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6월 4일 딱첸촐링 쭉라캉에서 야단법석
붓다께서 몸소 보이신 깨달음 “겸손은 덕의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다람살라의 부처님오신날(Saga Dawa)은 티베트력을 따라 4월의 보름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 받는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7)는 6월 4일 딱첸촐링의 쭉라캉에서 사무대중과 함께 법석을 열었다. 테라와다 불교권인 태국의 승려들과 경의를 표한 달라이라마는 불 법 승 삼보 전에 예경을 올리고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들에게 오늘은 붓다의 생전 행적을 돌이키며 붓다께서 몸소 경험한 깨달음의 도리를 진중히 헤아리는 날입니다. 중생의 업장은 물로 씻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생에서 겪는 괴로움 역시도 힘으로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궁극의 깨달음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무릇 바른 수행자는 스스로를 이끌어 나아가 본인이 체득한 가르침으로 일체 중생을 진정한 자유로 안내하고자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오로지 자비심에서 비롯된 붓다의 보살행은, 생명을 지닌 모든 이가 궁극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방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영겁이라고 하는 무한한 시간 동안 오로지 중생을 이롭게 하도록 깨달음을 구하였고 마침내 성취한 분이 석가모니 붓다입니다. 네 가지의 고귀한 진리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고통과 괴로움은 원인과 조건의 결과로서 생겨납니다. 그 원인과 조건은 창조주와 같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원인을 발현시키는 주체인 바로 나, 중생이 지닌 통제되지 않은 마음에 의해서 발생 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의 특성상 애착과 분노 증오와 같은 감정에 압도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인과의 도리로서 행동을 일으켜 업을 생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존재한다 여기는 것은 단지 지정되는 것일 뿐 객관적으로 독립되고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네. 마치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 독립적인 존재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네. 그것은 왜곡된 시간이며, 그것은 중생의 왜곡된 견해이니,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붓다께서는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네.
실체인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 제거하며, 수행 도로써 무명을 소멸해 가는 과정이 바로 환멸 연기, 수행의 차제입니다. 사실 고통은 그 종류가 다양하고 수준도 미묘합니다. 고통의 의미를 정의하고자 한다면, 괴로움이라고 하는 그 고통 자체뿐만 아니라, 변화함으로써 발생 되는 고통과 실존적인 고통 등으로 분류될 것입니다. 고통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조건은 바로 ‘나’라고 하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하는 정신력에 의해 기반 합니다. 어느 대상이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온 기존의 관념적 사고로부터 가장 먼저 깨어나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현상은 본질로 핵심이 되는 고정된 바가 없다. 일체의 모든 현상은 공空 하다.”
우리 인간은 의식적으로 안락과 행복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공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일상에서 실천할수록 정신적인 고통은 점차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인간 대부분은 본인이 지닌 교만함과 오만함에 의해 스스로를 고통에 몰아넣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내가 상대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을 괴로움의 늪에 빠지도록 자초합니다. 물론 상대방에게도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디서나 누구와 어울리거나 자신을 겸손히 낮춰 상대를 귀하게 여긴다면, 그 순간부터 당신은 덕의 씨앗을 심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괴로움에 오랜 기간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불교가 티베트에 전래한 이후로 티베트불교를 대표하는 3대 초기 종파, 사캬 닝마 그리고 까규는 아띠샤 존자를 따르는 까담빠와 함께 불교의 맥을 전승해 왔습니다. 까담빠의 스승 게쉬 랑리 탕빠의 수심팔훈 가운데 세 번째 구절을 붓다의 아들딸들인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부정적인 감정이나 마음의 고통이 일어날 때 그것에 대항하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비난하거나 욕할 때 보복할 생각을 하지 말고 그들에게 승리를 제안하라. 그리고 연민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