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마음은 태허를 포괄하고 아량은 사계沙界를 두루 한다’고 부처님의 위대함을 찬탄합니다. 옛날부터 성현과 명군도 모두 천하의 창생을 생각해 왔습니다. ‘제상의 뱃속까지는 배도 저을 수 있다’는 말은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넓은 도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사람의 도량이 넓은 만큼 사업도 큰 것이 원래는 정상적인 도리겠지만, 세상에는 또한 신기한 현상이 있습니다. 재산을 가진 사람은 능력이 없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기회가 없으며, 심량이 큰 사람은 발전하지 않고, 기량이 협소한 사람은 오히려 수단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진짜 ‘하늘’이 있다면 하느님은 정말 사람을 놀리는 것입니다. 가슴에 대중을 품은 사람은 우울하며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반대로 성격이 포악하고 파렴치한 정객政客은 오히려 고위 관직을 차지하여 세도를 부립니다. 세상에는 또 다른 기묘한 현상이 있습니다. 고생을 참아내고 스스로 노력한 사람은 모두 척박한 땅에 살고, 비옥한 대지에는 늘 나태하고 산만한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막의 민족은 풍부한 석유자원을 누리고, 섬 민족은 해양의 산물을 소유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하느님이 일부러 세상을 평등하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마음이 넓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자원을 주지 않았습니다.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같은 성인과 현자는 시국을 바로 잡고 나라를 구할 포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기와 인연이 없어서 고생하였으며, 제왕조차도 그들을 신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인연을 따라 ‘통하면 천하와 선을 겸하고, 궁핍하면 홀로 선을 닦는 데 힘쓸’ 따름이었습니다. 도량이 큰 사람은 소인을 포용할 수 있지만, 소인은 가슴속이 넓은 사람을 포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넓은 사람도 비교적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역사에서 사람을 질투하고 해코지에 능한 소인에게 배척당합니다. 예를 들어, 삼려대부 굴원屈原은 가슴 가득 나라와 백성 걱정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늘 우리의 사회와 세상을 ‘굴屈’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명한 신하와 훌륭한 장수가 죄 없이 누명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시폐를 바로잡고 세상을 구제하는 그들의 재능을 쓸 수 없으니 매우 애석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각종 분야의 관리자가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가 무능한 주관자에게 쓰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특히 대만의 기업계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 중에 하나는 회장, 사장 같은 고위 관리자는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반대로 기술 인력의 대부분은 학문에 정통한 인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덕과 지혜는 겸비될 수가 없습니다. 소위 ‘도道가 한 자[尺] 높아지면 마魔는 한 장丈 높아진다’는 말은 세간 상의 악인과 마귀도 세상을 통치하려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적게는 향리에서 그럭저럭 지내며 제멋대로 행동하고, 크게는 간사스럽고 악이 커서 조정朝廷을 조정調停하여 세상의 충신과 간신, 선과 악이 영원히 대립하는 전투를 하게 합니다. 고생하는 백성들은 가까스로 태평성세 명군을 만나기 쉽지 않고, 늘 마구니들이 마구 뛰어 날뛰는 난세 속에서 그럭저럭 되는대로 생활을 지탱합니다. 그러나 전륜성왕의 태평성세가 다시 나타나긴 힘들어도 우리는 세상 각 분야에 도량이 넓고 큰 사회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사회 민생의 복지를 진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국민에게는 매우 다행이고, 국가에서도 매우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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