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다시보기
내 안의 긍정 바라보기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8)는 자리에 없었다.
“1959년 오늘, 인간 존엄의 자유를 되찾고자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혼혈을 다해 저항하고 투쟁하였습니다. 비극적인 역사의 아픔을 물려받은 자녀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선연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중국의 박해로 희생된 고인의 명복을 추모하고자 합니다. 자유에 대한 존엄성을 되찾고자 했던 그날의 시위는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투쟁의 발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0일, 티베트 민중봉기 54주년 기념일에서 티베트망명정부 정치적 지도자(Sikyong) 롭상상게(Lobsang Sangay, 45)는 “중국과 대화하고 싶다.”고 강력히 요청했다.
“티베트 문화와 미래를 강재 점령하고 중국화 하려하는 정책이 과연 티베트인들이 원하고 또한 동의하여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중국 정부에게 간곡히 묻고 싶습니다. 결국 절망에 빠진 티베트의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분신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는 귀중합니다. 잔혹한 현재의 상황을 바꾸기 위하여 티베트 망명정부는 14대 달라이라마의 뜻을 받들어 ‘중도中道’적 정책으로서 중국과 티베트 양측에 유리한 이해관계가 연결되기를 기대합니다. 중국은 티베트의 상황을 외부에 공개하고, UN은 진상을 조사하도록 위원단을 파견해야 할 것입니다.”

3월은 한국인 그리고 티베트인 모두에게 봉기와 저항의 시절로 회자되는 시기이다. 107명의 분신 그리고 90명의 사망. 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자기희생의 릴레이가 벌어지고 있는 티베트의
사태를 지켜보는 현장에서 과거 우리가 겼었던 역사의 질곡을 돌이켜 회자할 수 있었다. 이미 우리가 지니고 또한 누리고 있는 보편적인 ‘자유’의 권리가, 지금 현재까지도 지구 한 편 누군가들에게는 지극히 열망하는 유일한 전부였다.
2002년 이후 희망을 보였던 티베트 문제에 관한 중국정부와의 특사 회담은 현재 교착상태에 빠졌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제안하는 상호간의 윈윈(Win Win) 정책으로서의 ‘중도’적 제안은 사실 진전될 전망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망명정부의 일부 젊은이들은 달라이라마의 중도주의 정책에 깊은 회의감을 내비추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미 2차례 이상 네팔과 근접한 인도국경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등의 대규모 시위를 벌인 바도 있다.

이러한 일련의 소용돌이 속에서 복잡다단한 정황들을 체감하는 입장에 처하고 보니 상황적 모순에 관한 크고 작은 의문들이 들었다. 티베트인들이 요구하는 ‘달라이라마의 티베트 귀환’이 지닌 비현실적 구호에 대한 물음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1959년 민중봉기 당시에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에서 도망 나와 인도주의 입장을 취한 인도 네루 정부에 의해 피난처를 제공 받았다. 곧 티베트 본토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잠시, 외교 특사의 겉핥기식 회담으로 명분 추구만 앞세우면서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한 망명정부는 티베트의 독립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굳혔다.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 당시 티베트 설산을 넘어 인도로 그 뜻을 따른 10만 명의 티베트인들의 대부분은 현재 이미 노장이거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자식들이 장성해 인도식 문화로 융합된 3세대와 4세대들로 이어져 정착하거나 또는 이민했고 5년마다 인도 거주 허가증을 갱신해야하는 난제 속에서 무국적의 이방인으로 반 체념한 채 살아가고 있다. 실제 인도의 티베트인들은 버터차보다 밀크티(짜이)를 더욱 즐겨 마신다.
다시 묻는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방문을 희망하면서도 왜 현실화 할 수 없는가. 현실 불가능한 달라이라마의 귀환을 부르짖으며 몸에 불을 놓는 이유는 불교적 신념에 근거함을 의심치 않는가. 망명정부가 요청하는 티베트인의 자치권에 대해 중국정부는 어떠한 이유를 들어 강경 제압으로 묵살하는가. 중국정부는 티베트만을 필요로 할 뿐 티베트인은 포섭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의도인가.
국기 계양식이 거행되고, 민족의 자주권을 상징하는 국가가 울려 퍼졌다. 인도의 국기와 나란히 펄럭이는 티베트 국기를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지난 시간, 나의 조국에서 심장 위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향해 벙긋거리던 형식적인 애국의 다짐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만은 그 어느 때 보다 진심이었다. 비로소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내일의 염원을 비춰 보았기 때문이다. 왜 세간인들은 알려고 들지 않을까. 티베트의 평화가 10억 아시아인의 평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진실을 보려 들지 않을까.

