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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널리 도를 듣는 것으로서 만족한다면 도는 반드시 이루지 못한다. 뜻을 굳게 지켜 도를 받들고 행한다면 반드시 깊고 원만한 大道를 성취하게 되리라.』 佛言. 博聞愛道. 道必難會. 守志奉道. 其道甚大. 불교를 믿는데 기본 뿌리를 이루고 줄기를 이루며 큰 열매를 맺는데 있어 수행방법은 信解行證과 聞思修이다.
** 信解란? 믿음은 佛道수행의 원천이며, 수행하는데 動機를 불러일으키는 근원이다. 절대적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참선하고 경전을 독송해야 하며 염불을 해야 한다. 自力적인 믿음으로 보아서는 자신의 佛性을 굳건히 믿고 석가모니불처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라면, 他力적인 차원에서도 경전독송이나 염불, 주력의 힘을 통해 부처를 만나고 성불할 수 있는 힘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 가운데 看經(간경, 경전독송하는 것)수행에 대해 살펴보자. 경전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경전 속에 깨달음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르침은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지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도에서 제시되어 있는 길이 있으면 주체성을 확고히 가지고 스스로의 노력과 수행으로 일관되게 나가야 한다. 즉 정상에 오르는 명확한 지도를 가지고 있으면 제 발로 직접 걸어 정상에 올라야 한다. 옛 어른 스님들은
“심불반조心不返照 간경무익看經無益” 경전의 가르침을 내 마음에 비춰보지 않으면 경전을 공부해도 아무 이익이 없다”
<화엄경> 에서는 ‘믿음은 道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고로 믿음은 일체의 선법善法을 기른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불교도 종교이다 보니 순수한 믿음을 중히 여기고 강조하고 있다. 이 믿음을 굳게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따라서 종교 신자에게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들을 만큼의 믿음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성보다 감성이 작용하므로 맹목적인 믿음에 빠지기 쉽고, 이 맹목적 믿음은 결·국 불행을 초래하기 쉽다. 또 그 반대로 어떤 종교이던 간에 믿음 없이 학문적으로 연구되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이에 <열반경>에서는 ‘믿음만 있고 이해가 없다면 결국 번뇌만을 증장시키고, 또한 이해만 있고 믿음이 없다면 삿된 견해만 생긴다. 그러므로 원만한 믿음과 이해를 바탕으로 실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行證이란? 그렇다면, 믿음을 바탕으로 실천과 그 실천의 과실은 무엇인가? 육조혜능(638-713)선사의 제자인 법달스님은 7살에 출가하여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그리하여 법달은 <법화경>에 있어서는 제일인자로 자부할 만큼 경의 내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혜능선사와 처음 만나 인사를 하는데, 법달은 제자로서 예를 갖추지 아니하고 아만심이 가득 차 있는 표정이었다. 이에 혜능스님은
“네가 설혹 만부의 경을 외운다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 ‘내가 잘났다’는 아만심을 꺽지 아니하면 아무리 수행해도 업業만 더욱 키울 뿐이다.”
라고 경책하시며,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셨다.
구송심행(口誦心行)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면 즉시전경(卽是轉經) 바로 내가 경을 굴리는 것이요, 구송심불행(口誦心不行) 입으로만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즉시피전경(卽是被轉經) 바로 내가 경에 굴림을 받는 것이다. 『육조단경』「기연품」
중국 당나라때의 백락천이 조과도림선사를 찾아와,
조 과 : (마침 나무 위에서 수행을 하고 계셨다) 백락천 : (나무위의 스님을 바라보며) 스님. 불교의 좋은 가르침 한마디 해 주십시오 조 과 :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세제불교(是諸佛敎) 즉 모든 나쁜 짓은 하지 말며 많은 선행을 베풀라. 그리고 그 마음을 깨끗이 할지니,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백락천 : 스님 그런 것들은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조 과 : 삼척동자도 알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네.
이와같이 믿고 알았다면 그에 수반된 행위가 따라야 불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따뜻한 가슴으로 믿고(信), 냉철한 머리로써 세존의 가르침을 이해(解)하고 터득한 뒤, 온 몸과 정신을 기울여 실천(行)하면 진정한 깨달음인 보리(證)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실천 방법으로 문사수(聞思修)인 3慧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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