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향 동국대 선학과 졸업 동국대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졸업 동국대 선학과 박사 수료 동국대 선학과 강사 역임
이 강좌는 지난 2000년 수덕사 부설 무불선원 강좌 중 인도선정사상을 녹화 방송합니다
회수 :
4회
제목 :
제4강
법회일자 :
2003-09-19
< 현대 禪家의 초석과 불교철학의 기초 (The Basis of Buddhist Philosophy) >
1. 깨달음의 대상에 대한 기원 (2) ① 삼매사상의 기원. upanisad ② 불교와 upanisad ③ 梵我一如
1. 깨달음의 대상에 대한 기원 (2)
<1> 三昧思想의 기원․ 《upanisad》
Q 1. upanisad를 印度 禪定思想의 기원이 되는 자료로 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고 그 구체적인 증거는 어떤 것인가?
1. upanisad 란 ? ㉠ 고대 인도의 철학서(book)로 B.C 800 - A.D 200사이에 성립된 書이다. ㉡ 종교적 철학적인 보고서로서 초기 인도베다 부분을 계승하여 형성하고 있다.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에 속하며, 베단타 문학이라고도 한다.) ㉢ 현재 200여종 있으나 중요한 것으로는 10종이 있다. ㉣ 인도 정통 바라문 철학의 연원으로 후에 철학, 종교의 근간이 된다. ㉤ 베다의 제사 만능주의를 반발하여 마침내 불교가 흥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2. upanisad의 근본사상은 무엇인가? 만유의 근본원리를 탐구하여, 대 우주의 본체인 브라흐만(Brahaman)과 개인의 본질인 아트만(Atman)이 하나라는 梵我一如의 사상.
이러한 근본원리 아래서 萬有가 생성되고, 인생의 최고목적으로는, 修定과 고행에 의하여 투철한 梵我一如의 진리를 인식하여 사후윤회에서 해탈하며 상주불멸의 梵界에 사는 것이라 한다. 현상계는 허망이며, 梵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유신론의 체계를 전개시킨다.
* 禪과 우파니샤드의 구조적 유사점 * 우파니샤드의 최고 목표 : 브라흐만(梵)을 알고 해탈하여 자유인이 되는 것. 禪의 목표 : 인간에 내재된 佛性을 깨달아 해탈, 자유인이 되는 것.
3. upanisad의 편집체제 : 대화의 형식. 묻고 대답하는 동안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탈의 방법론이 제시됨.
4. upanisad의 성립연대 < 초기의 우빠니샤드 B.C 8-7C , 佛敎以前 > Aitareya, Kaushitaki, Chandogya, Kena, Taittiriya, Brhadaranyaka, Isa 종교적․ 철학적인 보고서로서 초기 인도베다 부분의 계승
< 중기의 우빠니샤드, 佛陀의 재세 당시 혹은 조금 후대의 것 > Mundaka, prasna, Kathaka, Svetasvatara
< 후기의 우빠니샤드 , 기원전후 > Maitrayaniya Mandukya.
5. upanisad의 의의는 무엇인가? ① 인류가 시도해온 자아 추구의 노력 中 매우 훌륭한 결과물이다. (자아에 대한 능동적 탐구심을 불러일으킨 사색물이다.)
Q. 왜 upanisad를 인류사상사에서 값진 유산으로 보는가 ? A. upanisad가 인류 공통의 難題인 정신세계와 자아추구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깊숙히, 오래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② 인도라는 물리적 정신적 공간 안에서 과거 수천여년 동안 사람들의 철학과 종교적 삶의 대부분을 지배해왔다. 즉, upanisad는 인도사상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에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③ 인도에서 생성된 사상들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 힌두교, 불교, 쟈이나교등이 upanisad를 영양분으로 하여 자라났다. ㉡ 인도의 정통철학파인 육파철학 상키야, 요가, 니야야, 바이셰시까. 미망사, 베딴따가 이 upanisad와의 철학적 맥을 잇기 위해 고심하였다.
④ upanisad의 신비적 영성철학은 인도 내에서 뿐 만 아니라 인도를 넘어 전세계로 전파되어 사람들의 사고의 폭을 넓히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⑤ 라다끄리슈난(1888-1975) 曰 upanisad는 인류의 사상사를 추적하는 학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즉, upanisad의 신비적인 요소의 영향 → 페르시아 수피즘의 신비주의 ↘ Neo Platonic School(신플라톤학파) ↘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신비주의 ↘ 19세기 신비주의적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 ⑥ upanisad를 탄생하게 한 요인은 베다라는 건강한 씨앗이었으며, upanisad에서는 過 現 未에 불변하는 것을 ‘진리’라 부르며, 인간 일생일대의 목적을 ‘진리’의 발견에 두었다.
