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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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과학을 통해 21세기 중도에 들어서다
달라이라마, 동남아시아 불자들과 야단법석

“현자의 수행이란, 일상의 중도와 같아”
하안거를 나고 마음의 고향 다람살라로 복귀한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8)는 9월의 첫 일정으로 동남아시아 불자들과 야단법석의 자리를 가졌다.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모인 불자의 연합으로 열린 이번 법회는 9월 5~6일 양일간 중론의 입문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달라이라마 대표부 추산 5천여 불자가 참석한 다람살라 남걀사원 광장의 쭉라캉은 일체의 공성을 일깨우는 반야심경 봉독이 울려 퍼지며 법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테라와다의 승려들이 팔리어로 망갈라경을 봉독했다. 대승과 소승의 경계를 넘어 궁극의 공성을 헤아리고자 한 이번 법석에서는 몬순의 끝자락을 알리듯 운무가 피어오르며 알아차림을 구하는 대중들과 어우러져 산중 법회의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석가모니 붓다의 깨달음이 대중에게 전해진 이래로 다양한 환경의 전통을 따라 불교문화가 그 꽃을 피웠습니다. 한없이 무량한 공덕과 지혜를 따라 경 율 론 삼장으로 집대성한 선지식에게 우리는 귀의의 예의를 표함으로써 존경을 표해왔습니다.
불법에 담긴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선한 마음이 일으키는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초발심 즉 보리심으로 붓다께서 지닌 지혜의 근본 불씨입니다. 다른 말로 불성이며 이는 깨달음의 씨앗을 의미합니다. 인간 개개인이 붓다께서 지니셨던 불성을 차별 없이 지니고 있지만 각자가 처한 철학적 사유의 영향으로 사람과 현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사유하거나 신과 같은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바른 수행을 하는 불교도는 스님이거나 재가자이거나 남성이거나 여성이거나 구분이 없이 동등하게 보리심의 깨어있는 마음 자세로 공성의 견해에 대하여 성찰합니다. 그것은 수행한다는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일상 그 자체로 나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나와 나의 것 그리고 나를 둘러싼 주변의 환경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그것이 독립적인 특별한 것이라는 착각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하며, 그러한 사유와 충돌하더라도 독립적인 자아로 사유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유연한 자세로 실상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아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인해서 일체의 괴로움이 파생되었습니다. 내 주변의 만사를 마주하여 대함에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보살피는 것과 같이하는 바가, 행하고 머무름의 시작이자 마무리여야 함을 항시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나의 실천이 변함이 없어 타인에게 감동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일컬어 불교에서는 자타 상호 교환의 요가라고 합니다. 생명을 지니고 이성적인 사유를 하는 인간은 모두가 예외 없이 행복을 바라며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윤회에서 사유를 방해하고 혼란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독립적인 존재라고 하는 생각의 오해입니다. 공성의 도리를 사유하는 수행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체는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인연의 화합과 흩어짐으로 생하고 멸하는 도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러한 사유가 일상에서 익숙해질 때 비로소 독립된 나와 나의 것이라는 바에 대한 집착을 줄여갈 수 있습니다.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사유의 철학은 인간을 정의 내리기 시작한 태초의 개념의 생겨난 당시부터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보리심은 이타심의 불교 용어입니다. 이 마음의 각성은 자신과 타인의 행복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터전의 자세입니다. 이 마음을 개발하여 증장시켜 가는 것이 다름아닌 수행이며 그러한 단계를 순차적으로 키워 가다 보면 나 스스로의 마음이 평안해지고, 간혹 발생 되는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견고하게 유지하게 됩니다.

나와 더불어 공존하는
모든 생명 지닌 이들에게
더 이상 장애와 번뇌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사유해 봅니다.
보리심의 빛이 행복의 보고가 되어
불법이 전해지지 않은 곳 역시
불국토와 차별이 없어 자비와 연민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변치 않는 원석과 같은 진리입니다. 지금의 불자들이 유념해야 할 바는, 입으로만 읊조리는 자신만을 위하는 서원의 기도에서 더 나아가 나 스스로가 올바른 보리심을 어서 빨리 일으켜 공성에 대한 견해를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불교가 과학을 통해 위없는 진리임을 논리적으로 증명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새 시대의 불교로 부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부디 불자 여러분께서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일상에서 중도의 도리를 논리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인류가 공존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구하고자 하는 행복의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