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그림자가 하나이듯 선과 불선에 업보가 따름을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죄의 무더기, 그 안의 미세함까지도 모두 멸해, 일체 선한 공덕을 이루기 위하여 게으름 없이 정진하리라.”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8)는 말한다. “나를 둘러싼 일체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 즉, 스스로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각자가 지녔다고 착각하는 자아의 그릇을 경계로 그릇의 크기 만큼만 세상을 담으며 한 평생을 살아 갑니다. 재미난 것은 사실 경계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그시 그 경계를 들여다 보십시오. 지금까지 신념으로 지녀왔던 덩어리 그 경계의 헛개비가 보이십니까?” 5월 한 달여 일정을 미국 다르마투어로 진행중인 달라이라마. 여든에 가까운 노장의 기상 시간은 인도 다람살라서와 같이 새벽 3시 30분이다. 인도와 낮과 밤이 바뀌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에는 남다른 비결이 있다고 했다. “비결이라면, 의외로 간단합니다. 바로 오후 불식이지요. 다음날 이른 기상을 지속 가능케 해주는 힘은 바로 저의 식욕입니다. 통상적으로 욕망을 정의할 때 불교에서는 부정적 의미로 이해되고 있지만, 알아차림을 동반한 욕구는 오온을 깨우고 나아갈 방향을 보도록 합니다. 때문에 장소와 식단 같은 것에 큰 구애를 받지 않고 매우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를 항시 즐길 수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한번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호텔 조식이 정해진 시간 이전에는 제공되지 않아 이른 아침의 출출함에 매우 곤란했던 경우도 있었답니다.” “화는 본성이 없다”라고 말하는 달라이라마.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 가운데 6장의 인욕품은 달라이라마께서 애독하는 장으로 유명하다. 시간이 없을 때는 6장과 8장의 선정품을 수시로 암송하라고 권고한다. 특히 선정품에는 자타상호 교환법의 길잡이로 손색이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아래는 달라이라마께서 설하신 <입보리행론>의 인욕품의 말씀) 단 한 번의 성내는 마음으로 지난 공덕을 허물 수 있습니다. 인욕 행을 함에 어떤 유익함이 있는지 항시 생각하십시오. 화의 무익 또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월칭보살께서는 <입중론>에서, 백겁 동안 보시바라밀을 쌓았더라도 한 번의 화로 모두 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화를 일으키는 대상을 향해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공덕을 모두 지우는 어리석음입니다. 분노는 이렇게 어리석은 짓입니다. 따라서 인욕만큼 뛰어난 수행은 없습니다. 사실, 화를 내면 스스로도 매우 괴롭습니다. 잠깐의 인내로서 그 힘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분노를 없애는 유일한 해결책은 공성을 깨우친 지혜뿐입니다. 아리아데바께서는 <사백론>에서, 탐진치 삼독 가운데 집착과 성냄은 각각의 성질이 있으나 어리석음은 번뇌에 내재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탐진치의 대치가 되는 방편으로 성냄은 자비를 통해 일부 다스릴 수는 있지만 완전하게 뿌리를 뽑는 방법은 공성을 깨우친 지혜뿐이라고 하셨습니다. <현관장엄론>의 주석서를 보면, 중생의 뜻을 이루신 역대 보살님께 귀의를 올리면서 유식의 대논사이신 세친보살을 예로 듭니다. 세친보살의 뛰어난 제자들 중에 한 분이 디그나가입니다. 디그다가는 스승의 논리 또한 논박하였는데, 유식학에서 무아의 반대가 되는 법집 다시 말해 직접 인식하고 지각하는 논리로서 타당성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추론은 바른 자각을 도출하는 현명한 앎의 과정입니다. 분노를 사유하여 그 근원이 옳지 않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바에 대해 알아차려서 그 반대가 되는 의식의 작용이 무엇인가를 사유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마음에 많은 화가 일어나면 쉽게 잠을 청하기 어렵습니다. 한 번의 분노가 일어남으로 인해 마음의 안정이 산산이 부서져 버립니다. 평안히 있다가고 갑자기 화가 나면 마음의 요동을 쉽게 가라앉히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음식의 맛을 감별하기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현대 과학자들은 화로 인해 인간의 면역 체계도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의 평온은 어떤 어려움에 대해 근심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직면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로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마주해 바라보십시오. 그 방법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수순을 밟아 그 방법을 구해야 합니다. 만약 해결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방법이 없음에 대해 자각해서 스스로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화가 날 때에는 은혜를 입은 대상인 부모와 가족들에게도 함부로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마음이 안정될 때는 환자의 쾌유도 매우 빠릅니다. 일상의 화는 내가 원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일어납니다. 화가 나면 밑도 끝도 없는 용기 비슷한 것이 더 해져서 더욱 크게 화를 부축입니다. 