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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좌선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먼저 예비지식으로 창조성에 관련하여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창조성이란 스스로가 마음속에서 어떠한 사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의식 없이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아니다. 창조성이 있으려면 먼저 자주성이 있어야 한다. 자주성을 창조적인 경향이라고 하고 자발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심성 가운데에서 만들어져서 나와야 한다. 또 동시에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규율로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규율 가운데에는 먼저 도덕성을 들 수 있다. 율법으로 말하자면 섭율의계(攝律儀戒)이다. 섭율의계라고 하는 것은 불성적인 자기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섭선법계(攝善法戒)로 불성적인 자기를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섭중생계(攝衆生戒)는 요익중생하는 즉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이 행동하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충동성이 있어야 한다. 충동성이란 심적인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강한 의욕과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음으로는 탐구성이 있어야 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선을 한다고들 하지만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마음은 개방성이 있어야 한다. 열려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열려진 마음은 유연성이 있어 부드럽다. 또한 융통성이 있어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할 줄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주의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주의집중력이라면 관찰, 이해, 기억력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상력을 촉진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감정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면서 우리는 참선도 하고 염불도 하면서 다양한 가치들을 접하면서 살아야 한다. 유마경 제자품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장자 유마힐이 병이 났는데,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차례로 불러서 “그대가 유마힐거사에게 가서 병문안을 하라.”고 일렀다. 사리불에게 이르자. 사리불은 부처님께 고하기를 “저는 감히 나아가서 병문안을 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예전에 나무 숲속에서 참선을 하고 있을 때에 유마힐거사가 와서 , ‘사리불이여 그대가 이렇게 앉아만 있다고 해서 참선이 되는 것이 아니니라.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욕계, 색계, 무색계에서 그대의 몸과 뜻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참선이니라. 마음은 멸정에 있으면서 모든 위를 나타내는 것이 이것이 참선이니라. 도법을 버리지 아니하고 세상살이를 하면서도 참선은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일러 좌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견해에 동요하지 아니하고 그러고도 37조도품(助道品)을 행하는데 그 도가 있다. 그러므로 번뇌를 끊지 아니하고 열반에 들어간다. 만일 이와 같은 자이어야 부처님의 인가하는 바가 될 것이다.’고 일렀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이와 같은 말을 듣고 할 말이 없어서 우두커니 앉아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유마힐거사에게 가서 병문안을 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나온 37조도품(助道品)이란 37가지의 도를 배우는 방편을 말한다. 먼저 사념처(四念處)라 하여 다음의 네 가지를 생각하여야 한다. 첫째 관신부정(觀身不淨), 몸이 깨끗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관수시고(觀受是苦), 감각작용은 괴롭다고 보는 것이며, 셋째 관심무상(觀心無常), 마음은 항상하지 않다고 보며, 넷째 관법무아(觀法無我),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사정근(四正勤) 네가지를 바르게 정진하는 것이다. 첫째, 미생악영불생(未生惡令不生),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은 생기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며, 둘째, 이생악영멸(已生惡令滅), 이미 생긴 악은 없어 지도록 하고, 셋째, 미생선영생(未生善令生), 아직 일어 나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하며, 넷째, 이생선영증장(已生善令增長),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증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여의족(四如意足) 네 가지의 뜻대로 만족하는 것이다. 첫째, 욕(欲), 희원 이렇게 하고 싶다고 바라는 것이며, 둘째, 염 (念), 기억 마음에 분명히 새겨서 잊지 않는 것이며, 셋째, 진 (進), 정진 쉬지않고 돌진하여 노력하는 것이며, 넷째, 혜 (慧), 지혜 바르게 사유하고 분별하여 마음이 흐트러 지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오근(五根)이 있는데 신(信), 믿는 마음과 진(進), 정진하는 마음, 염(念), 기억하는 것과 정(定), 즉 선정과 혜(慧), 즉 지혜이다. 그리고 또 칠각지(七覺支)가 있는데, 일곱가지 닫는 마음이다. 염(念)이란 항상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고, 택(擇)은 선택할 줄 아는 법이며, 진(進) 즉 정진과 희(喜) 기뻐할 줄 아는 것과 경안(輕安) 즉,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며, 정(定)은 선정이며, 사(捨)는 희사이다. 그리고 팔정도(八正道)가 있는데, 여덟 가지의 바른길을 말한다. 첫째, 정견(正見) 즉 바른 견해. 둘째,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셋째, 정어(正語) 바른 말. 넷째, 정업(正業) 바른 행위. 다섯째, 정명(正命) 바른 생활. 여섯째, 정정진(正精進) 바른 정진. 일곱째, 정념(正念) 바른 기억. 여덟째, 정정(正定) 바른 선정이다. 이것이 37 조도품이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 37조도품을 실천하면서 생활하여야 할 것이다. 앞서 번뇌를 끊지 아니하고 열반에 드는 것이 연좌라고 하였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치의 세계를 닦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참선을 하는 데에 장소가 따로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유마힐거사도 대가족이 있었지만 청렴하게 살았다.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모두 사회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였다. 오늘날의 장자들도 그런 점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돈이 많이 없는 사람들도 무작정 돈 많은 사람들을 시기만 하는 것도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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