“내게 황금 500덩이를 빌려주시오. 다음 생에 반드시 되갚으리다.”
부러울 바 없이 모든 것을 누리는 왕(Angadinna)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한 그릇된 견해로 인해 스스로 부정적인 삶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선행과 수행의 공덕으로 범천에 태어난 보살은 중생을 향한 무한한 연민을 일으켜 이러한 왕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고 바른 삶을 일깨워 주고자 왕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어디서 배운 것이오?”
천상의 신으로 모습을 드러낸 보살을 보자 왕은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여 기이한 비법의 실체를 물었다. 보살은 다생에 걸쳐 명상에 전념하고 수행하며 윤리적으로 실천하고 감각을 제어한 인과로 이와 같은 능력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일러 주었다.
그러자 왕은 보살을 조롱했다. “그렇다면 내게 황금 500덩이를 빌려주시오. 다음 생에 반드시 되갚으리다.” 왕은 인간의 이생 이외에 다른 생은 없으며 윤회도 없다고 믿었기에 욕망과 탐욕 그리고 감각적인 즐거움 등에만 도취되어 있었다. 보살은 그릇되고 악한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무지한 인간이 겪는 다양한 고통을 설법하였다. 마침내 왕은 자신의 그릇됨을 참회하였다. 이어서 여생동안 불법을 수행하여 바른 믿음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일깨워 준 보살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티베트 로사(새해)로부터 보름이 되면 이른 아침 사원에 대중이 모여 포살(Sojong)을 연다. 이후에는 달라이라마의 <본생경> 법문이 이어지는데 올해 티베트력 물의 뱀의 해에는 본생담 29장의 ‘범천으로부터의 방문객(A Visitor from Brahmaloka)’을 주제로 하였다.
법문에 앞서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에서 대대로 전승 되어 온 <본생경> 낭송 법회(Mnlam Chenmo)의 유래를 밝혔다. 1409년 쫑카파 대사에 의해 시작된 이래, 550년간 라싸(티베트의 수도)에서 이어져 온 아름다운 티베트불교의 문화임을 찬탄하며 설법을 열었다.
이 지구상의 그 누가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이루고 누리며 부러울 바가 없다고 단정 지은 탓에 그릇되고 독선적인 자만에 빠져있음에 대한 허물을 일깨우고 일체의 실상을 사유하도록 바로 잡는다는 내용이다. 일심으로 달라이라마의 법을 청하는 사부대중 가운데서도 특별히 이번
법문을 위해 푸른 카따(티베트식의 환영과 존경의 의미를 한 스카프)를 취한 몽골 불자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붓다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본생경>의 근저가 그러하듯이 선근 공덕의 인과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제석천에 난 보살이 염부제를 둘러 보다 그릇된 견해를 지닌 욕망의 노예를 보았다. 더욱이 그는 만백성을 거느리는 통치자였기에 그의 행보가 심히 염려된 탓에 삿됨을 바로 잡고자 연민을 일으켜 지혜의 약으로 어리석은 견해를 치료해 주려 하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릇된 견해로 굳어진 탓에 지혜의 약효가 들지 않자 보살은 지옥의 두려움으로 왕을 꾸짖으니 비로소 항복하였다.
“당신의 몸에 장식된 반짝이는 고가의 장신구들은 안전하게 보관되어야만 하지만 실로 귀중한
지식은 더욱 많이 펼쳐지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활용되어 지지 않는 지식은 도서관에 장식된 고서와 같아서 펼쳐 보지 않는 이상 무용지물과 다름이 없습니다.”
달라이라마는 지난 1월 인도 알라하바드(Allahabad)에서 근 한 달여간 개최된 힌두 종교인의 축제(Maha Kumbh Mela)에 참석하지 못함에 대한 유감을 털어 놓기도 했다. 종교는 철학과 문화의 사유가 시대의 사상과 어우러진 인간의 가치이기에 그러한 공감과 토론의 어울림에 티베트불교가 대화의 장을 조성하지 못한 바에 대한 큰 아쉬움을 보였다. 참고로 다음 힌두 종교 축제는 12년 후인 2025년에 열린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어야 말로 대승불교의 열쇠라는 점을 치하하며, 부연하여 티베트어의 우수성을 재차 강조했다. 비록 티베트어가 현대과학을 표현함에는 한계가 있지만, 자유의 해법이 담긴 불법을 해석하고 논의함에는 수승한 언어라는 것이 달라이라마의 확신이다.
“현 70억의 인구 가운데 1억 명은 스스로 무종교인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신앙을 가지거나 혹은 없거나와 무관하게 자비와 연민은 인간의 윤리적인 삶을 선도합니다. 이어서 도덕은 신뢰를 쌓아줍니다. 그리고 신뢰는 돈독한 우정으로 발전됩니다.”
완벽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달라이라마는 깨달음의 문제는 어렵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 안의 세밀한 장애들을 극복한 결과가 바로 깨달음입니다. 내 안의 긍정을 보세요. 그 곳에 당신이 구하는 해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