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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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에서 사홍서원까지 2
③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겠습니다

불도를 닦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내었다면 먼저 자신이 갖가지 지혜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고대 인도불교에는 ‘오명(五明: 다섯 가지의 학문)’이 있었다. 즉 성명(聲明: 언어), 음악, 성운(聲韻, 訓點), 공교명(工巧明: 과학기술, 공예 등의 지식), 의방명(醫方明: 보건위생, 의약 등의 지식), 인명(因明: 논리적 추리, 논리학), 내명(內明: 오승과 인과의 오묘한 이치를 사색하는 학문, 자기 종교의 취지를 밝히는 학문)이다.

이상의 오명은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라 오늘날처럼 다원화 사회에서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저 보살이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모든 법문을 배우겠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뿐이다. 현재에 비추어보면 과학, 심리학, 관리학, 정보학, 그 밖의 모든 것을 갖춰야 한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줄곧 보살은 널리 배우고 많이 듣기를 권하고 있다. 오늘날의 언어학, 고고학만으로도 이미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 더구나 불법 안의 경·율·론 삼장과 계·정·혜 삼학, 각 종파의 온갖 법문까지 하나의 법도 버리지 말라고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불도를 닦는 사람은 내 종파의 사람이 아니라 배척하면 안 되고, 내 종파의 법이 아니라고 배척해서도 안 된다. 바른 종파기만 하면 모두 내 몸의 육근과 팔식인데, 중요한지 아닌지를 가릴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④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겠습니다
불도를 닦는 최종 목적은 성불하기 위함이다. 삼아승지겁 동안 복과 지혜를 닦고, 백겁 동안 상호를 닦아야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고 했으니 성불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불도에 이르는 길이 요원하고 반드시 삼아승지겁을 거쳐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포기하게 될 것이다. 조급하고 눈앞의 것만 따지며, 굳센 결심과 의지도 없고, 스스로 반성함 없이 용감하게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은 분명 불도의 목표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법화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부득이 선교방편(善巧方便: 중생을 때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교묘한 수단과 방법)인 ‘화성化城’을 들어 겁 많고 나약한 중생을 이끌어 차차 불도를 성취케 하신다(『법화경』 「화성유품化城喩品」).
부처님은 당시 성불하시기 위해 강탄(降誕: 성인의 탄생), 출가, 수도해서 불도를 바로 이룬 것은 아니다. 부처님도 마귀를 굴복시키는 단계를 필히 거치셨다. 밖으로는 음란한 음악과 여색과 금전과 이익 등의 마귀에 시달리고, 안으로는 탐 진 치라는 귀신과 요괴의 유혹이 있었다. 일단 마음에 나약함이 생기면 마구니의 공격에 무너지기 쉽니다. 그러므로 성불은 확실히 쉽지 않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어려워도 능히 이룰 수 있다고 말하다. 이렇게 해야 불도의 귀하고 소중함을 더욱 이해할 수 있다.

4. 사성제에서 사홍서원에 이르는 실천

대승의 사홍서원은 고집멸도의 사성제에서 발전되어 나온 넓고 큰 서원이다. 천태 지자 『마하지관』 권1에서 사성제의 의미가 발전돼 사홍서원이 되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사성제를 수련해 보리심을 내는 대승보살이 되는 것이 곧 보살도를 실천하는 것이고, 사홍서원으로 사성제의 참뜻을 널리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락경』에는 다음과 같은 내영이 있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사성제의 이름을 받아 지녀 외운다면, 능히 타인에게 훌륭한 도움의 복전福田을 짓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연유로 그러합니까? 세존이시여! 이 선남자 선여인이 자신만을 위하지 않고 온 우주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남김 없는 해탈의 경계에 이르러 열반에 들게 하겠다고 커다란 서원을 세웠기 때문입니다.(『영락경瓔珞經』 「성도품成道品」 제13)

사성제 가운데 이미 사홍서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이 경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아함경』에서 부처님은 항상 널리(廣), 무량無量, 무상無上이란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사홍서원의 설법과 완전히 부합되다.

