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관한 관리학에 있어 저는 동정의 관리를 하고, 위로의 관리를 하고, 격려의 관리를 하며 미래에 대한 무한한 희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욕하고 때리고 형구를 사용하는 관리가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그들과 연결고리를 만들려 했으며, 부득이 법외法外 인정人情의 관리를 연구해야만 했습니다.
들어가는 말 민국 42년(1953) 초에 타이완으로 온 뒤로 상주하는 곳이 정해지지도 않았지만, 우리의 참여가 꼭 필요한 곳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교도소의 불법 강연이었습니다. 당시 각지에 있던 교도소에는 수감자가 너무 많아 문제였습니다. 교도소에 있으면서 대다수의 몸과 마음은 허공에 붕 떠있듯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교도소 측의 관리자도 종교가 교도소로 들어와 인심을 어루만져 주고 수형자를 관리하는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기독교가 교도소에서 선교 활동하는 것만을 허락하고 있었습니다만, 불교는 아직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정부가 생각을 바꿔 불교도 교도소에서 선강宣講할 수 있게 해주어 그때부터 출가자와 거사가 불법을 강연하며 수형자의 인생관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운 바에 한계는 있었고, 당시엔 출가자가 타이완에서 방부를 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교도소에서는 우리를 매우 환영했기에 교도소 포교가 오히려 쉬웠습니다. 교도소 포교가 상황에 따른 설법을 연습하는 기회가 되어주기에 저는 절대 사절하지 않았습니다. 이란 교도소에서 시작하여 타이베이 교도소·신주 교도소·화롄 교도소·여자 교도소·군대 교도소, 그리고 타이완 전국 각지의 구치소·수용소까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 약물보호감호소-명덕계치반明德戒治班 등 감화시킬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라도 강연에 참여했습니다. 교도소에서 홍법 포교한 인연 덕분에, 저는 수형자에게 늘 특별히 믿음을 주고 좀 더 관심을 주었습니다. 단오절이 다가오면 저는 신도들을 움직여 쫑즈(대나무잎밥: 중국에서 단오절에 먹는 절기음식)를 구입해 교도소로 찾아가 그들과 인연을 맺었으며, 추석이 되면 저는 또 신도들과 월병을 구입해 교도소의 수형자들과 함께 명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저는 교도소에서 매우 환영받는 강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정부에서 저를 교도소 교회사敎誨師로 임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여러 차례 강연한 후에 저는 교도소의 수형자들에게 동정하는 것 말고, 직접 사형수 또는 중범죄자와 개별 접촉해 그들에게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장래에 대해, 생명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정확한 인생관을 갖게 해주며, 더 나아가 생명을 변화시켜 생명의 가치를 발휘하게 해줄 수 있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저는 투청(土城) 구치소에 가서 사형수와 일정 시기 동안 접촉하였고, 홍콩에서도 사형수와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저를 헬리콥터에 태우고 사형수들만 수감 된 츠주(赤柱) 교도소에 보내 불법을 설하게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저는 수감자들이 또 한 번의 상처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들이 서술한 범죄의 과정을 기록하여 책으로 남길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경찰이 젊은이들에게 쉽게 법률과 법치의 희생양이 되지 말라고 권고하는 참고서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타이베이 교도소의 사형수 소건화蘇建和 등 세 젊은이와 저는 여러 차례 접촉을 했습니다. 20여 년 후에 그들은 무죄 석방되어 불광산으로 저를 찾아와 주기도 했으니, 수감자들에게도 정과 의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은 화롄 교도소에서 홍법 강연을 하는데, 10년 이상 된 2천여 명의 중범죄자들 모두 젊고 팔팔한 청년들인 것을 보는 순간 울컥 감정이 격해지며, “당초 여러분들이 저를 따라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면 우리 불교는 여러분들로 인해 더욱 빛났을 것인데, 여러분들은 어찌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여기에서 이렇게 중형을 받고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그들이 알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수년 동안 강연을 이어오며, 수감자들의 정과 의리도 함께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이 지나고 저는 우연히 수감자가 보내온 홍빠오(돈을 담는 붉은 봉투: 우리나라의 세뱃돈과 같은 중국의 풍습) 하나를 받았습니다. 수십 년 전이라 겨우 20~30원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무엇보다 진귀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한 번은 제가 기차를 탔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때 “스님, 여기 앉으십시오”라며 한 젊은이가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저는 ‘내게 왜 이렇게 과분한 친절을 베풀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제가 ○○교도소에서 스님께서 불법을 강연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도소 포교에 더욱 열과 성의를 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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