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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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위한 어려움 타개와 분쟁해결(2)
이란 여간옥선余簡玉嬋 여사의 당선과 사퇴

타이완에 헌정이 실시된 이래로 국민은 지방 행정수장과 의원을 선출할 수 있습니다. 이란 지역은 민간의 역량이 국민당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일반 대중은 국민당 외의 인사를 지지하는 것을 희망했습니다. 당시 당 외부의 인사 곽우신郭雨新과 그 뒤의 임의웅林義雄, 유석곤遊錫.의 명성이 제일 높았고, 이란에서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지 않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으니 민주의식을 가진 지도자적 인물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순박하게 보이는 이란이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 사이의 경쟁은 극렬해지고 민중의 참여도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선거운동에 열정적인 사람은 적극적으로 후보자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였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데리고 한 집 한 집 찾아다니며 후보자의 선거를 돕고, 인정에 호소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일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민국 56년(1967) 즈음, 이란현 현의원 선거 때 국민당은 패기 있고 능력 있는 장학아張學亞 선생을 의장으로 내세울 계획이었지만, 선거 결과 40여 표가 모자라 낙선했습니다. 의장은커녕 의원조차 당선하지 못하였으니, 국민당에서는 장차 의회를 휘어잡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이란의 선거업무를 주관하던 국민당 주임위원 여원예黎元譽 선생은 개표 당일 밤 갑자기 저를 찾아와 이미 당선된 현의원 여간옥선 여사에게 당선 포기를 종용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녀만 포기하면 장학아 선생이 보궐로 올라가고 의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척 곤란했습니다. 여간옥선 여사도 수개월 동안 힘들게 찾아다니며 일일이 부탁하고, 많은 체력과 비용을 소모하고 나서야 현의원에 당선되었는데 사직하라니요. 이것은 불공평하고도 너무나 난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국민당을 보호하기 위해, 또 평소 제게 잘해 주신 주임위원 여원예 선생의 입장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과거에 태풍이 지나간 뒤 마을을 구제하는데 불교도 함께 나서서 재난구제를 해야 한다며, 저와 동행하면서도 자신은 한발 물러나 전면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불교를 돋보이게 했습니다.
불교에 대한 여원예 선생의 우의에 감사하는 뜻에서 이 일은 꼭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여간옥선 여사에게 권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희생만 강요할 순 없어서 저는 “만일 여사께서 현의원을 사퇴하신다면 제가 이어서 운영하고 있는 란양구제원蘭陽救濟院 원장을 당신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높은 보수와 대우를 보장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란양구제원의 원장 자리가 현의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여간옥선 여사는 기본적으로 신앙이 있었고, 제가 스님인지라 제 체면을 봐서 여러 가지로 곤란한 상황에서 현의원직을 사퇴하고 장학아 선생에게 양보하였습니다.
그 후 여간옥선 여사는 란양구제원의 원장이 되었고, 그녀의 남편은 이란현 경찰국 소방대대의 대장이 되었습니다. 두 분 모두 이란염불회 신도이자 성실한 불제자이며, 저와의 우의도 매우 깊습니다. 저는 여간옥선 여사에게 부당했었다고 생각되어, 원장으로 있던 시기에 자주 격려하고 표창했습니다.
당원이라면 당을 아껴야 합니다. 당에서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여간옥선 여사가 저의 말을 듣고 기꺼이 희생하기로 결정했어도 분쟁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공연한 희생을 강요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될 때,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다른 것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간옥선 여사는 현의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구제원의 원장이 되었고, 여원예 선생에게는 저는 다방면으로 보살펴 주시고 여러 가지로 치하해 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나 국민당은 자신이 필요할 때는 애걸복걸하더니, 자신에게 필요 없다면 그 일은 싹 잊어버리고 다른 보상이나 격려를 해줄 줄 모릅니다. 그래서 겨울에 얼음을 씹어 먹듯 국민당에 공헌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한기를 서리게 했습니다. 이러한데 당위원회가 이란에서 민심을 얻고, 충성을 얻어 내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중에 저는 타이완에서 국민당이 여러 차례 선거에 패하고 민심을 얻지 못하는 것을 보며, 당위원회를 이끌었던 인사들 모두 철저히 되짚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란양구제원 원장이라는 직함으로 여간옥선 여사가 이란 지역사회에서 빛나는 교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원래 조산원이었던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활발히 활동하는 여걸이라 할 있는데, 당과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그 진심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분쟁을 해결함에 있어 이 사건은 ‘겉보기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타인과 어울리면서 인아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상대의 이익을 희생하라고 요구할 때는 대등한 보상, 심지어는 그것을 더 초월하는 보상을 해줘야 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관리학’은 당신에게 타인을 관리하라고 시키는 것도 아니요, 타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관리의 관건은 사람들에게 인연을 주는 것입니다. ‘관리학’을 잘 배우려면 먼저 당사자에게 기쁨과 이로움을 주어 그가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쌍방이 함께 이익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