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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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찬 사람에게 더욱 필요한 불법 ③
다음 날 우리가 핑동(屛東)에 도착하자 핑동 교도소에서 우리에게 강연을 청해 왔습니다. 물론 저는 스승이신 동초 스님께 먼저 말씀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겁난을 겪고 계신 여러분, 제가 그대들에게 두 가지 해탈의 법문을 일러주겠습니다. 참회와 발원이…”

큰일이군! 제가 할 말을 동초 스님이 다 말해버렸습니다. 그때 우리는 지식에 한계가 있었고, 교재 준비를 하기도 쉽지 않을 무렵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어가야 하지?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동초 스님이 장로이시긴 하지만 장난삼아 말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제게 두 가지 해탈의 방법이 있는데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일부러 두 가지 법문이 무엇인지 먼저 꺼내질 않았습니다. 옆에 앉아 듣고 있던 동초 스님을 슬쩍 보니 무척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속으로는 분명 ‘내가 이야기했는데 또 참회와 발원 두 가지 법문을 이야기하면 어떡하냐?’고 생각하시는 듯했습니다. 그 뒤에야 저는 말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는 나 먼저 규범을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때 저는 마음을 놓으며 한숨을 내쉬는 노스님을 보았습니다.
당시 동초 스님과 저는 타이완 전국을 돌며 많은 교도소에서 강연 초대를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일도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교도소 홍법의 경험은 우리가 사람을 대함에 있어 먼저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호감을 쌓은 후에야 타인을 받아들이고, 공통된 인식을 쌓을 수 있고, 서로 받아들일 수 있고, 소통과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죽련방竹聯幫·사해방四海幫의 방주(보스) 같은 적지 않은 ‘따거(大哥: 조직의 보스)’가 저의 신도가 되었고, 저도 그들을 친구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늘 자신들은 제자이고 저는 스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우리 불광회 자이(嘉義) 금강분회金剛分會의 이사인 임굉현林宏弦은 불법의 훈도 덕분에 방탕한 생활에서 마음을 고쳐먹었고, 지금도 교도소 포교사가 되어 수감자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로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도소 포교의 열정
교도소 포교를 이야기하자니, 가장 열정적인 분으로 조무림趙茂林 거사를 따를 이가 없습니다. 그는 각 교도소에서 수십 년간 포교하며 설법으로 대중을 이끌었습니다. 비바람도 아랑곳 않고 매주 교도소를 찾았으니, 저는 그를 매우 존경합니다.
그는 매번 제가 머무는 사찰을 방문하였고, 때로는 우리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점심부터 저녁까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심지어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저에게 탄복하며 말했습니다.

“손님에게 그렇게 정성을 다하시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시다니, 스님께서는 수양이 높으십니다.”

사실 모두들 조무림 거사가 불문에 대해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줄을 모릅니다. 그는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고, 불교의 법회와 방염구(防燄口: 법회 후 아귀들에게 음식 보시하는 것), 배참拜懺 등에 대해서도 출가자보다 더 잘 압니다. 불교의 상식, 노스님들과의 일처리 경험들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저는 그가 해주는 많은 사람들의 지난 일과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라 제게 적지 않은 이로움을 주었습니다. 상대의 선한 일은 내가 본받아야만 하고, 만일 옳지 않다면 마땅히 고쳐야지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사실 조무림 거사가 저와 이야기하면 마치 제 가정교사와 같았기에 저는 그를 매우 존경합니다, 누군가 그때 그를 수행하며 일생의 교도소 포교법을 기록하였다면 타이완 옥정獄政 연구사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조무림 거사는 강소의 타이저우(泰州) 사람으로 ‘타이저우에서 화상和尙이 나온다’라는 말처럼, 그는 스님들과의 관계가 가장 밀접했습니다. 강소성 보안대대의 대대장을 역임한 적이 있고, 타이완에 도착한 뒤에는 ‘우모羽毛노동조합’의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저는 ‘우모노동조합’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그와 이야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와 제가 나눴던 이야기는 모두 불교에 관한 것과 그가 감옥에서 포교한 경험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통해 많은 관념을 이해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