부처님은 법요를 설하실 때 “내가 널리 법을 설하니, 이는 보여주고 가르쳐서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기 위함이다..... 너희들은 응당 수지하여 널리 중생을 위해 설하라.(『장아함경長阿含經』 「유행경遊行經」 권2).” 또한 “나의 법은 잘 말해서 드러났고, 널리 퍼져서 비거나 부족함이 없다(『중아함경』 54 「아리타경阿梨.經」 권9)”라고 하셨으며, “모든 비구와 비구니는 사신족四神足을 갈고 닦아 그 뜻을 더 널리 펼쳐야 한다(『증일아함경』 권19)”고도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법을 듣고 “저는 오늘 이 법을 이미 듣고, 널리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중아함경』 「쌍품雙品」 『대공경大空經』 권10)”라고 대답했다.
또한 수행에 대해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이미 생긴 선법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잊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고, 더 자라게 하며 널리 크게 갈고 닦아 구족하게 하겠다.
(『중아함경』 「예품例品」 『예경例經』 제11)

이처럼 슬퍼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 베푸는 마음을 갖추면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다툼도 없으니 지극히 넓고 매우 커 무량하게 선행을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고 노닌다. (『중아함경』 「예품例品」 『예경例經』 제8)

지극히 넓고 커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이것은 지혜로운 이가 칭찬한 것이므로 잘 갖추고 취하며, 발 받아 지녀야 한다.
(『중아함경』 권55 「포리다품.利多品」 『지재경持經齋』 제1)

만일 믿음을 가진 바라문이나 거사가 중원(衆園: 가람)을 찾아와 널리 보시하고 복을 지으면 우리들 복을 짓는 것이다.
(『중아함경』 권50 「후대품后品大」 『가루오타이경迦樓烏陀夷經』 제1)

만약 의복, 음식, 침구류, 탕약 및 각종 생활도구를 받았다면, 그것을 공양한 사람은 커다라 복을 얻고, 커다란 과보를 받고, 커다란 공덕을 받고, 크고 넓은 보답을 받는다.(『중아함경』 권48 「쌍품雙品」 『마읍경馬邑齋』 제2)

비구는 자기 자신을 풍족하게 하고 남도 풍족하게 하며, 또 많은 사람을 풍족하게 하라. 세간을 가엾게 여기고, 하늘과 사람을 위하여 이치와 풍족함을 구하고, 편안함과 즐거움을 구하라. 비구여! 이처럼 총명한 비구의 지혜는 지극히 넓다.(『중아함경』 권45 「심품心品」 『심경心經』 제1)

비구는 널리 배우고 많이 들으며, 잊지 않게 지켜 지니고, 많이 들은 것을 쌓아 모으라.(『중아함경』 권12 「범지품梵志品」 『구묵목건련경瞿.目.連經』 제4)

마땅히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살피시어, 부드러운 황금빛 몸에, 훈육하지 않은 이를 훈육할 수 있고, 바다에서 표류하는 이를 두루 구해주시네.(『잡아함경』 권44)

여러 상좌들이 설한 게송과 비구니가 설한 게송, 시로게尸路揭, 의품儀品, 모니게牟尼揭, 수다라修多羅를 모두 두루 암송했다.(『잡아함경』 권49)

이런 연유로 일체 중생들이 집착하고 모으는 바가 무엇이며, 결정해탈決定解脫, 넓은 해탈, 지극히 넓은 해탈까지도 모두 알고 있다.(『잡아함경』 권48)

여래의 가르침을 중생은 깨닫지 못하노니, 응당 언제나 두루 베풀되 오로지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하여라. 그 훌륭한 뜻이 맑고 깨끗하여 얻는 복 또한 배나 많을 것이다. 그 복을 다 같이 골고루 나누면 후에 더 큰 과보를 얻을 것이다. 보시는 금생에 선을 짓는 것이니, 마음은 더 넓은 복밭을 향한다.(『증일아함경』 권4)

또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4사유思惟라 한다. 소사유少思惟, 광사유廣思惟, 무랭사유無量思惟, 무소유사유無所有思惟이다.(『장아함경』 권8)

자애로운 마음은 크고 넓어 둘도 없고 무량하다. 원한을 맺는 일 없어 세간에 두루 미친다.(『장아함경』 권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