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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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의 출발
한 젊은이가 일행과 함께 먼 지방으로 여행을 가다가, 먼 길에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가다가, 멈추었습니다.
동행이 그를 재촉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 도와줄 수 있지만 밥 먹고 잠자는 것만은 도와줄 수가 없어.”
그러자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것은 나도 할 수 있으니 너희들 도움은 필요 없어.”
동행이 다시 말했습니다.
“길을 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도와줄 방법이 없어.”

어느 신도가 선사(禪師)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깨닫습니까?”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걷던 선사가 뒤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소변을 보러 가는데 당신이 나 대신 갈 수 있습니까?”
위의 두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지만 철학적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매사 자신을 믿고 ‘나로부터 출발’해야 방법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는 눈물을 닦고 슬픔을 거두어야만 자녀를 부양할 힘이 생깁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스스로 강해지도록 노력해야만 현실과 맞설 용기가 생깁니다.
일본의 『오체 불만족』의 작가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는 ‘사지가 없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사회공익에 참여하였으며, 낙관적으로 세상대중을 포용하여 ‘자신을 믿는다’는 말의 최고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새끼 새가 나는 법을 모두 익히면, 어미 새는 새끼 새가 다시는 둥지로 돌아오지 못하게 합니다. 서양에서는 자녀가 성인이 되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고 공부하는 홀로서기를 시킵니다. 선생님이 잘 이끌어주지만, 학생 스스로도 부지런히 분발해야 학문의 열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밖에 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좋은 연을 널리 맺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어찌 당신을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믿는 산도 넘어질 때가 있고, 믿는 사람도 늙을 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로부터의 출발’을 하지 않고, 외부의 힘만을 얻으려 한다면 권세를 가진 친척이 있다 하더라도 일시적인 도움만 줄 수 있을 따름입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제갈량 같은 귀인이 옆에서 보좌한다고 해도 아무 쓸모없는 무능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주십사’고 신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그러나 자신이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어찌 무엇을 수확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습니다. 다른 사람은 연(緣)이요, 자신은 인(因)입니다. 염주를 들고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아주 간단한 관음정근(觀音精勤)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스스로가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선종의 ‘줄탁교육(啄敎育)’이란 말도 수행자인 스승과 제자가 함께 힘써 공부해야만 깨달음을 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황벽 선사(黃檗禪師) 또한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법도 구하지 않으며, 승도 구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착실하게 땅을 갈고 김을 매어야, 성공이라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