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국 40년(1057) 즈음, 제가 이란에 있을 때 경찰과 관련된 몇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하루는 용담의 변두리 향촌 마을에서 포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기름통 위에 서서 강연을 하고 있었고, 아래에는 천여 명이 운집해 강연을 듣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절반쯤 지났을 무렵, 한 경찰이 오더니 기름통 옆에 서서 올려다보며 내려오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거 큰일 났구나, 만약 내가 내려가지 않으면 저 사람은 공무집행 방해를 했다고 할 것이고, 내가 내려가면 이 강연은 중간에서 포기해야 하니….’
문득 제 곁에 서 있던 합창단원 오소진吳素眞 양이 보였습니다. 그녀의 귀의한 법명이 자용慈容입니다. 저는 서둘러 자용에게 대신 노래를 부르게 하며, 강연을 듣는 청중들의 분위기를 계속 띄우도록 하고, 저는 기름통으로 만든 단상에서 내려와 경찰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퉁명스러우면서도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로 내려와서 뭘 어쩌라는 겁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계엄 기간 중에 사적인 집회를 갖다니, 지금 당장 해산토록 하세요.” “경찰 양반, 해산은 못하겠습니다. 제가 저들에게 강연을 들으러 오라 청한 것인데, 이제 와서 어떻게 돌아가라 합니까? 꼭 해산해야 한다면 경찰 양반이 올라가 직접 하세요.” “제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 “경찰 양반이 안 하겠다면 제가 강연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알아서 해산할 것입니다.”
함부로 대중에게 밉보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그럼, 사고 나지 않게 안전에 꼭 유의해 주십시오.”라는 말만 하였습니다. 저도 물론 그러겠다는 말을 하고 다시 올라가 강연을 마쳤고, 모두 자발적으로 해산했습니다. 이 사건 속에서 저는 어려운 주제 하나를 그에게 넘겨주었고, 그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음을 알자 제게 편리를 봐줘야 했고, 그리하여 일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일 처리에 있어 이것 역시 ‘관리’의 한 방편입니다.
적합한 열쇠로 자물쇠를 열어야 한다
이란 염불회에는 항상 젊은 친구들이 와서 참가했습니다. 당시 문제 인물이 두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지금의 자장慈莊 스님입니다. 그때는 아직 출가하기 전이었고 이름이 이신도李新桃라고 했습니다. 란양여중 교무처에서 일했으며, 또한 학교 자치회의 회장이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음악선생이 한 사람 있었는데, 간첩 혐의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하는 우수한 학생이 연루되어 총살된 것만도 십여 명이 넘었습니다. 그녀는 자치회의 회장이었기에 혐의를 피하기 어려웠고, 매일 경찰이 찾아와 그녀를 심문했습니다. 젊은 아가씨가 한밤중에 수많은 경찰에게 1, 2년 동안 심문을 당하고 나더니 사람 모습이 말이 아니었고, 매일매일 고뇌에 차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도와주고 싶었지만 당시 제 사정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은 터라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부처님을 따르는 신도 중에 형사반의 팀장이신 주덕周德 선생이 있어, 그를 찾아가 상의를 했습니다.
“저를 도와주는 셈치고 이 아가씨를 좀 구해 주십시오, 그녀는 정말 억울합니다. 이 두 해 동안 경찰에서 그녀를 심문하고 활동을 제한하고 있으며, 심지어 염불하러 오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경찰에 예불하러 오는 것만이라도 동의해 달라고 이야기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게 되면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즐겁지 않겠습니까?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제 말을 듣자마자 “힘써 보겠습니다.” 하며 답했습니다. 주 팀장이 이야기를 한 후에 이신도 씨는 공개적으로 염불회에 다니면서 염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집에서 염불회까지 약 1km 되는 거리를 당당하게 오가도 경찰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 저는 다시 기회를 봐서 팀장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신도 씨는 여기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합창단에서 목소리가 제일 좋은 단원입니다. 이처럼 우수한 젊은이가 타이베이를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제가 중국라디오방송국에서 불교음악 음반을 제작하고자 타이베이에 가는데, 그녀가 우리 합창단과 함께 타이베이 중국라디오방송국에서 녹음할 수 있도록 치안부서에 허락해 달라 청을 넣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안전은 책임지겠습니다. 그녀가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제가 데리고 갔다 반드시 다시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주 팀장 역시 도와주겠다며 어렵지 않다는 뜻을 비쳤습니다. 그가 상부에 진술한 뒤 치안부서의 통솔자가 그녀를 데리고 타이베이 중국라디오방송국에 가서 녹음할 수 있게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때 녹음한 음반 안의 이신도 양의 음성도 훌륭했고, 여성 베이스로 부르는 노래도 상당히 인기가 높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그녀를 불교의 성지 사두산獅頭山으로 여행도 시켰고, 석가탄신일 방송도 참여하게 하였으며, 타이베이에 제가 설립한 불교문화복무처에서 일하게도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저를 따라 출가까지 해 법명을 ‘자장’이라 하였으니, 불광산 비구니의 대사형이십니다. 저는 사람 사이에 오해와 의심이 생겨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 만일 당신이 너무 많은 요구로 지나치게 부담을 주게 되면 상대는 기꺼이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 팀장에게 이신도 씨가 염불하러 오게 해달라고만 부탁했습니다. 그 자신도 염불을 하고 있으니 염불하러 온다고 하면 당연히 좋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첫걸음이었습니다. 두 번째 걸음은 이신도 씨를 불교 합창단에 참여시켜 노래로서 불법을 널리 알려 대중을 이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 팀장 자신도 신앙이 있으니 불법이 융성해지는 것을 당연히 좋아할 것이고, 그러기에 기꺼이 나서주길 원했고 거듭 그녀를 도와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천천히 이신도에 대한 안전기관의 감시와 그녀에 대한 박대, 그녀에 대한 괴롭힘 모두를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억울함을 받지 않게 되었고 일신의 자유까지 되찾았습니다. 그녀의 출가와 그녀 가족 중의 혜룡慧龍·혜전慧傳 스님까지, 한 집안에서 여러 사람이 출가한 것 역시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한 사람은 전력공사에 근무하는 진수평陳秀平 선생입니다. 그는 단지 몸에 경찰이 의심 가는 인물이라고 여기는 사람의 명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유로 덩달아 혐의를 받았고, 그 후로 경찰 측에서도 끊임없이 귀찮게 했습니다. 그 뒤에 그는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르웨탄(日月潭)에 있다가 이란의 전력공사로 옮겨와 제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는 다시 주덕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해 경찰의 감시와 심문 및 관리를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훗날 그는 제가 타이베이에 설립한 지광상공智光商工 직업전문학교의 부교장까지 지냈습니다. ‘관리’를 하다 문제점이 생기면 먼저 문제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야 합니다. 해결방법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잠긴 문은 반드시 그에 맞는 열쇠가 있어야 자물쇠를 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바로 알아 바른 약 처방을 내리려 한다면 때로는 약간의 인연과, 때로는 약간의 시간과, 때로는 약간의 인사人事가 필요합니다. 저는 문제해결을 관리하는 데 있어, 이제까지 절대 금전을 사용하지 않고 항상 지혜를 활용해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이것은 관리학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학문에 해당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