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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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과 비폭력
세상에는 상이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종교가 필요합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70년대 초에 인도인 기술자 한 사람이 불교에 상당한 관심을 갖더니 결국은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는 매우 진지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그 사람에게 무아론(無我論), 즉 자체적으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나’라는 것은 없다는 불교이론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몹시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는 만일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이란 것이 없다면 근본적인 무엇인가를 놓쳐버린 것이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에게 무아의 의미를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그의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져 갔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나(我)’라는 것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이론을 전제로 하는 가르침이나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수행이 더 알맞을 겁니다.
이상의 몇 가지 관점을 생각하면, 자신의 종교가 아닌 타종교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경하기가 쉬워질 겁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할 주요 주제는 사성제 즉, ‘네가지의 신성한 진리’입니다.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이 사성제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경험을 통해서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사실상 불교 수행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성제에 관해 설명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니 불교를 소개할 때 저는 우선 ‘두 가지 근본원리’부터 설명합니다.
첫째는 ‘연기법’, 즉 ‘상호의존성’ 입니다. 연기법을 이해해야만 모든 불교철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비폭력’입니다. ‘연기법’을 아는 사람은 비폭력적인 행동을 합니다. 비폭력이란 ‘최선을 다해 중생들을 돕고,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그들을 해치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연기법과 비폭력주의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듣고나면 사성제를 이해하기가 한결 쉬울 겁니다.

우선 불교용어를 사용해서 앞의 두 이론을 설명하겠습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마음을 바쳐 의지하고, 보리심(菩堤心, bodhicitta)을 일으킨 사람을 불교도라고 부릅니다. ‘보리심’ 을 다른 말로는 ‘자비심’ 이나 ‘이타심’ 또는 ‘착한마음’ 이라고 부릅니다. 불교의 삼보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佛敎), 수행자의 집단인 승가(僧伽)를 말합니다. ‘귀의(歸依)’ 와 ‘보리심’의 핵심에는 다른 중생들을 돕는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수행을 할 때는 다른 중생들을 돕는 행동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반면에 귀의하는 수행을 할 때는 윤리적으로 절제된 생활을 하고, 다른 중생들을 해치지 않으며, 인과법칙을 존중하는 행동을 합니다.

삼보에 귀의하는 수행을 기초적으로 잘 닦지 않으면 높은 단계의 보리심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보에 귀의했는지 안 했는지에 따라서 불교도와 비(非)불교도를 구분합니다.
그러나, 삼보에 귀의할 것을 서약하는 불교의식에 공식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삼보에 귀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런 의식에 참가했다고 해서 불교도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불교에는 삼보에 귀의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식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개인이 깊게 숙고한 후에, 불법승 삼보가 참으로 진실이고, 궁긍적으로 귀의할 대상이라고 확신한다면, 아직 스승을 만나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실제로 불교도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