이때의 에너지는 매우 부정적인 것입니다. 화는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립니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간의 정치적인 분쟁이나 작게는 가족 간의 갈등들을 일으키는 원인은 모두 화로 인한 것입니다. 진심을 일으켜 행복하게 사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불안을 먹이로 삼아 분노가 늘어나니 결국 ‘나’를 멸하게 하고 맙니다. 자신과 나의 것으로 여겨 온 것에 해를 끼치면 마음이 불편해 지고 맙니다. 나를 해롭게 하는 근원은 바로 ‘분노’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스승께서는, “적이 있어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만 내가 일으킨 분노에 비하면 큰 해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해를 끼치는 상대방에게 화가 날 때, 이미 지난 일이라면 화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 것은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과거의 해로 지금의 내가 반박을 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과거의 해를 고칠 수 없다면 왜 굳이 화를 내어 스스로를 다시 고통 받게 합니까.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데 왜 스스로 번민을 자꾸 일으켜 괴로움을 자청합니까. 고통에도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현재 나의 고통이 이전의 잘못으로 인해 받는 필연의 결과임을 안다면 화가 날 때 그 화의 마음을 빨리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지난 업에 대한 생각이 없이 타인의 탓으로 돌리면 분노는 점차 거대해 집니다. 또한 자신의 행동은 살피지 않고 모든 것을 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루어 버린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짓 또한 없습니다.
진정한 용기를 일으킨 이는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뿐만 아니라 붓다의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인 고제를 완전히 알아서 순차적으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이입니다. 번뇌와 싸우는 큰 전투에서는 결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승리한 자만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규정짓는 이가 있다면 어서 깨어나십시오. 여러분은 타인의 안락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계신가요. 자신의 방향과 반대로 선 이들에게 악한 말을 하는 일은 삼가십시오. 나와 나의 편의 행복함에 기뻐하면서 나의 반대편에 선 이들을 험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붓다께서 세속의 여덟 가지 법을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중생은 업과 번뇌에 휩쓸려 마음의 혼미함을 무수히 일으킵니다. 행복이 와도 그것이 행복인지 인정하지 못하거나 행복의 원인을 짓는 것 또한 놓치고 맙니다. 일상적인 예로, 새 차를 사면 기분이 무척 좋지요. 그러나 6개월 혹은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어느새 내 차가 별로로 보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차를 보고 호 불호를 가립니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들과 원치 않는 고통들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고통이란 원치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고통에서 스스로가 굳은 의지를 세우면 비로소 출리심과 원리심이 생겨납니다. 마치 어떤 환자가 있어 병의 원인을 알아 적소의 치료약을 구하는 것과 같이 고통을 통해 염리심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을 값어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해탈을 위하는 ‘나’는 겁쟁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나이 서른 즈음에 ‘보리심’은 멀리 있는 무엇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십년 후에야 수행으로서 ‘보리심’은 일으킬 수 있다는 확신을 스스로 얻었습니다. 바른 수행을 하는 이라면 반드시 고요한 ‘선정’을 병행할 것을 당부합니다. 저처럼 바쁜 사람은 행하기 힘든 것이 바로 ‘선정’입니다. 강조하고픈 것은, 익숙해지면 쉽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행 역시도 그러합니다. 잠깐 느끼는 화의 고통들을 참지 못해서 윤회하는 큰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진정한 용기를 일으킨 이는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뿐만 아니라 붓다의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인 고제를 완전히 알아서 순차적으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이입니다. 번뇌와 싸우는 큰 전투에서는 결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승리한 자만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 승아제 모지 스바하.’
인도 다람살라에서 가연숙 omflower@gagyo.org / www.gagyo.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