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예 이야기 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신도가 사원에 와서 부처님께 예불하자, 접대를 담당하는 지객 스님이 아는 체를 한 뒤, 즉시 가까이 있는 노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신도가 오면 차를 드리시오!” 2분도 안되어 다시 돌아온 스님이 노화상에게 말했습니다. “상단의 향이 타고 남은 재는 깨끗하게 닦을 것을 기억 하시오!” “불꽃 위의 꽃 화분에 물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정오에는 머무는 신도에게 공양 잊지 마시오!” 노스님은 젊은 지객 스님의 지휘 아래 바삐 움직였습니다. 결국 호기심을 차마 견딜 수 없어 신도는 노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인데 줄곧 당신에게 이런 저런 노릇을 시키나요?” 노화상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는 나의 제자요. 내가 이런 유능한 도제를 둔 것은 나의 복이오. 신도가 왔을 때 그는 나에게 차를 따르게 하고, 내가 말을 할 필요가 없게 해주고, 그는 단지 내게 머무는 신도들에게 밥을 먹게만 하고, 밥 짓는 것을 절대 요구하지 않소. 나는 매우 수고로움을 덜었소!” 신도는 이해하지 못하여 다시 말했습니다. “누가 윗사람이고 누가 아랫사람인지 모르겠군요.” 노화상은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노인이 윗사람이지만, 어린 것은 유용하다네!”
“노인을 공경하고 어진 이를 존경하라.” 이것은 중국 전통의 미덕입니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배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속담에도 ‘화상은 늙을 수 있고, 늙으면 보배다’, ‘노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 심지어 불경의 ‘기로국棄老國’과 중국고대의 ‘서한사호西漢四皓’는 다 노인의 지혜의 귀중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은 물론 가정과 사회의 굉장한 자산이지만, 사회발전 역시 젊은이의 활력과 동력을 빼고는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가정은 보편적으로 ‘고부갈등’과 ‘세대차이’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다만 ‘오랜 세월이 가면 며느리도 시어미가 된다.’는 시어머니 심리상태를 지니지 않으면, 노화상처럼 윗사람이 아랫사람 노릇하는 정신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며느리를 자기의 자녀처럼 여기고 매우 귀여워하면, 며느리도 시어미 보기를 친정어머니처럼 존경하고 효도할 테니 가정이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부자夫子 간의 세대차이 문제도 부모로서 모든 일을 권위적으로 명령하지 말고 관심과 지도, 협조적 입장을 노화상의 ‘바통터치’의 청한한 복[淸福]을 누리는 마음을 가지고, 자녀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 자녀도 부친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며, 배척하지 않으니 이와 같이 한다면 또 무슨 세대 차이가 있겠습니까. 사실, 인생은 본래 대소, 고저, 좋고 나쁨, 귀천이 없으며 완전히 자신의 관념인 것입니다. 달라이라마가 노벨상의 영예를 얻었을 때 “나는 여전히 더도 덜도 아닌 화상이다!”고 했고, 첸쉐이벤도 “대통령이 된 사람과 대통령 아닌 사람은 사실 모두 똑같다.”고 했습니다. 속담에 잘 여문 볍씨일수록 고개를 늘어뜨려 점점 낮게 숙인다 하였습니다. 자고이래로 어진 이를 예의와 겸손으로 대하는 제왕일수록 어질고 덕망이 높아 이름을 후세에 남기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질문하는 선생일수록 학문을 더 세상에 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사이에서 ‘웃어른이 아랫사람 노릇하고 아랫사람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풍조가 된다’면 가정과 사회가 조화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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