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다시보기
나와 나의 것에 관한 실체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 그리고 승가에 귀의합니다.
오늘 제가 이 법문을 들음에 일체 중생이 궁극의 종지를 성취하도록 하소서.
마음의 동기를 바로 잡아 삼계의 모든 법이 일체에 두루 하도록 하소서.”
다람살라에 봄기운이 감돈다. 지난겨울 4개월간의 스웨터 장사를 위해 인도 각지로 흩어졌던 티베트인들은 새해 로사에 즈음해 집으로 돌아온다. 새해 전날 음력 12월 29일에는 구뚝(수제비)을 끓여 그 안에 새알을 넣고 ‘나’의 내면을 점친다. 2살 된 아이 뗀진빼마의 새알에서 ‘췌쌤첸뽀(위대한 종교적 마음의 소유자)’라는 글귀가 나오자 집안 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한다. “때 묻지 않은 아이의 순수한 마음 그대로가 천진불”이라는 것이다.
로사로부터 보름이 되는 3월 16일,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9)는 대중법회를 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에서 한결 부드러운 풍모를 엿볼 수 있었다. 달라이라마의 공개 외출에 다람살라의 겔룩빠사원인 남걀사원의 쫄라캉은 문전성시를 연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본생담》 법문을 기점으로 달라이라마는 3개월간 해외 법문 여행을 떠난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4월의 일본 법회를 통해 몽골과 라트비아 그리고 유럽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달라이라마는 대중들에게 수학 정진하라고 거듭 타일렀다. 꿈에서라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자리를 잘 살펴 보리심을 증장시키고 긍정적인 삶을 주도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1일, 달라이라마는 네충사원의 신탁승 꾸뗀으로부터 전갈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진행된 티베트 망명정부 국회 개원식에서 신중한 당부를 건넸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년 남짓에 불과하오. 미래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젊은 그대들이 만들어 가야 할 바, 소명 있는 책임의식으로 진보하길 바라는 바입니다.”
현재 티베트의 상황에 비추어 보건데 어떠한 이유와 동기라도 자살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불법을 잘 보존하고 수행하는 수행자가 100명이 있다면 그 수는 결코 많은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반면 불법을 바르게 수행하지 않는 자가 단 1명이 있다면 그것은 많은 것이 됩니다. 티베트에서 일어나는 분신은 바르지 못한 불교 수행을 반증하는 사건입니다.
불교를 수학하면서 각 구절을 해석하고 풀이하는 것은 매우 값진 수행입니다. <보도차제론>에서 ‘다문 역시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부를 하는 것은 내면을 변화 시키고자 함입니다. 스승에 의지하여 차제에 근거하며 한 단계씩 증장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나는 나라를 잃고 망명한 주변인의 시점이 되어서야 나의 조국 티베트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어떻게 전승하고 보존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붓다의 말씀을 얼마나 고귀하게 지니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나란다승원의 스승들께서 저술하신 인명과 중관의 저서들은 반드시 수학해야 하는 필수 과제입니다. 더불어 당시 학승들의 견해를 오늘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외도의 견해들과 비교해 토론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때 바라나시에서 자이나교도들과 함께한 학회가 있었습니다. 한 구절의 말씀을 매우 세밀하게 해석하고 탐구하던 모습은 비록 외도였으나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붓다께서 율장에서 말씀하신 열반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도 외도의 견해를 겸손히 살피고 타 종교와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하는 것도 필요한 작업입니다.
티베트에서는 몇 년에 단 한 번 각 불교 종파의 회동이 있었습니다. 다람살라 망명정부에 있는 겔룩빠 소속의 남걀사원에서 논쟁과 논의가 본격적으로 수학되기 시작한 것도 196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기도와 주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른 한 예로 티베트불교에는 현재까지 비구니계가 없습니다. 그 해결 방안은 꾸준히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사미니의 계쉬(박사) 학위 증득이 가능해 지도록 1년에 한 차례 대론을 통해 그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변화에 항상 긍정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진취적인 앞으로의 한 걸음입니다.
근본 스승이신 붓다와 스승의 가르침을 뵙고 스스로 체험을 하면서 증득한 깨달음은 실로 소중한 보물입니다. 제가 16세에 정치적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많은 결단을 내려야 했을 당시 의지했던 분이 바로 스승들입니다. 그 당시 닝마빠의 관정의례와 저서를 수학하고 사꺄 그리고 까규의 법을 두루 섭렵할 필요를 공감하고 인정하였습니다. 수승한 경지에 도달함에 찰나의 명료성을 깨우치도록 정진의 불씨를 다듬은 근간은 바로 폭넓게 섭렵한 수행의 성과입니다. 쫑카빠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남과 비교하는 대상으로 삼지 말고 탐구하고 고찰함에 면밀하게 하는 방편으로 삼아라.” 하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대하는 수행자의 자세를 일컫습니다.