6. upanisad의 주된 관심 (공통된 주요한 테마)
“ 우주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브라흐만(梵)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우리는 무엇에 의해 생존하는가? 우리는 무엇에 의해 정립되어 있는가? 오.. 브라흐만을 알고 있는 자여, 우리는 무엇에 지배되며, 왜 기쁨과 슬픔의 상태에 있는 것인가? ”
자기자신과 세상과 우주의 원리 그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 즉. ‘참’ 혹은 ‘진리’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생겼을까? 나의 의식은 언제부터 생겨났나? 내가 죽으면 나의 육신과 의식은 어디로 가는가? 육신과 함께 사라지는가? ’
이 같은 문제들의 해답을 갈망한다는 것은 곧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upanisad 內에는 인간. 그 본연의 호기심으로 자신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 세상에 대한 성찰과 스스로 삶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 몸부림치는 투명한 각고가 보인다. “
* 기원전 8세기-기원전 3세기 때 쓰여진 upanisad의 내용 * 정밀하게 인간과 자연과 우주에 관해서 분석하고 연구하였음.특히 슈베따슈바따라 upanisad에는 실천적 방법으로 요가의 의미와 방법, 구체적인 명상과정과 그 과정 중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같이 요가와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진리를 깨닫는다. 그들이 주는 교훈은 곧, 우주세계 속의 주인은 바로 ‘나’이며, 스스로를 크게 또는 작게 만드는 것도 ‘나’라는 것이다.
Upanisad 와 禪(seon)의 공통점 ⇨ 깊고 현묘한 理義를 묵상하는 禪道의 정신이 일치
<2> 불교와 《upanisad》 불교는 upanisad를 통해 그 극치에 다다른 인도사상의 전통 속에서 형성되게 된다. 즉, upanisad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인 고민과 번뇌, 이는 젊은 싯다르타가 구도의 길로 들어가게 한 계기가 된 문제였다. 이미 붓다 이전부터 upanisad에 그가 가진 문제들이 제기되었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내적성찰의 방법들이 권유되었었다.
그리하여 애착과 증오를 초월하는 평온한 마음상태가 장려되고 윤회와 업사상등을 통해 세상과 우주를 이해하는 사상적 기반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윤회와 업, 또한 아뜨만에 대한 無我의 사상. 이것이 불교에 있어서 우파니샤드의 영향이다.
또한 열반, 苦 등의 사상을 살펴볼 때, upanisad와 불교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Upanisad 와 Buddhism의 공통점 Buddhism .. 부패한 힌두교 사제들의 권위를 끌어내리고, 만민평등주의를 내세움으로써 이전까지의 베다의 전통적인 흐름에서 뛰쳐나옴. Upanisad .. 베다의 권위적인 일면에 반기를 들다.
<3> 梵我一如 (Ātman = Brahman)
Q. 梵我一如의 사상은 무엇이며, 이것이 후에 어떻게 禪의 覺의 구조로 導入되는가?
upanisad시대에는 최고신에 대한 관심은 감소되고 추상적인 일원적 원리에 대한 추구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Veda의 다양한 神聖이 브라흐만(梵)과 아뜨만(我)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어 재구성되고, 梵我一如라는 원리를 끌어내게 되어 神性이 인간 내부구조와 대응되게 묘사되어 우주적인 인간의 모습을 형성하게 된다.
* 최고 실재인 Brahman (梵․최상의 자아) * 대우주, 객관적․ 중성적 원리 (우주적인 영혼) 우주의 자연현상과 自然神. 이는 특별하게 중요시되어 세계의 ‘근본원리’ ‘절대자’의 명칭으로까지 높여졌다.
* 개인의 본체인 ātman (我․개인의 자아) * 소우주, 주체적․ 인간적 원리 (개체적인 영혼) 인간의 여러 행동요소가 아뜨만으로 구성되어 갔다가 나중에는 브라흐만과 아뜨만의 일치를 통해 우주적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게된다.
