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사회에서 일부 사람은 일종의 요행심리를 가지고 있어서, 늘 뜻밖의 수확이 있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과거 현재 미래를 알 수 있고, 온 시방 세계를 눈과 귀로 다 보고 들을 수 있는 신통이 있기를 망상妄想합니다. 사실, 신통력이 없기에 다행이지 만약 신통이 있었다면, 아마 삶이 매우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신통은 일반적으로 6가지가 있는데, 이를 ‘육신통六神通’이라 말합니다. 즉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신족통神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누진통漏盡通입니다. 포악무도한 황제에게 만약 ‘천이통’이 있어, 군신이 뒷전에서 그를 아둔한 군주라고 욕하는 것을 들으면, 살육을 더하지 않겠습니까? 연인 한 쌍이 ‘천안통’이 있어,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애정에 금이 가고,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내게 ‘타심통’이 있어, 자식과 친구, 그리고 가족이 다 암암리에 나에게 불만이 있는 걸 알게 된다면 마음에 반감이 생겨, 가정불화를 초래하지 않겠습니까? 내게 ‘신족통’이 있어 매일 동서남북으로 바쁘게 뛰어 다닌다면, 생활이 고달프지 않겠습니까? 내게 ‘숙명통’이 있어, 내가 전생에는 고양이, 개, 악인 등에서 환생한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자유롭게 살 수 있겠습니까? 만약 자신이 정말로 ‘누진漏盡’이라면 무주無住, 무상無常의 경지에 안주하여, 가정, 자식, 재산, 명성과 지위 등을 염려하지 않게 될 터인데, 또 무슨 일로 사회에 나타나겠습니까? 그러므로 신통은 제불보살諸佛菩薩처럼 모두 선정의 힘(定力), 계행의 힘(戒力), 능력能力을 가졌기 때문에 중생제도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범부 속인은 ‘두려움을 일으키게 되는 신통력’이 되지 않도록, 차라리 신통력이 없는 것이 더 좋다 하겠습니다. 신통은 사실 반드시 부처님, 보살, 나한 등만이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통은 법계에 충만하고 허공에 널리 가득 찼다 말할 수 있습니다. 생활 속 어디에서나 신통력이 있습니다. 씨앗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빈곤 출신의 사람이 위험한 일에 선뜻 나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세상 사람을 제도합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한 마디 말로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신기합니다. 한 가족이 아침에 각자 동분서주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한 자리에 서로 모이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괴이함이란 희한함에서 생겨나 익숙함에 자리 잡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평상심을 가지고 보면, 이 일체 모든 것은 매우 일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공時空과 득실得失에 대해 평상심으로 보면 신통력을 구할 필요가 없고, 단지 마음 편하게 생활하기만 하면 인생은 매우 자유롭고 즐거운 것입니다. 과거의 조사祖師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맞아 죽은 사람이 주먹 쓸 줄 알고, 익사하는 사람은 수영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신통있는 자 신통으로 죽습니다. 아리야데바(Aryadeva)가 외도外道에게 찔려 죽고, 목련존자가 외도에게 압사당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신통력은 업력을 이길 수 없으며 최고의 경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를 배울 때 도덕 자비를 중시하고 신통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종교계는 신통을 선양하고자 하는 사람은 즉시 브레이크를 걸고, 신통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잘못 인도하여, 자신과 남을 해치게 됩니다. 모두 자비와 도덕을 널리 알려, 불법의 지혜로 세상과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으며, 종교의 세상교화 업적을 진정으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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