<현관장엄론>에서는 “성문의 무리와 함께 어울리는 보살은 허물이 남는다.”고 하였으나, 보살은 성문의 가르침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불교 내의 다른 종파는 서로 분열되지 않아야 합니다. 각 파의 다름의 문제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서 두루 섭렵하도록 하고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합니다. 붓다의 말씀을 담은 각 종파의 가르침 역시 두루 수학되어야 합니다. 불교 내의 나와 다른 파라고 하여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존중을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일체는 반드시 선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선함의 근본은 은혜로운 스승이신 붓다이십니다. 붓다의 말씀으로써 우리는 공덕을 지으며 증장해 갑니다. 때문에 우리는 법문을 들어야 합니다. 이로써 붓다의 말씀을 항시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실천에서 자연스럽게 증명이 됩니다.
사실과 이치에 맞는 것을 인식하세요. 그것이 불교의 인명학입니다. 대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진여의 문으로써 그 핵심을 취하도록 합니다. 현교와 밀교의 가르침에 있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승한 승의제로서 공성을 스스로 체험할 때 가능합니다. 견고한 신심으로써 도리를 알고 용수보살과 무착보살의 공통된 가르침의 확신을 얻을 때, 비로소 반야의 가르침과 마주서게 됩니다. 선정을 통해서 보리의 깨달음에 이르는 핵심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많이 들음으로써 서사유함에 애쓰세요. 모든 가르침을 떠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때문에 항상 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상사부의 마음을 보는 것은 무엇인가. 대승의 입문은 오직 발심입니다. 발심으로써 어떻게 무엇을 실천하는가. 해탈만을 원한 것이 붓다의 말씀이 아닙니다. 붓다께서는 이타와 자타로써 모두가 해탈의 문으로 들어가도록 한다고 설법하셨습니다. 보리심이란 대승의 문에 입문하는 열쇠입니다. 보리심을 수행하는 것과 보살계를 수지하는 것은 일곱 가지의 인과법을 수지하는 것이며 샨티데바(적천보살)께서 말씀하신 바(입보리행론)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붓다의 열매를 맺는 씨앗입니다. 불성이 없다면 붓다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깨달음을 원하는 서원에 있어서 수행의 발심을 냄에 항시 공정한 마음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무시이래로 내가 윤회를 해온 것과 같이 나는 어머니의 모태를 빌었음은 거스를 수 없는 인과입니다.
자비심은 중생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려는 실천 덕목입니다. 내가 짊어지려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목적의식으로부터 붓다의 대자비심을 상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위하는 이기심을 누르고 타인을 위하는 원만한 이타심에 있어서 그 둘의 비중을 잘 견주어야 합니다. 이생에 받은 발심에 후퇴가 없도록 항시 스스로를 일깨우십시오.
스승께서 말씀하시는 법의 도구를 상기하세요. 발보리심과 행보리심으로써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보살계를 받습니다. 방편은 발심을 일으키는 것이며 지혜는 실상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바라밀행에 있어서 지혜와 방편은 모든 행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써 실상을 대함에 하나 된 마음으로 일으켜야 합니다.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인가. 그것을 물었을 때 삼계에 존재하는 망상이 법집에 기인하며 이것이 윤회의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로써 훗날 소지장까지 끊을 수 있습니다.
대승의 일반적인 수행 방법과 금강승의 수행 방법 그리고 보살의 수행 방법에는 차별이 있습니다. 금강승의 별해탈계를 지니고 여섯 바라밀을 실천해야 금강승에 입문할 자격을 갖춘 것이 됩니다. 보살의 가르침은 여섯 바라밀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보시 바라밀은 지계 바라밀을 생성시키며 지계 바라밀은 보시 바라밀에 의지합니다. 바라밀의 마지막인 선정 바라밀과 지혜 바라밀은 내가 붓다로 보는 바라밀을 성숙시키는 바라밀과 타인을 성숙시키는 사섭법이 그것입니다.
보시는 오로지 선한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어떻게 일으키는가. 나의 인색함을 잠시 줄인 것이 아니라 내가 소유한 전부를 타인에게 주는 것입니다. 항시 청정한 계율 속에서 실천함에 갈망하는 번뇌 망상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은 항시 명료해야 합니다. 아홉 가지 노력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의 경안을 조성해야 합니다. 마음을 안으로 지속하여 대상에 집중하면서 산란의 틈을 견고하게 다집니다. 거칠고 미세한 혼침(마음을 무겁게 함)에 주의하여 대상에 고정하면서 미세한 도거(마음을 산란케 함)에 주의하여 마음을 평안히 합니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찰하는 정진력으로 지속적으로 이어갑니다. 이로써 허물을 일으키는 의식은 점차 사라지고 마음은 허공과 같아질 것입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가연숙
omflower@gmail.com / www.gagyo.org