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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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에서 사홍서원까지 5
④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만일 어떤 사람이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 싸움 그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지니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중아함경』 「예품」 『흑비구경』 제8)

일체의 번뇌를 멀리 여의고 저 열반涅槃의 도를 얻어, 마침내 괴로움에서 벗어나니 이것을 온갖 덕을 갖추었다고 한다.(『잡아함경』 권35)

마땅히 애써 공경하고 마음을 잡아매고, 삼가고 조심하며, 다른 이의 덕의 힘과 범행을 닦은 정도를 따라 윗자리와 중간자리, 아랫자리를 가려 앉고 위의를 만족하게 하여……, 무여열반에 이르려고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잡아함경』 권47)

열반涅槃이 곧 비구에게는 좋은 세계이다.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방편을 구해 열반에 이르도록 해야 하느니라.(『증일아함경』 권26)

도의 과위果位를 얻고, 생사의 깊은 연못을 벗어나 열반에 들기를 바라고 원하지만, 이는 나태하고 게으르면 할 수 없다네.(『증일아함경』 권27)

마땅히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원을 세우지 않으면 과보도 없느니라. 그 연유는……, 만일 장로 비구가 서원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끝내 불도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증일아함경』 권38)

그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하여 게으름 없이 실천하고, 도한 방편을 구해 현성賢聖의 8품도를 성취하여라. 성현의 발자취를 의지하면 능히 스스로 생사의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이다.(『증일아함경』 권39)

이 자애로움과 어짊이라는 갑옷을 입고 악마의 권속들에게 항복을 받았으며, 나무 밑에 앉아 위없는 도를 성취하였다……. 자애로움이 우선 제일이고, 자애로움이 가장 훌륭한 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아난아, 이런 연유로 가장 훌륭하다 이름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자애로운 마음을 쓴다는 것은 그 덕이 이와 같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으니, 부디 방편을 구해 자애로운 마음을 닦도록 해야 하느니라.(『증일아함경』 권41)

만일 어떤 중생이 열 가지 법을 행하면 곧 천상에 태어날 것이요, 또 열 가지 법을 행하면 곧 나쁜 세계에 태어날 것이며, 또 열 가지 법을 행하면 열반 세계에 들어갈 것이다……. 열반에 이르게 하는 그 열 가지 법을 잘 닦고 받들어 행하라.(『증일아함경』 권43)

이상 인용한 경문에서 세간의 사람들이 불도를 익히려면 그 불도를 익히게 하는 인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괴로움은 불도를 배우는 것을 증상시켜주는 인연이다. 어린아이가 즐겁게 놀고 있을 때는 부모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좌절을 겪게 되면 울면서 엄마, 아빠를 찾기 시작한다. 학생, 부하, 사부대중 등도 모든 일이 순조롭고 편안하고 즐거울 때는 상관이나 책임자를 찾지 않는다. 일단 해결하기 곤란한 일이 생기면 부랴부랴 누군가를 찾아 하소연을 한다.
좌절, 괴로움, 어려움 등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 원인을 찾지 않고 결과만 놓고 비교한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과보를 받을 때는 분명 업이 쌓이게 된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누군가 일깨워주고 알려주어야 한다. 괴로워야 도와주고 제도하러 오는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으로 인해 불도에 든다고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괴로울 때 부모는 반드시 자녀를 대신해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한다. 학생에게 곤란한 문제가 생기면 학생을 위해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선생님도 반드시 있다. 고통받는 자녀와 학생은 어른의 도움을 바라고, 힘 있는 어른은 반드시 학생들의 어려운 문제와 고통을 해결하길 원한다. 괴로움과 그 원인이 번뇌라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성제는 당연히 괴로움과 어려움에서 구해주는 큰 서원을 가진 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성제와 사홍서원은 자연스럽게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윤회를 반복하는 고난의 중생은 당연히 안전한 피안의 세상을 갈구하지만, 그곳으로 건네 줄 배가 어디 있는지 몰라 괴로울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스승이 될 만한 성현이라면 수많은 구조 장비를 갖춘 커다란 서원의 배를 타고 곧 가라앉을 것 같은 중생을 피안에 오르도록 데려다 줄 수 있다. 미혹에서 헤매는 중생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하늘의 태양도 보이지 않아 괴로운데, 마침 이끌어주는 스승이 있어 불도를 익히고 장애를 초월하여 맑은 햇살이 가득한 열반에 들도록 인도해 준다면, 이것을 출세간하여 열반에 들게 한다. 이렇게 하려면 ‘사홍서원’을 낸 성자가 인연을 주어야 한다.
중구의 4대보살은 사홍서원을 각기 대표한다. 그들은 사성제에서 ‘고집’의 해결사일 뿐만 아니라, ‘멸도’의 완성자이기도 하다.

