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통도사에서 사미계
1969년 통도사에서 구족계
1971년 통도사 강원 강주
1980년 중앙승가대 강사,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
1985년 중앙승가대 불교학과 교수
前 중앙승가대학교 총장
現 중앙승가대학교 명예교수
회수 : 55회      
제목 : 종범스님-생활 속에서 행복 만들기 법회일자 : 2003-12-15
  생활을 행주좌와(行住座臥)또 시청언동(視聽言動)이라 표현 하였다. 또 예전 분들이 편지를 쓸때에 면식(眠食)무탈 한지, 언동(言動)이 평정한지를 묻곤 하였는데, 이러한 것이 형식적으로 나타난 일상생활이라 하겠다.
이 외에 내면적인 욕구가 있는데, 이를 불교에서는 오욕이라 정의 하여,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라 하였다.
재는 재물로 재물욕을 말하는데, 재물로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재물로 인한 고통이 더 많은데 이를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
색은 이성에 대한 욕구를 말하는데, 남성과 여성이 필요이상으로 가까워 지거나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식은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로 적당한 음식은 섭취해 줘야 하지만 많이 먹어서 생기는 고통이 먹지 못해 받는 고통보다 더 큼을 알아야 한다.
명은 이름 즉 명성을 알리고자 하는 욕망을 말하는데, 이름이 있어 기쁘기도 하지만 이름을 내어 고통을 받음도 큰 것이다.
수는 수면에 대한 욕구, 즉 편안함에 대한 욕구이다. 잠을 많이 잔다는 것은 과로 하거나 과식 함으로써 생기는데, 필요 이상으로 먹지 말아야 한다.
맹자는 말하길 민(民)은식색(食色)이라 판단 하였다. 옳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우리 옛말에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고, 민은 이식위천(以食爲天) 이라 하여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하여 먹는 것을 중히 여긴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알맞게 먹고 독기가 없는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빛깔과 맛을 좋게 한다며 식품첨가제나 조미료를 많이 쓰는데, 이들은 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활을 잘 수정하고 산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행복이란 기쁨이다. 기쁨은 기본환경이 만들어 져야 하는데 첫번째는 평화인데 사람과 사람,또 여러가지의 관계를 잘 만들고 유지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자유이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위에서 자신을 구속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결국 스스로가 무엇인가에 집착을 함으로써 빠지고, 매이고, 얽히고, 눌려 자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독립하여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자기가 책임을 지고, 자기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 해 갈 때 자유는 온다.
세번째는 안락이다. 편안하고 즐거움이 있어야 기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쁨이 없으면 뭘 하든 허탈해지고, 미래에 대한 환상을 희망으로 알고 살다보면 나이가 들수록 힘이 빠지고 허망해 지는 것이다. 젊을 때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살지 못했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젊을 때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산 사람은 죽음도 즐거이 맞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막연한 희망만을 가지고 산 이들은 죽음에 직면하여 허망해지는 것이다.
기쁨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기쁨은 생활 속에서 만들어 가야 하는데 첫째는 이루는 것이고, 둘째는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것이 제일 좋다. 나누기 위해서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목적과 가치관이 없이 이루려고만 하고있다. 재물도 각자의 주인이 있을 때 그 빛을 발하게 되므로 성취가 아닌 나눔이 재일 중요한 것이다.
모은 재산을 보관하고 지키기만 한다면 창고지기 머슴밖에 되질 못하며, 나눌때에야 비로소 그 재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눔을 불교에서는 보시라 하였다. 보시는 투자도 아니고 뇌물도 아니다. 어떤 생각으로 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눔을 위해서 이룸이 필요한 것이다.
나눔을 위해서 육바라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가 필요하다. 육바라밀의 성격을 보면 이룸과 나눔이다. 이룸은 정진이요, 나눔은 보시이다. 보시가 더 중요하므로 재일 먼저 나오는 것이다. 정진으로 이루어서 보시로 나누면 그기에 행복이 있는 것이다.
보시, 지계, 인욕은 이타행(利他行), 자비행(慈悲行) 이라 하며, 정진, 선정, 지혜는 자리행(自利行), 지혜행(智慧行)이라 한다.
자리행도 기본 조건이 갖춰져야 하고, 이타행도 조건이 있어야 하므로 각 세가지씩 조건을 명시한 것이다.
재물도 그렇지만 지식이나 기술, 기쁨 모두가 나눌 때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누더라도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면 안된다. 이것이 지계인데 고통을 준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므로 고통을 주지 않기위해 계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한쪽에 나누어 주기위해 다른 쪽에게 고통을 준다면 보시의 의미가 없으므로 지계가 따라 오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서 고통을 받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욕을 설명하고 있다. 고통을 당할 때에 같이 행동을 한다면 고통을 주는 이와 똑같을 뿐이다. 누가 먼저 하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완전한 보시가 되려면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하고, 고통을 받을 때에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인욕이 어렵다고 한다. 인욕의 기초는 감내(堪耐)이다. 고통을 느꼈을 때에 견디어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 다음은 조복인(調伏忍)이라 하여 어렵지만 좋은 일이라 생각 할 때에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은 무생인(無生忍)인데, 금강경의 인욕선인의 인욕을 말하는데, 가리왕인이라는 폭군이 인욕선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아도 화내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하여 무생인이라 한다. 화를 내지 않기 때문에 참을 일도 없는 것이다.
화를 내지 않는 마음의 상태에서 보시를 할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보시인 것이다.
정진은 열심히 할 일을 하는 것인데, 할 일에만 집중해서 해야 한다. 이것이 선정이다. 선정을 다른 말로 하면 그침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그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혜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관찰 하는 것,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간하는 것이다.
행복의 완성은 보시에 있다고 하였는데, 보시는 그냥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정진으로 이루어야 하는데 정진은 집중하는 선정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고, 살피는 지혜로 뒷받침 될 때 완전한 정진이 되어 이룸을 이룰 수 있고, 보시도 다른 이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해야 하는 지계와, 내가 손해를 입더라도 보복하고 대립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욕이 있어야 한다.
육바라밀을 크게 둘로 본다면 보시와 정진이 되고, 다시 하나로 보자면 보시이다. 보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은 나눌 때에 있다. 나눌 때에 자유도 생기고 안락도 생기며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자비보시를 하라 함은 결국 행복의 주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삶의 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육바라밀로써 생활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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