 잡아함 -
Piti(喜)가 점차 줄어들고, 몸으로 Sukha(樂)를 느끼면서 samādhi(一念)의 상태로 들어가며, 현상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慧)이 점점 깊어진다. 7각지 중 평등각(捨․꽉차고 기울지 않는 마음)이 나타나며, 몸과 마음이 어떤 경계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청정하고 가벼운 몸과 행복하면서도 고요한 마음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捨와 念(sati), 正知, 樂이 있게 되며, 순간순간 다시 넘치는 기쁨을 억제하고 몸과 마음에 고요한 쾌락을 느낀다. 즉 湛然寂定의 妙樂을 받게 된다. 아직 4선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친 면은 있으나, 여러 성인의 말씀에 이 경지에서는 ‘버림으로 인하여 즐거움에 머문다’라고 하셨다.
喜에 빠지지 않고 捨에 머물러서 正念正知하고 몸에 妙樂을 느끼고, 성자가 이른바 捨念樂住라고 부르는 제3선을 성취한다.
4) 제 4禪定 (the fourth Jhāna- ecstasy)
“괴로움도 초월하고 즐거움도 쉰다. 경험한 고뇌와 기쁨이 벌써 소멸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 무심(捨, 평등심)의 깨끗한 마음, 이것이 4선을 구족한 것이다.” - 잡아함중-
제 3선에서 4선으로 진보할 때, 이때는 Sukha (樂)가 가라앉고 평등심(捨)과 samādhi(一念)만이 남게 된다. 상대적인 개념에서 벗어난 평등심(捨)과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는(不樂不苦) 순수한 一念의 상태에 드는 것이다. 평등심은 마음을 균형잡게 하는 큰 힘이 있으며, 고도의 집중된 상태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명료함이 생기어, 지혜의 행복감을 경험한다. 즉 不苦不樂한 捨念淸淨의 상태라 볼 수 있겠다. ☆ 三明通 ☆ 四禪의 경계에서는 소위 말하는 三明通이 생기게 된다. 이는 선정을 통해 얻게 되는 특별한 능력으로, 마음의 집중상태가 강해지면 자연히 훌륭한 지혜가 작용하게 된다. 三明通은 존재의 時空間的 無限性을 뜻하며 다음과 같다.
1. 숙명통 (reminiscence of past births) ⇨ 생명의 시간적 무한성 2. 천안통 (perception of the disappearing and reappearing of Being) ⇨ 공간의 무한성 3. 누진통 (destruction of passions and attained perfect enlightenment) ⇨ 생명의 본래성
<4> 四無色定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나는 일체의 결합은 덧없고, 일체의 결합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苦)이라고 말한다. 아난이여, 나는 모든 결합은 점차로 고요해지고 멸하며 모든 결합은 점차로 그치고 쉬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苦)이라 말하느니라.”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점차로 모든 결합이 그치고 쉬나이까.” “초선을 바르게 받을 때는 말이 그치고 쉬며, 제 2선을 바르게 받을 때는 사색과 사려가 그치고 쉬며, 제 3선을 바르게 받을 때는 기쁜 마음이 그치고 쉬며, 제 4선을 바르게 받을 때는 호흡과 숨길이 그치고 쉬며, 공무변처를 바르게 받을 때는 色이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며, 식무변처를 바르게 받을 때는 공무변처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며, 무소유입처를 바르게 받을 때는 식무변처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며, 비상비비상입처를 바르게 받을 때는 무소유입처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며, 멸진정을 바르게 받을 때는 생각과 느낌(想受)이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나니, 이것을 점차로 모든 결합이 그치고 쉬는 것이라 하느니라. 『잡아함경』 사무색정(the formless absorption : arupa jhana) -형상없는 비물질적인 선정- 無色界 空無邊處定 (Arupa loka) 識無邊處定 無所有處定 非想非非想處定
1. 三界 中 최상계인 無色界에서 수행되는 선정이다. 2. 무색계란 물질(色)의 관념과 그것을 향한 욕망을 이미 떠나 오직 정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말한다. 여기서 色을 벗어난다는 것은 사무색정이 三界중 色界의 세계를 벗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3. 선정수행에 있어 모든 물질적인 속박을 받지 않게 된 경계를 4가지로 나눈 것이다. 4. 三界 자체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세계로서의 의미보다는, 정신적인 세계로서의 의미가 강하듯, 이 사무색정의 세계도 (정신적인 세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 좋겠다. 5. 인간의 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육체적․정신적, 내․외적요소들을 뛰어넘어 지극히 미묘한 의식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1) 空無邊處定, 無色界의 初禪定, (Boundless space) -허공과 같은 무한한 장소-
사무색계 선정수행 가운데 먼저 공무변처를 수습하고자 하는 사람은,
“ 色이라는 것을 因하였기 때문에 남과 싸우는 刀劍등을 취하고, 입(口)으로 논하면서 쟁론(諍論)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무색계에는 없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省察한 다음, 모든 色을 싫어하고(厭離) 탐욕을 떠나고(離貪) 사라지게(滅)하는 수행을 한다.“
이러한 말씀을 잘 신봉하고, 色으로 인해 생긴 것의 過患과 눈과 귀로 인해 생긴 병들, 그 외의 수천가지 병들에 의한 모든 過患들을 자세히 보고, 그것들을 초월하고자 한다.