①관음보살은 커다란 자비심을 갖고 모든 세계를 노닐기 때문에, 세계의 중생이 삼독(탐·진·치)의 고통과 칠난(火難, 水難, 風難, 刀難, 鬼難, 囚難, 賤難)의 핍박을 받는 것을 다 보신다. 그러므로 고통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중생의 구원에 답하시므로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겠습니다”라는 커다란 서원을 실천하셨다.

②지장보살은 커다란 원력願力이 있기 때문에 지옥의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발심하셨다. 지옥의 고통이란 탐·진·치와 게으름이며, 칼산刀山과 칼의 숲(劍樹)이다. 일한 번뇌와 업집業集의 고통은 커다란 원을 내신 지장보살의 도움이 있어 지옥에도 부처님의 밝은 해가 비춘다.

③문수보살은 커다란 지혜가 있기에 불가사의한 갖가지 공덕을 구족하여 인간을 사악함에서 정도로 들게 하고, 미혹해서 깨달음을 이끌며, 괴로움에서 즐거움을 얻게 하며, 그릇됨에서 옳은 길로 돌아서게 하신다. 갖가지 방편과 배움을 주기에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겠습니다”에 해당된다.

④보현보살은 커다란 행력行力이 있기 때문에 인격을 존중하고, 타인의 미덕을 찬탄하며, 보시하는 기쁨을 누리고, 참회와 겸양의 실력을 갖추라고 권장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능히 불제자의 수행을 이끌어 정토에 들게 하고 고난에 빠진 중생을 모두 제도하실 수 있다. 이것이 소위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겠습니다”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예로부터 수많은 고승과 대덕이 정법을 오래 머물게 하고, 중생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넓은 서원을 내었다. 부루나 존자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변경 지방에서 홍법에 힘썼다. 섬자.子보살은 눈물을 바다로 만들어 중생을 윤택하게 하겠다고 발원했다. 위산 영우 선사는 중생이 의지할 수 있는 한 마리의 소가 되길 원했다. 지순智舜 화상은 꿩 한 마리를 구하고자 자신의 살을 베어내기도 했다. 갖가지 서원으로 몸과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보살도를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부처를 이루기 전인 보살의 수행 단계에서 부처님 또한 살을 베어내 매에게 먹였고, 호랑이에게 기꺼이 몸을 내준 적도 있다. 커다란 원력이 없었다면 이런 희생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또한 싯다르타 태자는 모든 사람이 구하고자 하는 바를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었다(布施). 어린 사미는 생영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깨지 않았다. 백은白隱 선사는 자신이 고통받을지언정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忍辱). 백장 선사는 하루도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고 했다(精進). 선종의 모든 선사들은 자신이 타락하지 않으려면 삼매에 들라고 설법한다(禪定). 현장법사와 태허 대사는 지혜로 사리를 잘 풀어 중생을 제도한다(般若). 이 모든 것은 오랜 세월 동안 타의 모범이 되어 왔다.
국제불광회에서 삼매 수행을 할 때 낭독하는 “제가 이제 마음을 냄은 인간계나 천상계에 나는 복이나, 성문이나 연각, 권승權乘을 베푸는 모든 지위에 있는 보살이 되고자 함이 아니라, 가장 뛰어난 가르침에 의지해 보리심을 내어 법계의 모든 중생과 더불어 일시에 모두 최상의 지혜(阿.多羅三.三菩提)를 얻기 위함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성제를 이해했기 때문에 사홍서원을 지극히 높은 경지까지 발전시킨 명백한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결론적으로 자비심과 지혜, 원행이 원만한 자가 곧 부처이고, 4대 보살의 공덕을 모두 성취하면 정각이 원만한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맺음말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면서 소위 ‘근기를 보고 가르침을 낸다’, ‘병을 보고 약을 처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불법과 근기에 맞는 불법을 펼치는 것이다. 