Ātman = Brahman 이는 Vedanta 철학의 마지막인 upanisad의 중심사상이 된다. 현상세계의 雜多相의 근저에는 최고 원리인 唯一者가 있다고 상정하여 이 雜多相은 이 유일자로부터 분화, 유래하며 혹은 지배되고, 이것에 의존해서 정립하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 브라흐만 (Brahman․ 梵) 우파니샤드의 주제는 최고의 實在인 ‘브라흐만’과 ‘아뜨만’이다. 이 개념의 기원은 리그베다⇨ 브라흐마나⇨ 아란야까⇨ 우파니샤드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 리그베다 內 브라흐만 >
”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는 죽음도 불멸도 없었고 밤도 낮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한 존재가 있어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호흡을 했으며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
-리그베다 10.129.1. 나사디야
Brahman ⇨ Bṛhati 즉 넘다, 초과하다 라는 말에서 파생되고, 불멸, 순수의 뜻을 가짐. (넓게 퍼져서 어디든지 존재하는 것) ⇨ Bṛh 성장하다, 돌발하다.(세상의 원천 동력으로 전지전능한 완전한 존재를 의미한다.)
< 우빠니샤드 內 브라흐만 >
① 브라흐만의 자기인식과 佛性의 깨달음
“실로 태초에 이 세상에는 브라흐만이 있었다. 그는 단지 그 자신만을 알았다.
‘나는 브라흐만이다’ 그로 말미암아 브라흐만은 모든 것이 되었다. 브라흐만을 깨달은 神은 누구나 실제로 브라흐만이 되었다.”
『Brhadaranyaka Upanisad』 1-4-10 中
여기서는 자신이 브라흐만임을 안 후 브라흐만은 모든 것이 실제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 또한 브라흐만은 깨달음이나 진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간 누구에게나 佛性이 있는 줄 알면 실제로 佛陀가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② 인간의 욕망이 해탈되었을 때 브라흐만 세계에 도달한다.
“가슴에 있던 욕망들이 모두 해탈되었을 때 그 때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운명이 불멸로 된다. 거기에서 브라흐만에 도달한다.”
『 Brhadaranyaka Upanisad 』4-4-7 中 ③ 생명, 기쁨, 空으로서의 브라흐만
“신성한 지식을 가진 저 제자들은 그의 고행을 잘 수행해 왔다. 브라흐만은 생명이다. 브라흐만은 기쁨이다. 브라흐만은 空이다. “
『 Chandogya Upanisad』 4-10 -4 中
④ Om = 梵 “ Om 이 브라흐만이다. Om 이 저 모든 세계이다.“
『Taittiriya Upanisad』 1- 8 中
⑤ 진실, 지혜, 무한 = 梵
“모든 이러한 것은 지혜에 의해 인도되고, 지혜에 의거한다. 그 세상은 지혜에 의해 인도된다. 그 바탕은 지혜이다. 브라흐만은 지혜이다.”
『Aitareya Upanisad』 5- 3 中
⑥ 분별을 내지 않고 평등하게 보는 不二의 사람 = 梵
“그 때 마치 한 사람이 마차를 몰면서 두 마차 바퀴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이, 그와 같이 그는 낮과 밤을 보며 그와 같이 좋은 행위 나쁜 행위 그리고 모든 상반되는 쌍들을 내려다 본다. 이 사람은 좋은 행위도 없고 나쁜 행위도 없으며, 브라흐만을 아는 자이며, 바로 브라흐만으로 간다.“
2> 禪과 우파니샤드
『chandogya Upanisad』 3-18 -1 中 개인에 관해서는 마음(心)을 梵으로서 숭배해야 한다는 표현이 보이게 된다. 이는 곧 心佛及衆生 是三 無差別과 매우 유사한 개념이며, 삼매의 목표가 되며 인간해탈의 목표이자 대상인 깨달음(覺)도 브라흐만(梵)개념에서 유래되었음이 보인다.
@ 禪의 言語道斷과 유사함
“ 말로써 표현되지 않는 것, 그것과 함께 말이 표현되는 것. 그것을 실로 브라흐만으로 알아라. ” 『 Kena Upanisad 』 1- 4, 5 中
브라흐만은 보통인간의 지혜 속에 있지 않고 그보다 훨씬 밖에, 어떤 틀로써 잡을 수 없는 무한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빠니샤드는 묻는다.
