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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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민주, 자유, 평등의 참뜻을 논함
인류의 상고사에 관한, 『대루탄경大樓炭經』과 『중허마하제경衆許摩訶帝經』 등 수많은 경전의 기록에 의하면, 『중허마하제경』 권1에서는 그들을 “신상身相이 단엄端嚴하고 육근에 결함이 없으며, 미묘한 색은 넓고 크고, 몸에서는 항상 빛이 나며, 장수와 즐거움을 누리고, 허공을 자유로이 노니니 ……. 또한 남녀 중생의 상相이 없다”라는 내용이 있으며, 『대루탄경』에서는 “그들은 좋음과 기쁨을 먹고 살며, 광명光明과 신족神足을 지니며, 길고 오래도록 삶을 누린다. 이때 천하 사람은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남녀 구분이 없고, 또한 임금과 백성을 구분하지 않으며, 다함께 서로 왕래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법희法喜를 먹고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없는 평등을 즐거움으로 삼으므로 한없이 민주적이고 자유로우며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후에 세상이 변하며 그들 사이에도 아름다움과 추함, 교만, 비교, 실랑이, 다툼이 생겨났다. 그 다음에 다시 남녀의 구분, 부부 관계가 생겨났으며, 계속해서 가족, 촌락, 그룹이 형성되면서 결국 세상에 소란스러움이 끊이질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세간의 분쟁과 대립은 모두 ‘아집我執’에서 기인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람이 저마다 진정으로 불교의 ‘무아無我’를 실천하고 서로 존중하여야만 세간이 민주적이고, 자유로우며, 평화로울 수 있다.
유명한 철학자인 당군의唐君毅 선생은 『당군의논문집』에서 “세상에서 자유와 민주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틀림없는 말이다.
자유와 민주는 사회 대중 모두가 공유하는 재산이며, 변화무쌍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자유와 민주가 있기에 인권이 있고, 민의가 있는 것이며, 다함께 누리는 소중한 민주, 자유, 평등이 있는 것이다.

2. 오계 수지는 자유의 참뜻

오계를 수지하는 것이 왜 자유일까?
불교에서는 ‘지계持戒’를 강조한다. 계는 속박이 아니라 일체 선법의 근본이자 세간의 모든 도덕 행위의 귀착점이다. 계의 근본정신은 그릇됨과 악을 방지하고, 타인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침범하지 않음은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파괴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 할 수 있다.
오계는 비록 다섯 가지로 나누지만, 근본정신은 ‘침범하지 않는다’라는 한 가지 원칙이다. 타인을 방해하지 않고 존중하면 자유로울 수 있다.
『대보적경』 권82에는 다음과 같은 법문이 있다.

