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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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단이 화합하니 깨달음이 즐겁네
달라이라마, 국제불교연맹 주최 세계불교써밋에서 법문

깨달은 이의 출현은 즐겁고
바른 설법을 청하니 즐겁다
승단이 화합하니 즐겁고
화합하는 사람들의 수행도 즐겁다.

-법구경 194절-


국제불교연맹에서 주최한 세계불교써밋(International Buddhist Confederation, IBC)이 인도에서 개최되었다. 지난 4월 21일 아쇼카호텔에서 열린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한 인도 네팔 베트남 미얀마 스리랑카 몽골 등 세계 불교계 지도자와 지식인 등이 참석해 불교도의 화합을 도모하는 교류의 장을 펼쳤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7)는, 나라마다 그만의 아름다운 불교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난 줄기에서 피어난 다양한 색의 꽃과 같다“라는 비유로 대회에 참가한 청중을 맞았다.

오늘날 불교 승가를 중심으로 하는 모든 공동체는 우리 앞에 놓인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해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의 집합입니다. 우리 서로는 특별한 다름이 없이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우리는 같은 공기와 같은 물을 공유합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인간을 영위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삶의 기반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더불어 공존하도록 하는 세계 평화를 증진하고 어머니 지구를 보호하며 사랑 그대로의 연민을 실천하기 위해 세계적인 공감의 관점을 채택하는데, 하나로 뜻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를 돕기 위한다는 궁극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종교는 저마다의 전통에 함축된 보편적 가치를 구현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만남을 성사한다는 의미는, 일체중생의 행복이 실현되기 위함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증진하고 조화로운 화합으로 범사에 임하기 위함임을 유념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함께 손의 손을 잡아 봅시다.
선한 마음 역시 성장합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연민하며 용서하는 기술을 교육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나라고 하는 개인의 마음에 평화가 온전히 안착하여야 합니다. 나의 평화가 성립되지 않으면 세상에도 평화가 도래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평화를 이루는 탁월한 방법으로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 통찰명상을 수련하기를 권합니다. 명상은 우리가 균형 잡힌 마음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방편입니다. 동정심을 일깨워 봅시다.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의 스위치로 우리는 동정하는 방법을 일깨워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와 화합이 온 세상에 두루 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동정심의 근간입니다.
마음의 동요를 지켜봅니다. 흩어진 생각들로 집중되는 하나로 생각이나 떠오르는 느낌이 지나가도록 그 흐름을 바라봅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평온을 나의 것으로 체득해 갈 때 우리는 평화를 위하는 실천을 시작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인도에 불국토가 실현되고 오늘날까지 종교와 철학의 다양성이 인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사상 ‘아힘사’의 비폭력이 정신의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생명을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닌 상대를 위해 기꺼이 죽음까지 자처하는 자세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불교의 시조인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무사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업력은 인명을 살상하는 가문의 태생이 기반이었지요. 이 때문에 석가모니 자신의 마음에 있는 생사의 모호함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위대한 인도의 승가대학 나란다는, 현실의 본질을 이해하고 심리학 측면에서 마음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에 대한 접근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그러한 나란다의 학풍이 현재 남인도에 재건된 가덴사원, 대붕사원 그리고 세라사원에 전승된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의 불교는 현대과학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생물학적인 죽음을 맞았을 때 유물론적인 인생관과 윤리적 함의가 과학적으로 어떻게 해석 가능한가를 심층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한 대화의 연구과제중 하나입니다.
인간으로서 이생이 소중하고 인간답게 살기를 교육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빚는 결과가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가 모두를 돌봐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티베트어의 뗀중을 기억하세요. ‘ten-jung’이란, 연기의 도리를 의미합니다. 연기법의 어원이 되는 단어입니다. ‘뗀’은, 종속을 의미하고, ‘중’은 발생을 의미하지요. 즉 연기란, 우리가 지녀야 하는 현실의 통찰력을 일컫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원리는 의존적으로 생하고 또한 멸합니다. 아무것도 그 자체로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상황은 요인에 의하여 발생 되고 사라짐을 안다면 우리 인류는 자신을 스스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