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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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산의 원만한 대중생활(17)
교사敎士와 사고師姑

불광산에서 출가한 남자 스님을 비구라 하고, 출가한 여자 스님은 비구니라 합니다. 불광산은 일찍부터 비구·비구니 모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자 스님인 비구는 동산東山에 거처하고, 여자 스님인 비구니는 서산西山에 거처하는 등 두 산의 간격이 많이 떨어져 있어, 나중에 10년, 20년이 지나니 서로 상대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남녀가 유별하기 때문입니다.
비구·비구니 외에 불광산에는 남성 신도와 여성 신도가 있습니다. 남성은 우바새, 여성은 우바이입니다. 사찰은 비구와 비구니만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은 집도 아니고 가옥도 아닌 시방의 신도가 함께 이루어낸 하나의 도량입니다. 비구·비구니는 사찰을 집이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곳은 수도하는 곳이니 사찰도량을 확대하여 사부대중의 소유로 삼아야 합니다. 비구·비구니 외에 우바새·우바이의 신도에게도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가입한 이후 출가자의 승단과 재가의 교단이 생겨나며, 서로 각자의 소임을 갖고, 각자의 명호를 가지며, 각자 단계를 밟아 성장합니다. 조직적인 내용이 반드시 있어야 모두가 서로 편안하고 아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구와 비구니 제자들을 위해 그들 승급의 방법, 인사이동의 방법, 참학 휴가 요청의 방법, 의료간호의 방법 등을 명백히 제정했습니다.
이외에 수많은 재가의 인사가 승단에 들어온 뒤, 저는 또한 그들에게 명위名位를 주고자 정사淨士와 사고師姑 제도를 정립했습니다. 그들은 불광산에서 반드시 삭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가자 남성은 정사(현재는 교사敎士라 함)라 하고 재가자 여성은 사고라 부르는데, 관세음보살께서 제도하고자 하는 자에 응답하여 그 사람 앞에 나타나 설법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불광산에서의 정사 가운데 인도에 계시는 황진보黃進寶 선생은 혜현慧顯 스님을 따라 인도의 사미를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 이미 백여 명이 넘었다 합니다. 장차 인도의 불교부흥에 이 교사들의 공로가 지대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도감원에서 일하는 임리국林利國 역시 수십 년 되었고, 서래사에서 일하는 명덕明德 또한 서래사가 생길 때부터 있었습니다. 이 많은 정사들이 사찰에 기여한 공로를 이야기하자면 출가한 승려에 뒤지지 않습니다.
입도한 여성인 사고로 말하면 더욱 많습니다. 사찰은 사고의 선택에도 매우 엄격합니다. 반드시 처녀이고 독신이며, 가정문제의 부담이 없고, 대외적으로 어떤 분쟁도 없어야 합니다. 또한 출리심出離心이 있어야 하고, 허영을 좋아하지 않고, 기꺼이 승단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승단의 승가대중이 홍법할 수 있게 교사와 사고의 교단은 승단의 호법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불광산의 사고는 대략 백 명을 상회하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승단 운영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사고들은 불법에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경전 설명과 설법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불당에서 독송하고, 법기를 치고, 조석예불에 참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법회를 집전하는 것 역시 승려에 뒤떨어지지 않지만 그리 하지 않을 뿐입니다. 사고와 교사는 절의 업무에 뛰어나며 사찰에 머물면서 대부분 재정 관리·접대 관리·음식 관리를 주로 합니다.
출가대중은 수행을 중시하고 염불·참선·경전 강설·설법 등을 위주로 합니다. 모두가 이렇게 일을 나눠 각자 맡은 바를 다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돕습니다. 불광산의 모든 도량에서는 해외의 신도까지도 사찰을 집이라 여기며, 불광산의 회원이나 공덕주功德主라면 불광산을 방문하였을 때 응분의 대우와 응분의 존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불광산이 이러한 상황 하에서 발전하고, 승려와 신도 사부대중이 어떠한 원망도 없고, 어떠한 불평도 없이 화목하고 즐거운 가운데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입도한 정사와 사고의 덕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