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스님 1982년 서울 성심사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9년 운문사 승가대학 졸업 1995년 동국대학교 선학과 졸업 1998년 동국대학교 선학과 석사수여 2000년 동국대학교 선학과 박사과정수료 2003년 동국대학교 선학과 강사
회수 :
7회
제목 :
제7강-제4장 인간 됨됨이의 길.
법회일자 :
2003-10-10
제 4장 : 인간 됨됨이의 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은 열가지 일로써 착해지기도 하지만, 열가지 일로써 악해지기도 한다. 무엇이 열가지인가? 몸의 세가지와 입의 네가지, 뜻의 세가지이다. 첫째 몸의 세 가지란, 산 목숨을 죽이는 일과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과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둘째 입의 네 가지란 이간질하는 것, 남을 꾸짖고 저주하는 악담, 거짓말, 진실을 속이고 그럴듯하게 꾸미는 말 등 네가지이다. 셋째 뜻의 세 가지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다. 이러한 열가지 행위는 성인의 길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열가지 惡業 이라고 한다. 만일 이런 악한 행위, 즉 악업을 그치기만 하면 바로 그 자리가 열가 지 착한 행위, 즉 善業이라고 한다.”
첫째, 업설의 기원 『우파니샤드』에 “사람은 善業에 의해 善人이 되고 惡業에 의해 惡人이 된다.” “좋은 행위에 의해 좋은 모태에 수태되고, 나쁜 행위에 의해 나쁜 모태에 수태된다” 라고 언급되어 있으나 불교에 계승되어 업설이 완성된다. 자이나교의 마하비라는 신․구․의 3벌을 세우고 결과를 중시하였다. 불교는 身口意 3업가운데 의업(意業)을 중시하여 업에 있어 동기를 중시하였다.
둘째, 업의 정의 범부는 고정적인 자기의 관념에 입각하여 我의 집착이 강하다. 이것에 기초하여 행동 하는 데, 이 때 업이 발생한다. 어떠한 행동을 하여도 그 순간의 행위는 사라진다. 그러 나 뒤에 보이지 않는 힘을 남긴다. 그것이 업이다.
셋째, 업의 작용 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꽃잎과 줄기와 열매가 본래 씨앗 속에 숨어 있는 것과 같다. 그 씨앗(因)은 알맞는 조건(緣)에 이르면 싹이 나고 꽃(果)을 피우는 것처럼 잠 재되어 있는 업이 어느 시기가 되면 나타나는 것이다(因+緣=果). 이로 인해 우리는 끊 임없이 윤회한다. 업의 과보는 세 가지로 나타난다. 순생보(順生報)는 현생에 지은 업을 다음 생에 받음. 순현보(順現報)는 현생에 지은 업을 현재 생에 받음. 순후보(順後報)는 어느 생에 지은 업을 계속 윤회하면서 받음.
그렇다면 여기서 10업 가운데 口業과 嗔心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까 한다. 첫째, 성내는 嗔心이다. # 법구경 :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말없는 그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 다. # 자비도량참법 : ‘공덕을 겁탈하는 도적은 진심(嗔心, 성내는 마음)이 가장 심하다’ ‘이 성내는 마음은 보리(菩提, 깨달음)를 이루지 못하는 장애를 일으킨다’ # 그렇다면 이 진심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① 참선 : 화가 날 때,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어디에서 이 진심이 일어나는지를 한번 관찰해 보라. 이 진심이 일어나는 근원지를 찾아보면,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을 것이다. ② 인욕행 : 화엄경에서 ‘一念瞋心起하면 百萬障門開라’고 하였듯이, 참는 수행도 필요하다. 그래서 수행자의 기본 행인 6바라밀가운데서도 3번째 인욕행을 강조하고 있고
둘째, 입으로 짓는 口業 # 자비도량 참법 : ‘구업(口業)은 모든 원결과 화의 문이다’라고 하였고 그 반대로 ‘입은 바로 복을 불러들이는 근본이 된다’고 하였다. # 속담 : ‘무심코 한 말이 禍根이 되었다’ /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당신의 말 한마디에 큰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당신의 말 한마디 부주의함으로 어떤 이는 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곧 행복과 이익을 불러들임 도 자신의 입이요, 죄악과 불행을 짓는 자도 바로 자신이다.
7강 정리 - 에필로그 첫째, 업대로 산다고 하여 팔자소관대로 살라는 말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 행동은 그러 한 전제되거나 구속되어진 숙명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에 의해 행․불행이 선택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행․불행은 자기 자신의 책임하에 결정되며, 선(禪)수행을 통해 참 회기도를 통해서 얼마든지 자신의 업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두었으면 한다.
둘째, 불교교리인 업설은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이 업설의 가르침을 통 해 인간완성의 길을 추구하는 진리로 받아들이자.
셋째, 자신 안에 내재된 본성을 발견하는 것이 참된 道인 것처럼 악한 행위를 하지 않 는 그 자리가 바로 선업을 쌓아나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