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교학파들은 자신들이 공성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절대주의가 아니고 현상적 존재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허무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로되갸초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꾸로 생각할 수 있어야 모든 종류의 집착을 버릴 수 있다고 로되갸초는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물론 귀류논증중관파의 입장입니다. 귀류논증중관파의 관점에 의하면, 현상을 이해하면 절대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공성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면 허무주의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관학파 중에도 공(空)을 다르게 해석하는 두 학파가 있음을 이미 말했습니다. 독립논증중관파와 귀류논증중관파의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 대강 설명하겠습니다. 그 차이는 바바비베까의 논서에 근거를 두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나가르주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불교 내부의 실재주의학파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붓다빨리따가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해석한 내용을 비판했습니다. 바바비베까의 입장은 그 두 가지 비판을 통해서 생겼습니다. 요점을 말하자면, 바바비베까의 독립논증중관파는 절대적인 존재를 부정하지만, 사물들에겐 일종의 내재적이고 객관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반대로 짠드라끼르띠 같은 귀류논증중관파는 그런 것을 철저히 부정합니다. 짠드라끼르띠나 붓다빨리따, 바바비베까는 모두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이어받은 훌륭한 학자들이지만, 그들이 나가르주나의 공성을 해석하는 데는 차이가 있습니다. 티베트의 불교학자들은 중관학파를 독립논증중관파와 귀류논증중관파의 두 파로 구분하는 것은 그런 차이 때문입니다.
이 두 학파는 방법론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귀류논증중관파는 결과적으로 일어나는 필연적인 오류를 도출해내는 논증법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귀류법(결론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이끌어내는 논증법)과 비슷합니다. 귀류논증중관파의 논증은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한 이론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 관점의 내부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데 더 관심을 쏟습니다. 그와 반대로 독립논증중관파는 자신들의 의견을 지지하기 위한 논증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감각이 물질적 대상들을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대한 견해도 바바비베까와 짠드라끼르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바바비베까의 경우에는 시각이 일어날 때 우리가 객관적인 실체의 모습을 본다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물은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존재를 갖고 있어서 그것이 우리의 지각에 투영된다는 것을 그는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견해를 짠드라끼르띠의 귀류논증학파는 완전히 부정합니다. 그러므로 두 중관학파의 근본적 차이는 내재하는 존재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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