‘다시 한 비구가 있어서 일체의 色想을 벗어나서 대상을 소멸함으로써, 여러 가지 想을 作意함이 없는 까닭에 ‘공무변’이며 공무변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 유한한 形體를 싫어하고 마음을 무한한 허공(空)에 깃들이게 하여 일체 상대의 形質을 초월하여 정신을 絶大空에서 노닐게 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 대상에 집중한 후 그 대상을 최대한 멀리 확장시켜서 무한한 허공으로 집중을 전환함으로써 물질적인 대상을 제거한다. 이때 물질적 대상을 제거할 때는 잠깐이라도 이러한 대상에 주의를 기울지도 살펴보지도 말고, 오로지 집중을 색계의 대상에서 공무변처 쪽으로 향한다. 공무변처정을 성취한 자는 形相의 지각이 멈춘다. 2) 識無邊處의 선정, 무색계 2선정, (Boundless conciousness) -인식과 같은 무한한 장소- 마음밖의 허공을 인연함도 또한 마음을 산란시키는 매개가 되는 까닭에 心光을 一轉하여 心內로 향하게 하여 無形無相의 心識을 비춘다. 공무변처정의 상태를 다시금 생각해보면서, 아직도 보다 높은 수준의 평화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공무변처정에 머물며 현저하게 나타났던 의식(識)에 집중을 한다. 즉 공무변처를 바탕으로 해서 일어났던 식무변처에 집중한다. 이리하여 식무변처의 삼매를 성취하게 되며, 공무변처를 뛰어넘게 된다.
3) 無所有處의 선정, 무색계 3선정 (Nothingness) -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장소 - 일체의 心識을 싫어하여 밖으로는 無邊空이 없고, 안으로는 無邊識이 없어서 일체를 無所有하게 하여 마음에서 의지하는 바가 없게 한다. 선정의 대상을 ‘무소유처 (non- existence, voidness)’로 집중하며, 無를 체험하는것이다. ‘없음(無) 없음(無) ’이라고 하거나 또는 ‘멀리 떠난다. 멀리 떠난다.’ 이와 같이 ‘식(識)이 없다는 것’을 누누히 생각(念)하고, 마음에 두고 생각(作意)하고, 파들어가 생각하며 (觀察)하며, 특별하게 택한 생각을 도려내듯이 거듭거듭 생각(思擇思惟)한다. 이와 같이 禪을 生起하게 하는 상(相)에 마음을 작용하게 하면, 그에게는 다섯가지 장애(五蓋, Nivaraṇa)가 모두 진복(鎭伏)되고, 念은 住立되며, 近行定(초기의 옅은 선정)에 의해서 마음은 等持에 이르게 된다.
붓다의 수행 중 스승인 아라라 카라마 선인은 “무소유처(비존재의 세계)의 선정”을 최고의 이상적인 경지로 삼고 석존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선인에게 지도받고 무소유처정에 이르렀던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이 법은 나를 집착 없는 곳으로, 갈애가 없는 곳으로, 고(苦)가 멸한 곳으로, 적정한 곳으로, 더 높은 지혜로 궁극의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못했다. 다만, 무소유처정의 경지로만 들게 했을 뿐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 경지에 만족하지 못하여 그 곳을 떠났다.“
4) 非想非非想處의 선정, 무색계 4선정, (Neither perception nor non- perception) - 8선정의 마지막 장소 -
‘ 비상 비비상처의 경지는 평화롭고 장엄한 것이다. 그리하여 무소유처정의 집착을 버리고 비상비비상처의 평화로움으로 집중을 향한다. ’ -청정도론중-
식무변처정과 같이 有想이 아니고 무소유처정과 같이 無想도 아닌 경지. 이 선정 또한 붓다의 초기 스승이셨던 웃다카라마풋다선인의 이상적인 경지로, 붓다에게 가르쳤던 선정법을 근거로 불교 안에서 재정비된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도 아닌(非想) 생각 아님도 아닌(非非想) 경지, 즉 상(想 perception)도 아닌, 비상(非想 non-perception)도 아닌 상이다. 붓다는 웃타카 선인에게서 이 선정을 배웠으나, 이 또한 만족을 하지 못했음이 중부경전 26중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 법은 나를 해탈시키지 못하고, 이 법은 나를 갈애가 없는 곳으로, 고가 멸한 곳으로, 완전한 지혜로, 궁극의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못했다. 다만, 생각도 생각없음도 아닌 경지로 들게 했을 뿐이다. ’
그리하여 붓다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성취하고자 또 다른 길을 떠나게 되며 보리수 나무 밑으로 가서 붓다 스스로의 수행방법으로 大悟를 한 것이다.
