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휴식을 취해야 할까요? 더 먼 길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불교에는 4가지 정진력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휴식력입니다. 휴식은 배나 비행기에 기름을 넣고, 보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군대가 전쟁을 한차례 치른 뒤, 후방에서 군대를 재편성하고 잠시 쉬며 다시 출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당한 휴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비행기라도 너무 오래 날면 그 금속이 피로해지고, 자동차를 오래 운행하면 열을 식혀주기 위한 냉각수가 필요한 이치입니다. 그런 다음 다시 출발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 산과 강, 대지 모두 휴식이 필요합니다. 곤충은 겨울잠을 자야하고, 꿩은 일찍 자야 합니다. 부지런한 개미도 둥지를 틀고 휴식을 취해야 하며, 분주한 꿀벌도 꿀을 만든 후에 한동안 휴식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정부단체나 공무원들이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억지로 휴가를 주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는 것만 봐도 휴식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인 것은 이런 ‘휴식’이 일부에서 남용되는 점입니다. 그들은 휴식을 나태懶怠의 구실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휴식을 핑계로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주말 이틀을 내어 늘 장기 휴가를 희망합니다. 출근할 때, 차 마시는 시간을 핑계 삼아 일부러 휴식시간을 더 연장하려 합니다. 하루 중, 오전에도 쉬고 싶고 낮에도 쉬고 싶고, 저녁에도 또 쉬고 싶어 합니다. 일 년 중, 국경일에 놀고 정기휴일에도 놀고, 심지어 휴가가 아닐 때도 놀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휴식을 핑계 삼아 일하지 않으면, 인생은 차라리 관 속에 들어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아나율阿那律 존자가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으면서 꾸벅꾸벅 졸자, 석가모니께서는 그를 타일렀습니다. “너는 잠만 자느냐. 큰 대합조개는 안에서 한번 잠들면 천년을 자기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하느니라.” 부끄러움을 느낀 아나율은 그때부터 쉬지 않고 정진한 탓에 눈이 실명되고 말았습니다. 석가모니는 그에게 적당한 휴식도 정진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소나가 거문고를 타자, 석가모니께서 그에게 “거문고 줄을 너무 조이거나, 너무 느슨하면 어찌 되겠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소나는 “줄을 너무 늦추면 소리가 나지 않고, 줄을 너무 조이면 잘 끊어집니다.”라고 대답했다. 석가모니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수행도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아서, 너무 급하거나 너무 느려서는 안 되며 ‘중도’를 취해야 한다.” 현재는 ‘바쁜’ 시대이며 동원動員된 사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예전 농업사회처럼 유유자적하지 않습니다. 바빠서 집에 돌아가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바빠서 공장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으며, 바빠서 며칠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바쁜 것은 물론 좋은 것입니다만, 만약 바쁜 것이 지나치면 건강을 해치고 오히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휴식’에는 바쁜 뒤에 보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휴식을 한 뒤에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정상적인 일에 복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