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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1년 부처님 오신날
불기 2551년 부처님 오신날

2007년 5월 이달의 법문

진리의 실상 보이기 위해 오신 부처님

정우(頂宇) 스님ㅣ본지 발행인·구룡사 주지


실록의 계절 5월은 이 세상 온갖 만물이 각자 자기의 생명을 맘껏 뽐내는 생동과 환희의 계절입니다. 그 5월 중에서도 오는 24일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우리 곁에 몸을 나투신 날입니다. 그래서 5월이 되면 저절로 어깨춤이 흘러나오고 생명에 대한 찬탄의 소리가 곳곳에 넘쳐납니다.
이처럼 매년 5월이 되면 우리 불자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환희의 법열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인류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자비(慈悲)와 지혜(智慧)와 광명(光明)의 빛으로 우리 곁에 몸을 나투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햇수로 치면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2631년째가 됩니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불기(佛紀)는 올해가 2551년인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우리 곁에 오신 날은 2631년째가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부처님께서 우리들처럼 사대육신(四大六身)을 가지고 오신 것은 2631년 전이 맞는데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불기는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연호(年號)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기를 부처님의 탄생일에 맞추지 않고 열반일에 맞춰 사용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시어 수행자의 길을 걸으시고 깨달음을 이루셨을 때를 남음이 있는 열반이라고 한다면 그 후 45년간 법을 설하시다가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서 열반에 드셨을 때는 남음이 없는 열반을 이루신 날이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열반이란 더 이상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자리를 말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영원히 소멸된 자리를 말합니다. 즉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신 날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영원히 소멸하고 청정법신비로자나불(淸淨法身毗盧遮那佛)과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과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로 다시 우리 곁에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참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진리의 실상인 생명력을 보이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깨달음을 열어서 보이심으로써 우리들도 또한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세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생들은 각자의 업력에 따라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의 육도(六道)를 생사유전하며 머물러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뭍 중생들을 애민섭수(哀愍攝受)하고 그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도록 그것을 행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화엄경(華嚴經) 십지품(十地品)에 보면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내는 애민심이 잘 나와 있습니다.

『불자들아 보살은 이와 같이 여래의 지혜가 한량없이 이익 함을 보고 모든 하염있는 법은 한량없이 걱정되는 줄을 보았으므로 일체 중생에게 열 가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었다. 무엇이 열가지인가. 중생들이 고독하여 의지할 데 없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중생들이 빈궁하여 곤란함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중생들이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의 불에 타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중생들이 모든 업보의 옥에 갇힘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중생들이 번뇌의 숲에 막혔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중생들이 잘 살펴보지 못함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중생들이 선한 법에 욕망이 없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중생들이 부처님 법을 잃어버린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중생들이 생사의 물결에 따르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중생들이 해탈하는 방편을 잃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오늘 법문을 준비하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았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내가 출가한지도 올해로 42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룡사 주지 소임을 맡은 지도 22년이나 되었습니다. 내가 절에 들어온 나이도 40이 넘었고 구룡사 주지 소임을 맡은 지도 2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았을까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되돌아보니 외형적으로는 절을 참 많이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현재 인연을 맺어서 살피고 있는 절만 해도 23개나 되니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구룡사를 짓기 위해 천막법당에서부터 시작할 때가 생각이 납니다. 당시 나는 1400여 년 동안 통도사를 떠나지 않고 모셔져 있었던 부처님 친착가사(親着袈裟)인 금란가사(金初袈裟)와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자장율사(慈藏律師)에게 손수 지어서 올린 금란가사를 모셔와 친견법회를 봉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법회를 열면서 한 명이 찾아오면 그 한 명에게, 백 명이 찾아오면 백 명에게 똑같이 해준 말이 있습니다.
“법력도 없고 공력도 없고 영향력도 없는 내가 불사를 하기 위해서 구룡사에서 살고 있다고 한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 가사를 모셔와 사리친견 하듯이 인연을 맺게 함으로써 이 불사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위하는 일이 아니면 단 한 가지도 하신 일이 없으신데, 내가 지금 불사를 하려고 하는 것 역시 그와 같은 마음에서입니다. 이곳에 절을 세우게 되면 이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퍼져나가게 될 것이고, 그 가르침을 통해서 중생들과 더불어 어울림을 가지면서 힘과 용기와 지혜를 키워서 미진하고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을 살펴가는 절이 되도록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린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화엄경 십지품에서도 불보살님께는 중생들을 향해 일으키는 열 가지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 곁에 오신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다함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한번쯤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불쌍한 마음을 낸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향해 내셨던 애민섭수하는 마음은 자기는 잘났는데 못난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중생을 향해 내셨던 애민섭수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신라에 불교가 뿌리를 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차돈(異次頓)스님의 일화에 보면 그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차돈성사(聖師)가 고국인 신라를 떠나 고구려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는데 밖에 인기척이 나서 문틈으로 바라보니까 출가 전에 인연이 있었던 처자가 경주 계림에서 그 먼 고구려 땅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아궁이의 불길이 잦아들자 솥에서 바글바글 끊던 소리 또한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이차돈스님이 혼잣말로 한 마디 이릅니다.
「타던 불이 꺼지니 끊던 물이 잠잠하네.」
그러자 밖에서 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은사스님이 이 말을 듣고 찾아온 처자에게 ‘이차돈은 삼년 전에 세상을 떴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처자들 또한 말뜻을 알아듣고 ‘예. 스님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참 멋지지 않습니까? 부엌에서 밥 짓다가 아궁이 불이 꺼져 끓던 밥이 뜸 드느라고 조용해지는 것을 보고, 「타던 불이 꺼지니 끓던 물이 잠잠해지네.」라고 게송을 읊고, 부엌에서 나는 소리가 이차돈의 목소리인줄을 알면서도 큰스님의 말씀을 알아들은 처자들은 신라 땅으로 돌아가고….
이 말 뜻은 탐·진·치 삼독이라는 불기운이 사라지니까 재욕·색욕·식욕·명예욕·쾌락욕 등 오만가지의 욕망과 욕구가 다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유를 누리기로 하면 어디 있어도 자유롭고 불편하기로 말하면 어디 있어도 불편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넉넉하면 지옥에 가도 지장보살처럼 편안하고 아무리 좋은 극락에 가있어도 내 마음이 불편하면 거기가 고통과 괴로움의 현장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열반하신 통도사 방장 월하큰스님께서 저에게 몇 번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요즘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 돼.”
“스님 무슨 일 있습니까?”
“그 일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환히 보이는데 그걸 몰라.”
…….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는 것입니다.
인과라는 것은 좋은 원인이 있으면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이고 나쁜 원인이 싹트면 결국 나쁜 결과를 만난다는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불생불멸(不生不滅)이고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고 했는데, 무엇이 불생이고 무엇이 불멸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좋지 않은 법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불생입니다. 그리고 좋은 법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불멸입니다.
또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일성으로 하신 게송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늘 위 하늘 아래 우리 모두 존귀하도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삼계가 고통과 괴로움 속에 쌓여있으니,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
그렇게 하시려고 오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부처님오신날을 찬탄하는 것은 수행과 정진을 통해서 그런 자리에 들고자 노력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불기 255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2631년 전에 부처님께서 우리 곁에 몸을 나투신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여 우리도 부처님같이 선법의 욕망을 일으켜 고통 받는 이웃에게는 희망의 등불이 되고 탐욕과 어리석음을 밝히는 지혜광명의 등불이 되고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는 화합의 등불이 되도록 함께 정진 하였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나와 이웃이 더불어서 안락한 이익과 행복을 누리는 부처님오신날이 되도록 하고자 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