2. 滅盡定 - 멸진정 +사선 + 사무색정을 일러 구차제정이라고 한다.-
‘...비구는 일체의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서서, 想受滅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렇게 해서 그는 지혜에 따라서 보고, 漏는 滅盡되었다 라고 안다. 이 비구는 마(魔)를 장님으로 만들고, 마의 눈을 근절하여 악마에게 보여지지 않는 곳에 이르른 자. 세간에의 집착을 넘어선 자라고 말해진다. ’ 中部 (MN, I, 25,(大 1권, P718 中) 사마다 수행을 통해 첫 번째 선정, 두 번째, 세 번째.. 그 여덟 번째 선정의 단계까지 오른다. 그러나 이를 보다 더 초월하여 수행자는 몰두정의 단계뿐만 아니라 통찰지혜의 실천까지 완전히 마쳐야만 비로소 마지막 깨달음의 단계인 멸진정에 이를 수 있다. 이는 가장 至高한 定의 상태로 생리학적 기능이 완전히 다 멈추어 버린 상태이다. 멸진정에 대해서 어떠한 해석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 우선 수행자는 定과 慧로서 1선정에서 제 7선정까지 차례로 올라간다. 매번 단계의 선정에 들어서 묘하고 고요한 상태에서 삼법인을 관찰한다. 이렇게 하여 7선정까지 들었다가, 7선정에서 나온 후, 얼마동안 멸진정에 머물 것인가를 미리 마음으로 정한다. 그리고 8선정에든 후, 바로 멸진정으로 나아간다. 이 상태에서 7일간 머물 수 있다, 의식과 신체의 기능이 정지되어 죽은 자와 같다.”
이 선정의 단계는 受(感受작용)와 想(表想작용)을 모두 滅한 상태로, 想受滅이 곧 열반의 경지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의식, 정신작용, 감정, 인식등이 정지된 상태다. 잘못 보면 죽은 자와 같은 모습이지만, 五根을 갖추고 생명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死者와는 다르다. 수행자가 멸진정을 성취하게 되면 감각기관을 통해서 그에게 들어오는 느낌에 의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즉 대립 분별적인 마음의 작용인 ‘想’과 苦를 일으키는 원인인 ‘受’로부터 벗어나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 여덟가지 해탈 (八解脫)
1. 有色觀諸色是第一解脫 : 수행자는 형상(色)들을 의식하면서, 형상들 자체를 본다.
2. 內無色想關外諸色是第二解脫 : 그는 안으로는 아무런 형상도 의식하지 않으면서, 외형적인 형상들을 본다.
3. 淨解脫身作證具足住是第三解脫 : 외경의 색상에서 청정한 면을 관하여 탐욕이 생기지 않고, 淨解脫을 몸에서 깨닫고 구족하여 住하는 것. 그는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의 지각에 전적으로 힘을 기울인다. 이상의 3가지 해탈은 <네가지 정신영역들(사선정)>과 연결된다.
4. 超一切色想滅有對想不思惟種種想入無邊空空無邊處 具足住是第四解脫 :물질적인 相을 다 멸하여 공무변처정에 들어가는 것
5. 超一切空無邊處入無邊識識無邊處 具足住是第五解脫 :공무변처심을 버리고, 식무변처정에 들어가는 것
6. 超一切識無邊處入無少所有所有處 具足住是第六解脫 :식무변심을 버리고 무소유처정에 들어가는 것
7. 超一切無所有處入非想非非想處 具足住是第七解脫 :무소유심을 버리고 비상비비상처정에 들어가는 것.
8. 超一切非想非非想處入想受滅身作證 具足住是第七解脫 :受,想등을 버리고 滅盡定에 들어가는 것. 의식과 감각들을 말살하는 滅受想定이다.
참고> * 禪定의 요소 (jhāna factors)
1. vitakka (覺, 尋, 주의 , aiming, directing mind) ↬ 尋 applied thought ↔ 惛沈 stiffness , 睡眠 torpor
1) 대상을 대략적으로 보는 마음의 활동 2) 광범위한 생각 (discursive thoughts) 3) 대상에 순간적으로 머물게 하는 마음, 대상을 향해 겨냥하는 마음 4) 대상에 마음을 두고 거기에 촛점을 맞추어 반복적으로 같은 대상에 집중의 깊이를 더해 가는 것
1) 위타카에 의해 겨냥된 대상에 마음을 계속 집중하여 머무는 상태. 2) 대상을 미세하게 관찰 (investigation)하는 마음의 활동 3) 고찰을 계속하는 마음 4) 촛점 맞추어진 대상을 검토하는 것. ex) 수행의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유하고, 계속 그것에 전일하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