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7)가 다람살라에 머무는 기간은 1년에 고작 3개월. 그 이외의 모든 일정은 인도 전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초청 법회를 소화하고 있다. 여든에 가까운 노장이 감당하기에 무리로 여겨질 정도다. 권청하는 어느 곳이건 흔쾌히 참석해 세계평화와 인류애의 메시지를 전하는 달라이라마를 멀리서 뵐 적이면 절로 경외심이 일어난다. 지난 한국과 대만 그리고 몽골 법회를 끝으로 달라이라마는 한 달간의 남인도 법회 일정에 올랐다. 그 가운데 보름간 남인도 문곳(Mundgod)에서 쫑카파대사의 <보리도차제론(이하 람림)>을 법문했다. 1989년에 열린 이후 23년 만에 다시 열린 이번 람림 법회는 링린포체(27)가 주관하고 프랑스 불자들의 후원 하에 성사되었다. 법회를 하루 앞둔 29일, 께렐라주에서의 공식일정 이후 문곳에 입성한 달라이라마는 문곳 6대 사원장이 모인 데붕라찌사원에서, “7대 링린포체의 권청으로 열리게 된 이번 법회를 통해 하나 된 마음으로 모두 화합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달라이라마는 본인의 건강에 대한 주변의 염려에 대해, 께렐라주에서 열린 힌두사원 개원식에서 만난 106세의 건강한 성직자를 예로 들며, “신앙을 지닌 모든 이들의 건강 유지는 모두 마음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할 것”이라며, “여러분의 조화로운 사원 운영 덕에 매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화답했다. 아울러 불교 지도자는 자비심과 비폭력의 선봉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라이라마는 출범 1년을 넘긴 총리체제 하의 티베트중앙행정부에 대한 신뢰를 당부하기도 했다. 본인의 정치적 지도자 은퇴 이후 민주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된 롭상상게 총리직 체제의 확립을 위해 지난 9월 제2차 국무회의를 통해 기존의 칼론뜨리파(Kalon Tripa) 호칭에서 정치적 지도자를 의미하는 ‘시(Sikyong)’으로 교체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현 롭상상게 총리는 교육부 장관직을 공동 수행하고 있으며 미국정부의 미화 2백만불 지원 정책 하에 2년 계획안으로 티베트 망명정부의 현대화된 기초교육 구조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번 람림 법회에는 주관인 링린포체 본인은 정작 참석하지 못했다. 달라이라마의 문곳 입성 전날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후송되는 불상사를 겪은 것이다. 당시 링린포체는 우측 고관절에 큰 충격을 입고 다리뼈에 금이 갔으며, 수술 후 고아의 한 재가불자의 사택에서 회복중인 것으로 전했으나 완치는 힘들 것이라고 측근을 통해 조심스럽게 전했다. 이번 보름간의 람림 법회 행사에는 전 세계 53개국에서 3만여 명이 동참했다. 티베트 난민 지역이라는 특성상 인도 정부에 의해 보호구역 방문 허가증 발급을 받지 못한 600명의 외국인이 퇴출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법회에 참석한 이탈리아인 150명이 구치소에 감금되는 등의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자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주재 인도대사관 철수를 지시하는 것으로 맞대응하기도 했다. 처음 6일간은 가덴장체사원에 이어서 나머지 6일은 데붕로셀링사원에서 람림법회가 진행됐다. 12월 10일에는 14대 달라이라마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일이자 세계인권인의 날 기념일로 데붕고망사원에서 기념식이 거행됐다. 이 행사 참석차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가 데붕로셀링사원 법회장에 미리 참석해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보름간 거행된 이번 법회는 <보리도차제중론>과 <보리도차제소론>을 주제로 했다. 달라이라마는 쫑카파 대사의 <보리도차제론(람림첸모)>을 열며, 1959년 인도 망명을 위해 티베트 라싸에서 짐을 꾸리던 때를 회상했다. 당시의 다급한 정황 속에서 본인이 유일하게 챙겨온 논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쫑카파 대사의 저서 <보리도차제론>이었다고 말했다. 달라이라마는 <람림>을 티장린포체에게 사사했으며, “정신적 스승들께서 인간 세에서 설하고 논하신 진리의 세계를 통해 무엇이 진정으로 붓다의 법인가를 확립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티베트불교의 <람림> 가운데 두 권이 이번 문곳 법회에서 논해졌다. 전체 <람림> 8권 가운데 <보리도차제소론>을 비롯한 나머지 <보리도의 연금액(람림 셀슈마)>과 <바르고 빠른 길(로델람)>은 올 해 남인도 벨레쿠피 세라사원에서 연속해 진행된다. “당신은 붓다의 가피 안에 있습니까?”빠른 속도로 <람림>을 읽어 내려가던 달라이라마께서 불현듯 물었다. “불보살님들과 스승의 가피를 받는다는 것은 그러한 가피를 제자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 아니라 제자 스스로가 보다 선한 쪽으로 성취의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 붓다 그리고 불보살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바로 가피입니다.” 달라이라마는 항시 이웃 종교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의 수행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해 왔다. 자기 스스로의 만족 또는 바른 행실과 청정함에 있어서 불교도 보다 모범이 됨을 이유로 들었다. 