‘아직 알지 못한 그 무엇을 이미 알고 있는 어휘로 표현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 禪의 覺의 구조로 도입
“ 깨달음에 의해 알아졌을 때 이것은 바르게 알아진다. 실로 이것은 사람이 발견할 수 있는 不滅이다. 아뜨만과 함께 사람은 힘을 발견한다. 지혜와 함께 사람은 그 不滅을 발견한다. ” Kena Upanisad 2- 4 中
우파니샤드를 삼매사상의 형성에 대한 자료로 삼을 수 있는 까닭은, 삼매라는 것은 브라흐만과 아뜨만이 하나로 되는 방법, 하나로 된 상태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브라흐만은 최상의 자아이며, 아뜨만은 개인의 자아로 묘사되고 수행을 통하여 하나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점에서 우파니샤드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우빠니샤드內의 父子간의 대화 ”
Q. 저 보리수 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따오너라. A. 여기 따왔습니다. Q. 그것을 쪼개라. A. 예 쪼갰습니다. Q. 그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A. 씨가 하나 있습니다. Q. 그 중 하나를 쪼개 보아라. A. 쪼겠습니다. Q. 그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A.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총명한 아들아. 네가 볼 수 없는 이 미세한 것. 그 미세함으로 이루어진 이 큰 나무가 서있는 것을 보아라.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이 있음을 믿어라. 아주 미세한 존재인 그것을 세상 모든 것들은 아뜨만으로 삼고 있다. 그 존재가 곧 진리이다. 그 존재가 곧 아뜨만이다. 그것은 바로 너이다. 슈베따 께뚜야.”
3> 아트만 (Atman․ 我)
그 原義를 살펴볼 때, 가장 유력한 견해에 따르면, 원래 ㉠ 숨, 氣息 (호흡)을 의미하지만 (리그베다 시대), 전환되어 → ㉡ 생명의 본체로서의 生氣, 生命原理, 靈魂, 自己, 自我, 나아가 → ㉢ “만물에 내재하는 영묘한 힘”을 뜻하기에 이르렀다고 함. 이리하여 아트만에 의해서 세계창조가 이루어졌고 동시에 아트만을 인식해야 한다고 하는 사실이 반복하여 강조되고 있다.
아트만 Ātman
氣息 (호흡) 생명의 호흡 ⇩ 생명을 덮다, 本性, 生氣, 영혼, 중요한 존재, 개인. ⇩ 만물에 내재하는 영묘한 힘
브라흐만 곧 우주의 최고원리는 인간의 내적 자아인 아뜨만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며, 우주의식으로 들어감으로써 모든 우주의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할 때 아트만에 의해서 세계창조가 이루어졌고 동시에 아트만을 인식해야 한다고 하는 사실이 반복하여 강조되고 있다.
{ Bṛhad - āraṇyaka 1- 4- 1 }
“ 태초에 이 세계에는 아뜨만만이 사람의 모습으로 있었다. 그는 그 자신 이외에는 주위에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에 ‘나는’이라는 말을 했다. 그 때부터 ‘나’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누구에게 말이 걸어졌을 때 그는 먼저 단지 ‘나는.....’이라고 말하고 다음에 그의 이름을 말한다.”
{ Bṛhad - āraṇyaka 1- 4- 7 }
" 사람들은 그는 바로 그 자신의 자아(Ātman)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예배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모든 이러한 것이 (호흡, 듣기, 보기, 생각하기)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
{ Bṛhad - āraṇyaka 2- 1- 20 }
“ 거미가 실을 토해낼 수 있는 것과 같이, 작은 불꽃이 불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그와 같이 이 Ātman으로부터 모든 중요한 호흡, 모든 세계, 모든 신들, 모든 존재들이 나온다. 그 奧義書는 그것 때문에 진실가운데 진실이다. 중요한 호흡은 바로 진실이며, 아뜨만은 그들의 진실이다. ”
“ 이러한 순질은 고행으로부터 얻어지고 마음(Manas)은 순결로부터 얻어진다. 마음으로부터 아뜨만이 얻어진다. 아뜨만을 얻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Kauṣỉtaki 3- 2 }
" 그 때 그가 말했다. 나는 호흡의 혼이며 지적 자아이다. 그와 같이 나를 생명으로서, 불멸로서 숭배하라. 생명은 호흡의 혼이다. 호흡의 혼은 바로 생명이다. 호흡의 혼은 실로 불멸이다.”
{ Maitri 2- 7 }
"실로 그는 순수하고, 불변하고, 확고하고, 물들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욕망이 없고, 구경꾼과 같이 고정되어 있고 그리고 영속적인 자아이다.”
{ Chandogya 8- 1 }
" 여기에서 아트만과 진실에의 욕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간 사람들 그들에게는 모든 세상에서 자유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아뜨만과 진실에의 욕망을 발견하고 간 사람들 그들에게는 모든 세상의 자유가 있다. { Praśna 8- 1 }
“진실로, 이 보는 자, 만지는 자, 듣는 자, 냄새맡는 자, 맛보는 자, 지각하는 자, 식별하는 자, 행위하는 자, 생각하는 자아, 개인- 그의 거처에는 최상의 불멸하는 아뜨만이 있다.
흰구름 오려서 누더기 깁고 푸른 물 떠다가 눈동자 삼았네 뱃속의 주옥이 가득 찼으니 온 몸이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