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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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버려라


누군가 논쟁을 벌일 때면 늘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이것은 당신의 편견입니다!”는 말일 것입니다.
소위 ‘편견’이란 틀에 짜여진 생각이요, 선입관에 사로잡힌 집착일 뿐입니다. 설령 잘못된 것이라도 다시 고치려하지 않는 것을 편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좋은 쪽으로 생각해 집착이 편견이 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나쁜 쪽으로 생각해 편견을 내어 좋은 일을 나쁜 일이라 결정짓거나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결정짓는다면 그 죄는 용서 받지 못할 것입니다. 편견은 찻잔 속에 든 독이나 불순물과 같아서 제아무리 깨끗한 물을 붓더라도 마실 수 없습니다. 편견은 논밭의 가시나무, 잡초와 같아서 좋은 종자를 뿌리더라도 자라기가 쉽지 않습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시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편견에 집착하여, 편견을 고치려들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견(見)은 본래 의견, 견해, 격식, 견문 등에 쓰이며 좋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견해가 일단 단견(斷見), 상견(常見), 편견[成見]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것은 정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본래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유익한 좋은 일을, 견해가 다른 이유로 극렬히 반대한다면 이런 편견은 ‘일을 성사시키기에 부족하고 일을 망치고도 남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래 중책을 맡을 수 있고, 전도유망한 사람이 선악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다 하여 극렬히 반대한다면 인재를 제자리에 쓰지 못하게 되니 자못 애석할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색안경을 끼고 사람이나 상황을 지켜보길 좋아하므로 진실된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가령 노란 안경을 쓰고 본 세계는 노랄 것이요, 빨간 안경을 끼고 사람을 보면 모두 빨갛게 보일 것입니다.
편견이 있기에 참모습을 볼 수 없으며, 일의 진상이 똑똑히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를 옳다 여기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혜로운 자의 눈엔 그저 유치하고 우둔한 어린 아이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편견에 사로잡힌 견해는,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칠 수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 편견을 고집한다면 집착이라는 병이 됩니다. 이러한 견해라면 차라리 견해가 없는 편이 낫습니다.
편견을 버리고 매사를 객관적인 태도로 사람과 상황을 본다면 굳이 미리 입장(入場)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옳다면 그 옳은 것의 본래 모습을 돌려주고, 그른 곳이라면 그 그른 것의 참 모습을 돌려주면 됩니다. 편견을 버리는 것만이 아집을 버리고 사물의 참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으며, 참된 마음을 향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도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