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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세계라 하고, 부처님께서 계신곳은 도량이라고 한다. 절을 지을 때 화엄경을 중심으로 지었다면 화엄도량 사찰, 반야경을 중심으로 지었다면 반야도량 사찰, 법화경을 중심으로 지었다면 법화도량 사찰 등으로 부르게 된다. 도량이라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받들어졌기 때문에 도량신앙이라 하게 되었다. 세계는 크게 세가지로 분류된다. 그 첫째로 상념세계가 있는데, 상념이란 생각을 말하며 각자의 생각이 만들어낸 생각이다. 만일 부부가 한 집에서 산다고 해도 각각의 상념세계가 존재하므로 두 세계가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물리세계가 있다. 물리란 공간이라던지 그러한 물리적인 세계를 말한다. 또 마지막으로는 전자세계가 있다. 이러한 상념, 물리, 전자세계는 서로 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이 서로 합쳐져서 하나의 큰 세계를 이루고 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에서 도시락을 먹고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 도시락에도 100Km라는 속도가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속도는 없는 것이고, 기차 바깥에서 본다면 그 도시락은 100Km라는 속도가 있는 것이다. 서로의 관점이나 생각에 따라서 속도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이렇듯 상념의 세계에 따라서 물리세계가 바뀌어 질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일어나면 세계가 일어나고, 마음에 따라서 세계가 깨끗해 지기도 하고 더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엄청나게 발달하지만 물질세계 속에서 그것을 이루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수명이라는 한계와, 공간적인 한계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명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전자세계이다. 정보통신으로 대변되는 이 전자세계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들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물질세계와 전자세계는 주소라는 계념이 있는데, 상념의 세계에는 주소가 없다. 상념의 세계는 공기와 같아서 주소는 없지만, 시시각각 문제를 일으키므로 상념의 세계가 맑아져야 물질과 전자세계도 맑아지는 것이다. 반대로 상념의 세계가 혼탁하면 물질세계와 전자세계도 역시 혼탁해 질 수 밖에 없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역기능으로 나타난 블랙인터넷이 그러한 것이다. 또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서 개인주의 성향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개인의 판단이 주가 되는 문화의 사사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부모등 예전의 권위가 붕괴되고있다. 예전에는 공동체의식이 강했으므로 서로에 의해 통제장치가 있었으나 오늘날은 개인주의가 강해졌기 때문에 스스로가 통제하지 않으면 통제가 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스스로를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 잘사느냐 몰락하게 되느냐가 결정되게 되었다. 물리세계, 전자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이용하고 활용하느냐 도 중요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인 상념세계를 얼마나 잘 다스리고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 해 보면, 마음을 급하게 먹으면 세상도 급하게 보이며, 한곳에 마음을 기울여 중요하게 여기면 그것이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지만, 원래 급한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나의 생각이 편안하면 남도 편안하게 되며, 나의 마음이 급하면 남도 급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 상념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근본은 상념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세계현상 속에서 지혜의 세계를 깨달으셨다. 지혜를 깨달아 마음이 맑게 되어 청정심을 갖게 되므로 반야바라밀 즉 극락세계를 이루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끌고 계신 세계는 이러한 세계이다.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도 더불어 청정해 져 정토 즉 극락세계가 됨을 믿는 것이 바로 정토신앙이다. 부처님께서 지혜와 청정한 마음으로 설법을 하시는 곳을 도량 또는 청정도량이라 한다. 불교에서 흔히 극락을 정토라 하고, 사바세계에 부처님이 계신 곳을 도량이라 부르지만 이는 같은 말이다. 부처님이 계신 곳은 어느 곳이나 정토인 것이다. 지혜의 세계는 물질세계와는 달리 나고 죽음이 없는 세계이다. 또 주소가 없으므로 지식을 습득하고 싶다면 학습이라는 업을 지어야 하고, 깨끗한 마음을 갖고 싶다면 깨끗한 업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동수정업 동성불도(同修淨業 同成佛道)라 하여 함께 청정한 업을 닦아서 함께 불도를 이루자는 것인데, 중생들은 혼탁한 상념이 있으므로 청정심을 갖고 계신 부처님이 계신 도량을 친근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지혜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꽃을 들어 보이거나, 주장자를 들어보이셨는데, 지혜의 눈으로 보면 지혜의 세계가 보이지만 생각으로 보면 벽에 부딪혀 생각으로 머물게 되어 아무것도 보질 못한다. 이를 두고, ‘우음수에 성유(牛飮水, 成乳)하고 사음수에 성독(蛇飮水, 成毒)한다.’라고 한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도량에 와서 부처님께 참배, 공양, 발원하는 것은 우리의 세계를 맑게 해서 나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하게 되는 길을 찾아가는 것으로, 극락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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