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고통의 근원인가? 누구나 본능적으로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원인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고통을 가져올 조건들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앞장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의 밑바탕에는 불교용어로‘근본적인 무지’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이제 알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모습이나 인과법칙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두 종류의 무지를 말합니다. ‘업(業)의 인과법칙에 대한 무지’와‘실재의 절대적 본질에 대한 무지’입니다. 이 둘은 앞에서 말했던 두 단계의‘연기’가 갖는 의미와 연관이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인과적 연기’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인데, 그것을 이해하면 인과 법칙에 대한 무지가 사라집니다. 더 깊은 단계는 실재의 절대적 본질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인데, 그것을 이해하면 근본적인 무지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깨닫지 못한 존재로 남아 있는 이유가 오로지 무지 때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무지 이외에도‘번뇌’라고 일컬어지는 수많은 파생적인 원인들과 조건들이 있습니다. 번뇌는 매우 복잡하고 괴로운 감정과 생각들입니다. 아비다르바 논서는 이 같은 번뇌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논서에는, 여섯 가지의 근본적인 번뇌가 있고, 그것들로부터 다시 스무 종류의 번뇌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이 논서는 생각과 감정의 세계를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금강승의 경전은 윤회 속에서 중생이 겪는 과정을 다르게 설명합니다. 즉,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걸 표시하는 여든 가지 종류의 생각 또는 개념들을 상세히 기술합니다. 또 금강승 계열에 속하는 깔라짜끄라(時輪) 딴뜨라 문헌에서는 중생이 윤회하는 원인이 중생의 업력(業力)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우리의 근본적 무지 때문에 일어나는 번뇌들이 의지적인 행동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착각과 업 때문에 일어난 행동들이 모여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근원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무지와 업력에 의한 행동이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근원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번뇌의 정의는‘발생하는 즉시 우리 마음을 괴롭히는 감정들과 생각들’입니다. 번뇌는 발생한 후에 우리 마음 안에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업에 대하여 그러면, ‘업(業)’이란 무엇일까요? 우선 업의 법칙은 불교에서 인정하는 광범위한 자연적 인과법칙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업’은 세계 전체에 작용하는 자연적 인과법칙 속의 한 특정한 예입니다.
세계 속의 모든 사물과 사건은 여러 원인과 조건이 결합한 결과로서만 생겨난다고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그러고‘업’은 그 같은 인과법칙의 한 예입니다. 그런데 업의 법칙은 행위자라는 의지적인 행동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독특합니다. 행위자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 자연적 인과법칙의 과정이 일어나는 것은 업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인과적 과정이 업에 의한 행독이 되려면 의지를 갖고 특정한 행동을 이끄는 개인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특정한 종류의 인과적 과정을‘업’이라고 부릅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