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점을 발견하는데 뛰어난 이여. 모든 희론과 멀어지는 공성을 수행하라. 공성을 끊임없이 수행하면 그 무엇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마음이 들뜰 때는 자성을 자세히 점검하여 본래의 공을 알아차려라. 그 마음을 살펴야 공성을 깨닫는다. 마음에 의해 알아차린 모든 것의 자성 하나하나 역시 공하니, 이를 알면 무상요가 수행에 입문하게 되리라.’ - 『보운경』 중에서 -
인간이 지닌 다양한 성향과 근기에 따라 폭넓은 철학과 사상이 적립되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 존재라 여긴 나머지 사랑과 자비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러한 요구에 따라 많은 종교가 생겨났습니다. 반면 종교를 앞세운 분쟁도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마치 소금물을 마신 것과 같아 근본적인 갈증을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오온에 얽매이는 한 ‘나’라고 생각하는 집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업과 번뇌의 핵심이 되는 삼독 번뇌를 여의는 것이 불교도 수행의 관건입니다. 우리가 기도에 임할 때 입으로만 참회와 서원을 읊는다고 실질적으로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내면의 지혜를 성장시키는 방법뿐입니다. 실집과 아집에 의해 모든 번뇌가 생겨남을 알아차리는 지혜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무상을 마주하여 본래 공한 본성을 알아차리고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일체 만물과 현상이 나의 눈에 보이고 사유 된 것에 응한 바 그대로 존재해 반응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중생 윤회 해탈 부처와 같은 것 역시 가설된 세속의 관점일 뿐입니다. 나에게 보이는 부처님의 모습이 내가 보고 배운 바 그대로 인가. 그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하였습니다. 다른 무엇에 의해 공한 것이 아니라 본래 공한 것입니다. 실집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혜를 밝히십시오. 지혜란 실상을 헤아림의 다른 말입니다. 입중론에서 일컫는 바와 같이, 일곱 가지의 고찰을 통해 실체의 자성을 바르게 아는 것이 그러합니다. 붓다께서는 초전 중전 삼전의 법륜을 통해서 법을 설하셨고 우리는 근기에 따라 수승한 단계에 부합된 지혜로서 진상의 구조를 분석합니다. 붓다는 이처럼 심오한 사성제 무자성 반야의 법을 처음 얻으신 성불 후 잠시 고요에 머무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사유하여 확신을 기반으로 실천하는 우리는 불도의 위에 있습니다. 일체의 번뇌를 제거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을 닮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수승한 제자 용수보살의 육부 논서 가운데 『중론』은 공성을 통해 무자성을 명확히 다룬 불교 논서의 꽃입니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5)라고 하는 본인은 공성에 대해 사유한지 이미 70년이 넘었습니다. 삶 속에서 실집에 대해 사유할수록 공성은 그러한 집착을 여의도록 조력합니다. 업과 번뇌가 제거된 자리가 해탈입니다. 왜곡된 분별 망상은 왜 생겨나는가. 바로 실집 때문입니다. 현대과학의 양자물리학에서도 실제로 하는바 고착된 것은 없다고 가설을 내놓고 있어 공성의 논리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생명 연구소의 지난 40여 년 대담을 통한 연구 성과도 그러한 논리에 부응합니다. 순금을 연마하는 연금술사와 같이 이치를 따져봐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노예가 되어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무지와 번뇌로부터 평생 해방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반드시 현상을 살펴 요의와 불요의를 따지라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때문에 대기설법을 통해 근기에 상응한 법문이 생겨났습니다. 존엄한 삶이기에 타당한 근거에 따라 살아가도록 정진해야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은 보다 공정해집니다. 사사건건 분석하고 이치를 따지는 것 역시 수행자 본인의 내면을 파악하고 보살피기 위함입니다. 내가 소중히 여겨 애착하는 대상인 자아를 분석하여 바로 본다면 세상에 대한 왜곡된 분별을 바로잡을 굳건한 힘이 생깁니다. 더불어 마음은 항시 안정되고 고요해야 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사랑과 자비를 보다 증장시켜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과 연민의 힘을 더욱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적 역할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인식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직간접적인 인연법으로 연결되었기에 지금을 살아가고 있음을 숙지해야 합니다. 더욱이 종교인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존중과 화합의 중매자가 되어야 할 숙명적 의무가 있습니다. 상생을 위해서는 담합이 아닌 화합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인도는 종교 간의 화합적 측면에서 모범이 됩니다. 전 세계 다양한 종교가 어우러져 화합을 모색하는 활동에 적극적이며 달라이라마인 본인 역시 그러한 모색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티베트의 현안을 고심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이 사회와 나라가 있는 지구와 인류 공존의 문제에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지혜의 빛을 밝혀 미래의 인류를 위하는 나의 책임에 공감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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