붓다의 제자라면 수행을 통해 마음을 바꾸고 그러한 마음의 변화로서 성취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지니며 살아온 망각된 편린의 사고방식들이 지닌 분별과 망상의 산란함으로 대상을 그릇되게 보이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왜 행복을 쟁취하지 못할까?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에 마음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한 이유를 거론하는 것이 바로 불교이다. 모든 희론은 망상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존재하는 실상을 그릇되게 인식하도록 하는 환경에서 정견을 가지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로 나아가야 한다. “마음의 허물은 구름과 흡사합니다. 청정한 하늘에 드리운 망상과 같습니다. 내가 본 것과 다른 본질 그리고 그 자체의 존재성이 바로 그 자성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그와 같다고 여겨왔던 것이 모두 그릇된 것임을 바로 알 때 존재성을 바로 내가 항상 대상을 향해 지녔던 그릇됨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보리도차제론>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나의 모든 분별 망상을 쉬고 내려놓음’을 마음에 세기라 한다. 내가 지닌 정광명 즉, 진여 그 자체를 관찰을 통해서 마음이 희론을 끊고 일체 존재가 환과 같고 허깨비와 같음을 확신하라 한다. 이로서 바른 정법에 신심을 일으켜 정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여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스스로 깨우치도록 취모리를 들어 세우십시오.” 이를 근본으로 하여 깨달음으로 정진할 수 있다. 마음에 드린 객진의 번뇌들 그리고 분별 망상들이 진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거친 의식만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의식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지금 이 자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착각을 차단하고, 붓다까지 도달할 수 있는 정광명을 알아차려 나아가는 과정, 이를 이름 해 ‘수행’이라고 하였다. “티베트불교의 겔룩빠에서는 대론의 논쟁에 치우치는 수행적 경향이 있습니다. 때문에 스승들이 논하신 말씀을 관하기 보다는 반박하기 위한 논쟁의 이론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대론을 할 때 본인의 마음에 변화를 줄 수 있도록 이끌어 가기를 당부합니다.” 자성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천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자성으로 존재하지 않기에 인과의 연기법으로 존재함을 통찰해야 한다. 모든 대상하는 것의 독립적인 부분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원인에 의존하여 존재하듯이 원인 또한 결과에 인하여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거듭 강조하니 다른 조건에 의지하여 비로소 존재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의존하여 존재한다고 했을 때 기필코 의존하지 않는 부분을 모순되게 부정해야 합니다. 이름을 붙여 존재성을 입증하고 그 존재성을 일컬을 뿐이지 그 자체가 바로 자성으로서 그 본질로서 그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순을 통해서 자성이 없다고 한다면 원인과 결과 그리고 생과 멸 그리고 윤회와 열반이 모두 성립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속박에서 해탈한다는 것조차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자성을 타파하는 이치로서 타파하는 것을 차별하지 않고 인과로서 이치를 타파해 보자. <현구론>에서 사성제의 여법상, 자성의 공을 분명히 하였다. <중론> 24품에서는, 실제 말을 타고서 말 그 자체를 잊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이 모두 공이 아니라면 무생고 무멸이기에 사성제 또한 없을 것이다. 인과는 실제 사성이 없다. 일체법이 자성이 없음을 깨달을 때에만 유변에 빠지지 않는다. “티베트의 중관논사들은 인과를 이치로서 부정하였습니다. 자립논증학파에서는 연기를 말함에 있어서 ‘원인이 결과를 낳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원인이 가진 자성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공사상의 핵심이 바로 연기이다. 소리와 말로 붙여진 연기하는 존재성에 주체성이 있어야 하는가? 존재성이 없기에 이름과 소리를 붙일 수 있는 것. 오로지 이름 붙여진 것일 뿐이라는 그 자체만 남는다. 따라서 그 자체는 찾을 수 없다. 진실하게 생멸을 얻음에 대해 관찰해야 한다. “색을 인식하고 외부와 내부가 있다고 여기는 존재성의 무상성을 알아차리듯이 인식하는 그 조차의 그릇됨을 아십시오. 관찰의 지혜를 가지고 실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 실상을 바로 보도록 하는 것이 바른 연기 공의 수행법입니다. <입보리행론>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인식은 5식과 근이 맞물려 작용하며, 자성으로 존재한다면 원치 않는 고통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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