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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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생활
생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는 것은 당연히 물질생활입니다. 소위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의식주에서 옷을 입고 밥을 먹는 물질생활이 어떻게 빠질 수 있겠습니까.
물질생활이 만족되면 그 다음으로 추구하는 것이 정신생활입니다. 예를 들어, 독서, 오락, 사랑 등입니다. 정신생활이 만족되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에는 예술적 생활에 들어갑니다. 예를 들면, 그림, 음악, 조각, 연극, 무용, 문학 더 나아가 화초 재배나 생활의 분위기 등을 바꿔나가며, 예술적인 생활을 영위하려 합니다. 이어서 추구하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물질생활, 정신생활, 예술생활은 모두 현실생활 속에 있습니다. 만약, 종교생활을 하면 승화하고 초월할 수 있으며 확대할 수 있어 자신이 무한한 시공간 속으로 들어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너와 나의 상대가 없어진 경계 밖에서 유유히 노닐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종교적인 생활에는 사상과 경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비 위의威儀와 선정의 법열을 음식으로 삼고, 도덕을 집으로 삼으며 정도를 수행으로 삼습니다. 물질생활 밖 세상에서도 우리에게 더 희망찬 미래를 가지게 합니다.
의식주의 가치를 높이는 것만을 대단한 세상살이라고 여기는 것은, 결국 결함이 있는 원만하지 않은 생활이므로, 종교생활은 곧 물질생활 이외의 신앙생활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은 우리 생활의 질적인 향상이나 인생의 의미를 높이는 것과 중대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정신생활이 없으면 무미건조한 삶이며, 종교를 체험한 사람은 대자연의 음악을 경청할 수 있고, 온갖 인생 양상의 서적을 읽을 수 있으며, 너와 내가 일체인 감정을 함께 나눕니다. 그는 종교체험으로 정신생활의 부족함을 보충합니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곧 기본적으로 진·선·미를 향하는 인생에 매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은 벽에 걸린 한 폭의 그림이 아니라, 마음속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춤 속의 리듬이 아니고, 일체 중생을 품에 안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은 우리에게 일찰나에 무량 아승기겁의 영원함을 볼 수 있게 해주며, 모래 한 알, 돌 하나에서도 무변법계를 체득할 수 있게 합니다.
종교생활에서 일체 모든 남자는 나의 아버지요, 일체 모든 여자는 나의 어머니이며, 모든 중생은 형제자매라 하니 얼마나 사랑스럽고 화목한 인생입니까?
종교생활은 불교신도가 ‘마음에 태허太虛를 품고, 사계沙界를 둘레로 삼는’ 것처럼, 세계를 마음 안의 세계로, 중생을 마음 안의 중생으로 봅니다. 그들은 고통을 벗어나 즐거워질 수 있고, 사견을 정견으로 돌릴 수 있고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바세계가 정토로 바뀐다’고 하는 이것이 바로 종교적 생활입니다.
사람이 복덕인연에 부족함이 없어야 종교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멀리까지 바라보고자 하면 다시 한층 더 올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해탈하여 자유로운 인생을 누리고 싶은 사람이 어찌 종교생활을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