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면 행복해집니다"
자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다른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자생적인 소망이 있다. 고통받는 자를 보는 게 너무 마음 아파 그 고통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두번째 자비는 남들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책임감을 느끼고 그들의 고통을 없애 주고 열악한 환경에서 그들을 구해 주려 끝까지 애쓰는 것이다. 이런 자비심은 모든 중생이 유한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자신들이 영원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데서 나오는 혼란과 고통을 깨달을 때 더욱 강해진다. 진정한 자비심이 있으면 남이 잘 되도록 일해야 할 책임감이 절로 생겨난다. 세번째 자비심은 모든 중생이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으며 독자적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독자적 존재라고 착각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나온다. 이런 자비심이 가장 높은 자비심이다.
자신 안에 진정한 자비심을 기르고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중생이 처해 있는 고통의 상태와 성질을 알아야 한다.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부처가 사성제를 가르칠 때 세 가지 고를 말했다.
첫째 몸의 통증처럼 확실하고 즉발적인 고통, 둘째 변화에 수반되는 고통, 이를테면 즐거운 경험이 고통이 될 가능성 같은 고통, 셋째 유한한 존재에 공통인 보편적 고통이다. 자비를 기르기 위해서는 우선 고통이 무엇인지 숙고해 보고 고통을 고통이라고 인지해야 한다. 고통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면 더 나은 대안이 없는지 찾게 된다. 즉, 고통을 없애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을 찾아보는 것이다. 고통을 피하거나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고통을 성찰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질 것이며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이다. 고통을 없앨 방법이 없다면 생각도 않는 것이 더 낫다.
고통의 근원을 설명한 후 부처는 고통의 근절과 고를 근절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이야기 했다. 고를 만드는 뿌리를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고 깨달을 때 고를 모든 차원에서 성찰하고 규명하겠다는 결심이 커질 것이고 그로 인해 해탈을 찾게 될 것이다.
모든 이는 고를 극복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고를 극복하고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을 자연스레 본다. 이 욕망은 정당하고 태어날 때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이다. 모든 중생이 고를 극복하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원을 이룰 권리가 당연히 있음을 알 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자연스레 느낀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중요해도 우리는 다만 한 사람의 중생이고 한 인간일 뿐, 다른 중생은 무수하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서로 밀접한 인연의 관계가 있다. 우리의 고통이나 행복은 다른 이와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 또한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손가락 하나를 살리기 위해 다른 아홉 개 손가락을 희생시킨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아홉 개 손가락을 살리기 위해 한 개 손가락이 희생한다면 그건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의 권리와 나의 권리, 다른 이의 복지와 나의 복지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숫자를 비교하면 무수히 많은 다른 이의 권리와 복지가 당연히 더 중요하게 된다. 다른 이의 복지는 그 숫자 때문에 중요하기도 하지만 또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수히 많은 이의 행복을 희생시킨다면 결국 우린 실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이를 더 배려하면 다른 이의 권리를 찾게 해 주고 다른 이를 위해 일하면 결국 우리에게 득이 된다. 자비나 이타적 행동은 정말 좋은 것이다. 인간이 남을 널리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데 나는 때로 경이를 느끼곤 한다.
자비는 진정 정신적 힘, 행복, 성공의 귀한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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