소위 오계는 일체의 중생 등을 죽이거나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 그가 마땅히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재물에 만족할 줄 알고, 타인의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 그가 사음을 멀리하고 음흉한 마음으로 다른 여인의 모습을 보지 않는다. …… 마땅히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진실되게 말하고 행동하면서 다른 이를 기만하지 않는다. …… 마땅히 술을 멀리하면 취하지도 않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오계에서 살생하지 않음은 타인의 생명을 침범하지 않음이요, 도둑질하지 않음은 타인의 재산을 침범하지 않음이요, 음사하지 않음은 타인의 명예와 순결을 침범하지 않음이요, 함부로 말하지 않음은 타인의 신용을 침범하지 않음이요, 술을 마시지 않음은 자신의 지혜를 상하게 하지 않음이니, 우리는 타인을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계는 살생하지 말고, 훔치지 말고, 망언을 하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소극적인 의미만을 받아 지니는 것이 아니다. 오계에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도 있다. 살생하지 않는 데서 더 나아가 살아 있는 것을 보호하고, 도둑질하지 않는 데서 더 나아가 기쁜 마음으로 베풀며, 사음하지 않는 데서 더 나아가 더욱 존중하고, 망령되이 말하지 않는 데서 더 나아가 더욱 성실하며, 술을 마시지 않는 데서 더 나아가 바르게 행동한다. 이처럼 적극적인 의미가 있어야 불교의 더 넓고 큰 자유가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대중이 더욱 적극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다.
보통 사람은 계를 받으면 구속이 더 많아진다고 여긴다. 그래서 “뭣 하러 계를 받아서 오히려 구속을 당하려고 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사실 계를 지키면 자유롭고, 계를 어기면 오히려 속박당한다. 왜냐하면 불교를 공부하고 수계한 사람만이 계를 받아서 지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를 받아 지님은 국민이 법률을 준수하는 것과 같다. 계를 지키지 않는 것은 곧 법률을 어기는 것이다. 무릇 감옥에 갇혀 자유를 잃은 사람은 하나같이 오계를 어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살인, 상해, 훼손, 박해는 모두 ‘살생하지 말라’는 계에 저촉된다. 탐욕, 침략, 탈취, 약탈, 겁탈, 납치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에 저촉된다. 강간, 유괴, 이중결혼, 풍습을 어지럽히는 것은 ‘사음하지 말라’는 계에 저촉된다. 비방, 배신, 협박, 유언비어, 무고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에 저촉된다. 독약의 판매 및 흡입, 운반과 술·담배를 하는 것은 ‘독을 마시지 말라’는 계에 저촉된다.
오계를 범했기 때문에 몸이 묶이고 자유를 잃게 되었으므로, 계를 지키면 법을 준수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유를 잃을 일도 없다. 오계를 받아 지니면 오계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되고, 계를 어겨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계의 참된 의미가 속박이 아닌 자유라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오계를 수지함은 인간 도리의 근본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손으로 술잔을 건네 다른 이에게 주어 술을 마시게 하면, 오백 세 동안 손이 없게 된다”는 『범망경梵網經』의 계율 조항에 의거하여 계율을 해석했다. 지나친 협박은 오히려 설득력을 잃었고, 불교를 배우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을 오히려 떠나가게 만들었다. 불교의 계율은 불자들이 스스로 원해서 지켜나가는 것이므로 지나친 책망이 필요치 않다. 오계를 수지함은 사람됨의 근본이며, 오계를 바르게 지켜나가야 비로소 인격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말한 오계는 유고의 오상五常과 서로 유사한 면이 있다.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오상을 오계에 대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살생하지 말라’는 것은 인이요, ‘도둑질 하지 말라’는 것은 의요, ‘사음하지 말라는 것’은 예요,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신이요, ‘독극물을 마시지 말라’는 것은 지이다. 오계를 받아 지니는 사람은 다함없는 이익을 누리게 된다. 우리가 살생하지 않고 중생을 도리어 보호한다면 자연히 건강하고 장수를 누리게 될 것이다. 도둑질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한다면 자연히 재물이 늘어나고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다. 사음하지 않고 타인의 명예와 절개를 존중한다면 자연히 가정이 화목하고 원만할 것이다. 망령된 말을 하지 않고 타인을 찬탄하면 자연히 아름다운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독약 같은 술을 마시지 않고 그 유혹을 뿌리치면 자연히 신체가 건강하고 맑은 지혜가 생겨날 것이다.
오계를 받아 지니는 것을 포기하고 부처님께 소원을 빌기만 한다면, 원인이 없는데 어떻게 과보를 얻을 수 있을까? 과거에는 오계를 수지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규제를 했고, 적극적인 해석도 없었다. 불교의 오계에는 ‘하지 말라’는 것뿐만 아니라 해도 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오계의 적극적인 측면부터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일반 신도들은 무턱대고 장수, 복귀, 명예, 가정의 화목, 자손의 번영 등을 받지 말아야 한다. 씨앗을 심지 않고 어떻게 수확하길 바라는가? 헛된 망상을 버리고 오계를 잘 지킨다면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오계를 수지함은 적극적인 면에서는 속박 같지만, 진취적인 면에서는 사실 무한한 이익이 있다.
여산廬山의 혜원慧遠 대사는 『삼귀오계정범三歸五戒正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백 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열 사람이 오계五戒를 지키면 그 열 사람은 고상한 사람이 된다. 천 가구가 읍邑에서 백 사람이 십선十善을 행하게 되면 백 사람이 화목하게 된다. 이런 풍조가 온 나라에 퍼져 집집마다 알게 되면 전국에 인자한 사람이 백만을 넘을 것이다. 착한 일 한 가지를 하면 악한 일 한 가지를 없애고, 악한 일 한 가지를 없애면 형벌 한 가지를 쓰지 않게 된다. 한 집에서 한 가지 형벌을 없애면 온 나라에서는 만 가지 형벌이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하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계를 수지하면 작게는 개인적인 고뇌와 두려움을 없애고 신심의 자유와 평안, 화목,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며, 크게는 그 영향이 국가와 사회에까지 미친다. 사람이 저마다 불교의 오계를 수지하면 우리 국가는 소박하고 겸양하며 덕이 많고 화목한 정토가 될 것이다.
오계를 수지함은 자유의 정신을 표출하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깊은 대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란 나와 타인과의 관계가 화복한 데서 생겨난다. 오계를 수지하면 자신에게 이로울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로움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오계를 수지하는 것이 자유의 진취적 의미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신심의 해탈과 자재를 추구하는 것이다.
자재가 곧 자유이고 해탈이 곧 자유이며, 번뇌에 구속당하지 않는 것 역시 자유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숙박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권력을 독점하는 전제정치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불교는 민주적 당정국가를 실현하고, 도덕을 표방하는 정치의 완성이야말로 국가정치의 최종 목표라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안 되지만, 자국 국민의 자유와 평등, 즐거움, 행복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리적 힘을 보유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부처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정치는 전륜성왕이 다스리는 어진 정치이며, 사람이 저마다 자유를 누리는 정치이다.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정치란 민주적이고 평등한 정치이다. 『장아함경』 중 「전륜성왕수행경轉輪聖王修行經」의 기록에 따르면, 윤왕輪王의 정치는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하며, 또한 오계십선을 행하는 덕화德華정치라고 한다.
오계십선의 덕화정치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한번은 윤왕의 아들인 태자가 이렇게 물었다.
“아버님, 윤왕의 정법은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널리 펼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윤왕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땅히 가르침에 의거해 법을 만들고, 그 가르침을 공경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그 가르침을 우선으로 삼아 정법을 수호하고, 그 가르침으로 왕자, 대신, 문무백관 등 궁 안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끌며, 그 가르침으로 백성과 가축 등을 사랑하고 보호하면 된다.
윤왕은 또한 한 나라의 임금은 어진 이를 예로써 대하고 그중 덕 있는 자는 더욱 가까이 모셔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 그들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어떤 것을 범해도 되도 어떤 것은 안 되는지, 또한 어떤 자를 가까이해야 하고 어떤 자는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것은 실행해도 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지, 어떤 법을 시행하면 백성의 생활이 편안하고 즐거우며 이로운지를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