특히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며,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며,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는 사의지四依止는 우리의 종지宗旨가 되었다. 원래 사성제, 삼법인, 십이인연에서 사홍서원에 이르기까지 근기에 따라 각기 다르게 설법하였지만, 그 안에는 시간과 순서의 규칙이 있다. 시간과 순서를 정확하게 알아야 시기적절하고 융통성 있는 불법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늘 같은 이치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장소가 바뀌거나 다른 대상에게는 또 다른 설법을 하신다. 부처님은 근기를 보고 설법하기를 잘하시므로 때론 ‘있다(有)’고 하시지만 때론 ‘비었다(空)’고도 하신다. 때론 ‘성품(性)’을 논하시기도 하고 때론 ‘모습(相)’을 이야기하시기도 한다. 때론 ‘본체(體)’를 강연하시기도 하고, 때론 ‘쓰임(用)’을 논하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불도를 배우려면 문자의 겉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에게 의지하고, 가르침에 의지하되,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불법에 의지해 발심하여 원을 세우고, 정진함에 나태하지 말며, 복덕의 인연을 적극 모으고, 고집멸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 사홍서원을 실천한다면 불도를 성취하는 것이 반드시 어려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불교계에서는 바르지 못한 학설들이 참 많이 있다. 물론 지혜와 혜해慧解 능력이 다르므로 불법에 대한 인식 역시 깊고 얕음, 날카로움과 둔함의 분별이 생긴다. 다음에 나오는 동쪽과 서쪽의 두 절에 살고 있는 두 사미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동쪽 절 사미와 서쪽 절 사미는 스승의 심부름으로 종종 채소를 사러 시장에 가곤 했다. 동쪽 절의 사미는 조금 우둔하고, 서쪽 절의 사미는 비교적 총명한 편이었다. 하루는 채소를 사러 가는데 사거리에서 두 사람이 마주쳤다. 동쪽 절의 사미가 서쪽 절의 사미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디로 가는가?”
“내 발이 가는 곳으로 간다네.”
동쪽 절의 사미가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돌아가 스승에게 물었다. 그러자 스승은 어째서 대꾸조차 못했는지 그의 아둔함을 꾸짖었다.
“너의 발이 가지 않는다면 또 어디로 갈 것인가 물었어야지!”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나자, 동쪽 절의 사미가 서쪽 절의 사미에게 또 물었다.
“오늘은 또 어디로 가는가?” “바람이 부는 대로 간다네.”
대답한 내용이 달라지자 동쪽 절의 사미는 이번에도 일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실을 말하자, 이번에도 스승은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바람이 없다면 또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봤어야지!”
동쪽 절의 사미는 기회가 오기만 기다렸다. 드디어 거리에서 두 사람은 또 마주쳤다. 동쪽 절의 사미가 아주 득의양양하게 물었다.
“오늘은 어디로 가는가?” 서쪽 절의 사미는 그 순간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난 채소 사러 시장 간다네.”
‘채소 사러 시장 간다’는 말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간단한 답변이지만, 이 답변 속엔 수 없는 과정과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사성제에서 사홍서원까지’라는 대소승 불교 융합의 전개에 대해 정통한 지혜와 인식 능력이 없이 둘을 연관 지으려 한다면 원만한 이해를 이룩하기는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불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