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다시보기
개인이 얻은 통찰과 부처님의 완전한 통찰은 어떻게 다른가?
사물이 무상(無常)하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세밀하게 통찰한다고 예를 들어봅시다.
애초에 사물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었던 사람은 처음에는 사물의 영원성을 확신할 것입니다.
그런 확신을 부수려면 그 확신을 논리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분석한 결과, 사물이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약간이나마 의심하게 되면, 사물의 영원성에 대한 그의 확신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서 사물이 무상하다는 생각 쪽으로 더 기울어져야 합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더 강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을 얻으려면 끊임없이 고찰해서 무상(無常)을 추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상하다는 것을 추론적으로 알고 나서, 사물의 무상함을 직접 통찰하거나 직관적으로 체험해야만 우리의 행동에도 분명한 변화가 생깁니다. 그런 노력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영원에 대한 집착은 우리 의식에 깊이 배어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통찰로는 그 집착을 없앨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에 대한 집착을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근절시킬 정도로 깊은 통찰력을 기르려면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사물의 공성을 통찰하거나 다른 불교 원리들을 통찰할 때에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보리심을 깊고 확실하게 깨달으려면 통찰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방편과 지혜를 결합해서 수행해야 합니다.
즉, 한 가지 수행방법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방법들을 결합시켜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행의 어떤 측면들은 지식과 관련된 경험에는 관심을 덜 쏟고, 착한 마음을 기르는 일을 더 강조합니다. 물론 착한 마음을 기르는 경우에도 시작단계에서는 자비심이 무엇인지를 지성적으로 이해하고,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수행의 결과로써 착한 마음을 흉내내는 것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가만히 앉아서 자비심에 대해서 숙고하면 마음에 자비심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성적으로 생각해낸 자비심은 지속되거나 발전되지도 않고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자비심을 한 번 체험한 후에는 그 자비심이 지성적으로 생각해낸 자비심이 아니라 가슴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자비심이 될 때까지 계속 수행해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즉, 자발적인 자비심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자비심이 저절로 일어날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또한 자발적인 자비심을 체험한 후에는 지속적으로 수행해서 그 자비심이 보편적인 자비심으로 확대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수행도 역시 오랜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앞에서 말한 수행의 두 가지 면을 불교용어로는‘방편’과‘지혜’라고 합니다. 보리심은 방편이고 통찰은 지혜입니다. 깊이 있고 확실한‘통찰’을 얻으려면‘보리심’이라는 보조방편이 필요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리심을 깊고 확실하게 깨달으려면 통찰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방편과 지혜를 결합해서 수행해야 합니다. 즉, 한 가지 수행방법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방법들을 결합시켜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사물의 무상함을 통찰한 예를 들어봅시다. 그런 통찰을 하면 영원에 대한 집착을 버릴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통찰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보조적인 요소들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마음을 옥죄고 있는 족쇄들은 영원에 대한 집착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이영원하다고 집착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물들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실체라고 집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런 집착들을 모두 없애려면‘공성’을 보는 통찰력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의식을 완성시켜 나가는 복잡한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