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다시보기
죽음에 대한 티베트의 사상
오늘 아침 저는 버지니아 대학의 메디컬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이 센터에서는 인간이 보다 더 장수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이언 스티븐슨 박사와 함께 내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중생이 어떻게 전생에서 다음 생으로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죽는가? 죽음의 과정은 무엇인가? 죽음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죽음은 물론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여러 종교와, 종교가 아닌 단체에서도 이것에 대해 분석을 해 오고 있는 주제입니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사성제에 대해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는 고(苦-suffering), 집(集-the source of suffering), 멸(滅-the cessation of suffering and its couses), 도(道-the path that brings such cessation)입니다.

그 중 첫번째는 고제(苦諦)입니다. 괴로움[苦]을 알아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것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괴로움의 괴로움(苦苦: 탐탁치 않은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고, the suffering of pain itself), 두번째는 망가지는 괴로움(壞苦: 좋아하는 대상이 변멸하여 없어짐으로써 받는 고, the suffering of change), 세번째는 진행되는 괴로움(行苦: 세상의 일이 바뀌는 것을 보고 느끼는 고, the pervasive suffering of being under the influence of a contaminated process of conditioning)입니다.

우리는 괴로움을 알아보고나서는 그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봐야 됩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 을 벗어나야 됩니다. 우리는 도를 따르는 마음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라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고통의 원인을 없애는 것입니다. 성스러운 네 가지의 진리를 다시 네 가지로 나누어 열여섯 가지 속성으로 나누고, 각 성스러운 진리를 네 가지 속성으로 나누었습니다. 그 중 첫번째 성스러운 진리인 고(苦)의 네 가지 속성은, 첫번째 비영구성(非永久性, impermanence), 두번째 고통(suffering), 세번째 공(空, emptiness), 네번째 사심 없음(selflessness)입니다.

첫번째의 비영구성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미세함(subtle)과 조잡함(coarse)입니다. 미세한 비영구성은 아주 작은 미립자(微粒子, particle)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잡함은, 예를 들자면 그 분들은 책상의 존재를 볼 때, 책상으로 있는 그대로만 보지 않습니다. 어떤 미립자는 순간순간 변화하기 때문에 오늘의 책상이 아니며, 이런 과학자들은 그러한 미묘한 미립자 속의 변화하는 것마저 봅니다. 이런 물질을 만드는 하나하나의 부분, 그것은 한순간에 흩어지듯이,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도 순간순간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순간순간의 바뀌고 흩어지는 것이야말로 미세한 비영구성입니다. 그리고 조잡한 비영구성은 어떤 물질이 없어지는 것이나 어떤 중생에 대한 죽음입니다.

죽음을 염두에 두는 것은 큰 이익이 있습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듯이 고통을 알아보고 난 후에 원인을 찾을 수 있고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지금이나 다음에, 죽음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만, 우리의 욕심과 집착 때문에 죽음은 꼭 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처음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죽음을 위해 준비를 하면, 죽음이 올 때 그 준비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 주의하는 그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해 주의하는 목적입니다.




번역·정리 / 쉐둡 스님
(translated by Lama Shed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