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방법은 두려운 마음을 돌려서 다른 곳에 집중하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방법이지만, 어떤 두려운 것을 보고 두려움의 느낌이 일어날 때 여러분은 부처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가끔 이런 생각이 도움이될 수도 있습니다. 또다른 방법은 다라니를 지극하게 염송하는 것입니다.
질 문
서양은 남녀가 자유롭게 만납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문화와 풍습, 가치관들이 없어져서 어떤 만남이 좋은지 매번 의심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녀관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부가 될 수 있습니까?
답 변
여기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하는 계가 있고, 이를 지킬 수 없는 사람은 일반 불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家長)은 다른 여자와 간통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차이가 있습니다.
질 문
사랑하는 것과 결혼의 주제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답 변
저는 이에 대해서 그다지 할말이 많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좋지만 결혼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서두르지 마시고 심사숙고하셔요. 반드시 서로가 함께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적어도 이번 생에서는 항상 같이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서둘러서 결혼한 경우에는 몇 개월이나 몇 년 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는 이혼이라는 파국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법적으로 이혼하는 것은 서류 상으로나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이 없을 때 이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자식이 있을 때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부부였던 두 사람만이 각자의 사랑과 행복만을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들의 자식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가 이혼하게 된 경우 아이가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그 고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일생동안 끊임없이 닥쳐오는 고통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모델'이자 '거울'입니다. 만일 부모가 항상 싸우고 결국에 이혼하고 만다면, 이 경우 아이에게 심리적인 상처가 오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극입니다. 그러니 결혼에 대해서 서두르지 말고 잘 생각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나서 결혼하십시오. 이것이 저의 충고입니다.
이렇게 하면 여러분들의 결혼생활이 행복할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이 여러분들을 행복의 세계로 데려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가지고 있는 자비와 친절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고통을 주는 감정을 수반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자비심과 친절은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파악할 때마다 마음이 더욱 안정되고 맑아집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여러분의 자비심과 친절한 마음이 더욱더 든든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친절과 자비심이 고통스러운 감정과 함께하는 경우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때는 자비와 친절이 하루나 이틀은 갈 수 있지만 결국에는 사라지게 됩니다.
질 문
저는 사람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명상을 공부하는 초심자로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 변
낙담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에게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당신이 "가치가 없다."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을 속이는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는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부족하다 생각하십니까? 만일 당신에게 의지력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용기를 잃고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한다면 당신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스승입니다.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질 문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때 스승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꼭 스승을 필요로 합니까?
답 변
네. 하지만 이것은 '주제'가 무엇인가에 달려있습니다. 일반적인 주제, 일반적인 불교의 사상 등은 스승없이 책으로 혼자서도 배울 수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복잡한 주제는 스승의 도움없이 책으로만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우리에게 스승이 필요합니다.
 
번역·정리 / 쉐둡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