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문 (우리 몸의) 다섯 가지 미묘한 집합[五蘊]은 다섯 가지 부처와 같은 것입니까?
답 변 미묘한 다섯 가지 집합은, 드디어 다섯 가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는 그 집합들이 번뇌에 섞여 있지만, 번뇌에서 벗어나면 이 집합들의 조잡함과 미묘한 부분이 없어지게 되고, 그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미묘한 다섯 가지 집합이 다섯 가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섯 가지 부처를 지금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가 하면, 지금 우리에게 있는 이 미묘한 집합은 번뇌와 섞여 있고, 번뇌와 섞여 있기 때문에 그 미묘한 집합에도 단점이 있으므로 절대 부처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번뇌와 섞여 있는 집합은 부처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 완전한 부처는 아니지만 부처가 되는 모든 원인은 우리에게 이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미묘한 집합은 부처의 씨앗이고, 이것이야말로 부처의 본질이고, 그것을 '따타가타 가르바(Tathāgatagarbha)'라고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봅시다. 미묘한 마음, 그리고 바람, 에너지로 생각하자면, 미묘한 마음에 빛나는 부분, 그것과 같이 있는 바람[風]이야말로 부처의 마음과 부처의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는 그런 부처의 마음으로 변해지는 그 마음이야말로 미묘하며 빛나는 그 마음입니다. 그 미묘한 마음이 바로 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고 부처의 마음으로 변하는 그런 마음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자면, '부처의 씨앗(Tathāgatagarbha)'은 자연스럽게 각각의 중생이 가지고 있으며, 그 씨앗은 남에게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마음의 본성인 빛나는 것이 번뇌와 뒤섞이지 않고, 번뇌는 그 마음의 본성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번뇌가 일어난 순간에도, 마음의 원래 본성은 빛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번뇌를 없앨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세 가지 부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듯이, 다섯 가지 부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번뇌를 다 없애고 부처의 품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그런 근기가 지금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작은 연못의 물을 우리가 휘젓고 난 후에, 그 물이 더러워지더라도 그 연못의 물의 본성은 깨끗한 것입니다. 원래부터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흙탕물을 우리가 시간을 두고 조금 기다려 보면, 흙탕물은 가라앉고 물은 원래 자기 모습대로 깨끗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미묘한 마음은 원래 연못의 물과 같이 원래는 깨끗합니다.
그렇다면 번뇌들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느냐 하면, 번뇌는 바깥의 어떤 일을 통해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놓아두고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그 번뇌들은 해독제의 힘, 즉 '명상'이라는 해독제의 힘으로 없앨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금 자세히 알기 위해서 우리가 성 내는 것을 예로 들어 봅시다. 모든 성 내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한테 성을 낼 때 여러분은 그 사람이 어떻게 보입니까? 무엇처럼 보입니까? 그 사람은 우리 마음에 어떻게 보입니까?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그 순간, 그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든든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번역·정리 / 쉐둡 스님(translated by Shed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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